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다. 늦은 저녁 동네 목욕탕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낯익은 인물이 들어왔다. 국회의원 선거 기간이었는데 지역구 후보였다. TV에 자주 나오던 그는 슈트를 입을 때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술자리는 많고 운동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리라.
지친 하루였을 것이다. 새벽부터 유권자를 만나 인사하고, 악수를 하며 한 표를 부탁했을 것이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샤워기 물을 꽤 오랫동안 맞다가 사우나에 들어갔고, 곧 밖으로 나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짧은 목욕을 끝냈다. 목욕탕에는 그와 나 둘 뿐 이었고, 나는 여전히 온탕에 있었다.
그는 샤워기 물을 잠그지 않았다. 사우나에 들어갈 때도 그대로 뒀고, 나갈 때도 몸을 씻고 그대로 뒀다. 그가 수건으로 몸을 닦을 때 나는 그가 썼던 샤워기 물을 잠그고 다시 탕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기 집에서도 그렇게 함부로 물을 쓸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선거에서 낙선했고 또 다른 선거에도 나왔지만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깔끔한 슈트 차림으로 방송에 나온다. 방송에서 그는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신랄하게. 그리고 나는 방송에 그의 얼굴이 나오면 조용히 채널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