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사 후배의 방문과 두물머리 핫도그

소설

by 봉봉주세용

고민정씨는 회사에 다니며 쌓였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있음을 느꼈다. 쉬면서 특별히 누군가를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여유로워졌고 일상 생활의 소중함을 느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동네에는 생각보다 마트가 많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민수씨와 주말에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갔었다. 대형마트에 가서 주차를 하고 물건을 고르고 줄을 서서 계산을 하고 차에 싣고 왔다. 의무적으로 장을 볼 뿐이었다. 하지만 동네에 있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보게 되니 물건을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운이 좋을 때는 제철 과일이나 야채를 싸게 살 수 있었다. 손에 들 수 있을 만큼만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 요리를 하고 민수씨가 퇴근하면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런 사소한 것에서 민정씨는 행복을 느꼈다.




하루는 평일에 회사 후배였던 강유리대리가 그녀의 동네로 놀러왔다. 강유리대리는 민정씨보다 나이가 한살 어렸고 6개월 후배였다. 해외 영업2팀에서 근무하는 강대리는 회사 내에서 봉사활동 동호회를 하며 친해진 후배였다.


강대리는 중국어, 일본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는데 신기하게 한번도 해외에서 산 경험이 없었다. 국내에서 독학으로 외국어를 배운 것인데 가끔 해외 담당자와 외국어로 통화하는 강대리를 보며 민정씨는 부러움을 느꼈다. 얼굴이 작고 쇼커트 스타일의 전형적인 미인형인 강대리는 후배들에게는 무서운 선배로 통했다.


업무를 할 때 빈틈없이 처리하며 후배들에게 엄격하게 일을 가르쳐주었다. 강대리와 근무하는 층은 달랐지만 자주 점심을 먹었다. 민정씨 팀 동료들이 민정씨만 빼고 점심을 먹으러 갈 때 민정씨는 강대리와 점심을 먹었다. 강대리 팀도 팀끼리 점심을 먹었는데 민정씨가 점심을 먹자고 했을 때 강대리는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민정씨와 점심을 같이 먹어줬다.


민정씨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강대리는 민정씨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겉으로 강해 보이는 강대리였지만 속은 여렸다. 강대리는 민정씨에게 회사를 그만두지 말고 잠시 휴직을 했다가 다시 복귀하라고 설득했다. 어렵게 들어온 회사이고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퇴사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던 것이다.


강대리는 끝까지 민정씨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민정씨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고 설득을 포기했다. 그런 강대리였기에 민정씨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강대리는 그날 일부러 연차를 내서 민정씨를 찾아왔다.




“선배님. 얼굴이 더 좋아진 것 같네요. 잘 지내셨죠?”


강대리가 두손으로 민정씨 손을 잡으며 반갑게 물었다.


“백수가 얼굴 나쁠 게 뭐 있니? 맨날 집에서 놀다보니까 너무 좋네.”


민정씨도 웃으며 대답했다.


회사에서 정장에 구두를 신고 있는 모습만 보다가 편안해 보이는 빨강색 탐즈슈즈에 색이 빠진 스키니진, 가벼운 티셔츠 차림의 강대리가 새롭게 보였다. 대학생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파릇파릇한 생동감이 느껴졌다.


몇 달만에 만난 강대리였지만 민정씨는 몇 년만에 만난 친동생처럼 반가웠다. 손을 잡고 민정씨를 바라보는 강대리 눈에 눈물이 고였다. 민정씨도 이상하게 울컥했다.


“선배님. 이제 회사 그만두셨으니 언니라고 부르려구요. 괜찮죠?"


“그럼. 그게 나도 편하지.”


민정씨는 강대리의 방문이 반가웠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며 얘기하는 상대는 민수씨가 유일했다. 민수씨가 출근을 하면 민정씨는 얘기를 할 사람이 없었다. 그게 편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기도 했다.


“언니 점심 뭐 먹고 싶어요? 우리 오랜만에 맛있는 거 먹으러가요.”


강대리가 물었다.


“그러게. 우리 같이 점심 먹은 지 꽤 됐네. 오랜만에 비빔밥이나 먹으러 갈까?”


“좋아요. 그럼 양평에 가서 산채비빔밥 먹을까요?”


“그래. 그러자.”


둘은 강대리가 타고 온 노란색 BMW 미니쿠퍼를 타고 양평으로 이동했다. 민정씨 집 근처에도 식당이 많이 있었지만 강대리는 드라이브를 하며 민정씨가 바람을 쐴 수 있도록 했다. 강대리는 얼굴의 절반을 덮는 갈색 렌즈의 비비안 웨스트 우드 선글라스를 끼고 시원스럽게 차를 몰았다.


평일이라 양평 가는 길에 차가 많지 않아 속도를 꽤 올릴 수 있었다. 팔당대교를 지나갈 때 민정씨는 창문을 반쯤 내려 한강에 펼쳐진 물안개를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멀리서 오리가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뿌연 물안개와 오리의 조화가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게 했다.


민정씨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 동안 비어있던 마음 한 구석에 뭔가가 스윽 들어오는 것 같았다. 민정씨는 그 채워지는 느낌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며 몸에 쌓였던 것이 그 순간 모두 녹아버렸다는 것을.


민정씨와 강대리는 산채비빔밥을 먹고 두물머리에 가서 연잎 핫도그를 먹으며 산책을 했다.


“언니 핫도그 맛있죠?”


“응 맛있네. 이건 어떻게 알았어?”


“원래 두물머리는 핫도그가 유명해요. 종종 핫도그 먹으러 오거든요.”


“핫도그를 먹으러 여기까지 온다고?”


“그럼요. 핫도그도 먹고 이렇게 바람도 쐬다보면 회사생활 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풀리거든요.”


“아. 그렇게 스트레스를 푸는구나. 그러고 보니 난 스트레스 받을 때 그냥 속으로 삭히기만 했지 따로 푸는 방법이 없었어. 오늘 덕분에 맛있는 밥도 먹고 바람도 쐬고 호강하네. 고마워.”


“아니에요, 언니. 얼굴 보니까 제가 더 좋아요. 정말이에요. 선배가, 아니 언니가 회사 그만둔다고 했을 때 여자 후배들이 많이 서운해 했어요. 저도 그렇구요”


“에이. 그럴리가. 난 후배들한테 특별히 해 준것이 없는데.”


민정씨는 강대리의 말에 의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 후배들에게 무언가를 해 준 기억이 없었다. 민정씨 자신이 힘들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챙겨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끔 여자 후배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얘기를 한 것이 전부였다. 일상적인 얘기만 했지 특별히 조언을 해 준 기억은 없었다.


“언니. 여자 후배들이 언니 보면서 회사생활 버텼던 거 모르죠? 아무래도 고참 여자 선배들이 많지 않다보니 언니가 롤모델이었어요. 회사에서 항상 당당하고 남자 선배들도 못하는 일을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끼리 멋있다고 얘기 했거든요.


그래서 언니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저희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어요. 언니같은 분이 퇴사를 하면 누가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저도 언니 퇴사하고 나서 한동안 힘들었어요. 한번씩 언니랑 점심 먹을 때 전 너무 좋았어요.


팀에서 점심 먹으면 항상 부대찌개나 육계장, 짬뽕 같은 거 먹으러 가거든요. 한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매일 해장 점심을 먹으러 가다보니 먹기 싫을 때가 많았어요. 근데 언니랑 점심 먹으러 가면 파스타를 먹을 때도 있고 마음 편히 먹고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근데 언니가 퇴사를 하고나니 그렇게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더라구요.”




강대리의 말에 민정씨는 깜짝 놀랐다. 강대리는 남자 후배들에게 무서운 선배였고 남자 선배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그런 강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민정씨는 팀에서 밥을 먹을 사람이 없어 강대리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한 것이었고 팀원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강대리가 부러웠었다. 그런 강대리가 팀에서 점심을 먹을 때 힘들어 했다니.


“나는 항상 팀원들과 점심 먹으러 가는 니가 부러웠는데.”


“아니에요 언니. 저 너무 힘들었어요. 언니랑 점심 먹을 때가 유일하게 마음 편히 밥 먹는 순간이었어요.”


“그랬구나. 전혀 몰랐네.”

민정씨는 강대리의 그런 상황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언니 며칠 전 회사에 난리난 거 알아요?”


“왜? 무슨 일 있었어?”


“언니 팀에 조성기과장 있잖아요? 조과장 일로 회사가 발칵 뒤집혔어요.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어요.”


민정씨는 오랜만에 조성기과장 이름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살짝 몸이 굳어졌다.


조성기과장은 같은 팀 이었지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다만 자기 일 잘하고 손해보기 싫어하는 조성기과장을 볼 때마다 왠지 뱀 같다는 느낌이 들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과장 이름을 들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던 것이다. 조성기과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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