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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은품 자전거로 겨울 라이딩을

자전거 편

by 봉봉주세용

회사에서 연말에 조그만 선물을 줬다. 그 해에는 10만 원 내외의 등산화, 등산복, 자전거가 리스트에 있었는데 나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마침 한 대 있었으면 하던 시기여서 설레는 마음으로 자전거가 배송되기를 기다렸다. 회사에서 보내준 자전거는 중학생이 학원이나 학교에 갈 때 흔히 타는 삼천리 하이브리드 자전거였다. 자전거 바퀴와 손잡이가 연두색이었는데 가끔 길에서 똑같은 자전거를 타는 중학생을 보면 살짝 민망했다.


택배로 자전거를 받고 근처 자전거 대리점에 가서 조립했다. 자전거에 전조등과 후미등을 달고 장갑도 샀다. 자전거 가격은 10만 원인데 조립하고 이것저것 설치하니 자전거 가격보다 비용이 더 나왔다. 그래도 내 자전거가 생겼다는 것이 좋았다.


당시 전주에 살고 있었는데 집 근처에 서곡교 밑으로 해서 산책로가 있었다. 산책로에서는 자전거도 탈 수 있었는데 전주천을 따라 모악산 초입까지 가면 편도 10킬로미터였다. 처음 자전거를 탔을 때는 5킬로미터 타는 것도 힘들었다. 엉덩이가 아파서 조금 타다가 돌아와야 했다. 자전거를 타는 주변 분들께 물어보니 그건 방법이 없다고, 그렇게 엉덩이가 아픈 시기를 거쳐야 자전거를 편하게 탈 수 있다고 했다.


퇴근 후 일주일에 두번씩 자전거를 탔다. 산책하는 사람이 많아 한강에서처럼 쌩쌩 달릴 수는 없었지만, 가로등 불빛 아래 천천히 자전거를 타며 보이는 풍경과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좋았다. 시내를 통과할 때는 산책하는 사람이 많았고 주위가 온통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 모악산 근처까지 가면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끝없이 펼쳐진 논만 보일 뿐이었다. 그곳을 지날 때는 공기의 질이 달랐다.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내쉴 때 온몸에 상쾌한 공기로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는 한겨울에 자전거를 탔다. 퇴근하고 준비를 해서 자전거를 타고 나온 시간이 저녁 9시였다. 컴컴한 밤 하늘에 산책로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무척 추운 날이었다. 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옷을 단단히 챙겨입은 상태로 자전거를 타고 모악산으로 방향을 잡아 천천히 나아갔다. 초반에는 그런대로 탈 만했는데 어느 순간 귀가 시리고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장갑을 두 겹으로 끼기는 했지만, 손도 시려서 계속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상황이 안 좋을 때는 돌아가는 것이 맞는데 무리해서 결국 모악산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왜 그렇게 멀고 힘들던지. 귀가 아파서 번갈아 가며 한쪽씩 손으로 귀를 감싸며 자전거를 탔는데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했다. 만신창이가 되어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고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지금은 퇴근하고 한강에서 로드 자전거를 탄다. 그때와는 다르게 한겨울에는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한강에서 자전거로 쌩쌩 달리다 보면 한 번씩 전주에서 자전거를 타던 때가 생각난다. 캄캄한 밤, 논길을 따라 한겨울에 자전거를 타던 그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용감하게 자전거를 타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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