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인구과장과 술자리는 3차까지 이어졌다. 오징어 회에 소주를 시작으로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3차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김민수씨는 노래방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날은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이미 술을 많이 마신 상태라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비틀거렸지만 정신은 더 또렷해 지는 것 같았다. 민정씨 생각에 괴롭고 화가 났다. 민수씨는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다. 민정씨는 거실에서 티비를 켜둔 채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 눈을 비볐다.
“오빠, 오늘은 왜 이렇게 술 많이 마셨어?”
“민정아, 오늘 정과장님이랑 술 좀 마셨어. 우리 민정이 한번 안아보자.” 민수씨는 술 냄새를 풍기며 민정씨를 껴안았다.
“으 술냄새. 뭐야. 무슨 일 있었어?” 그녀는 평소 술을 많이 마시지 않던 민수씨가 이상했다. 그는 민정씨를 껴안고 울기 시작했다.
“우리 민정이. 그 동안 많이 힘들었지? 오빤 그것도 모르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민수씨는 머리를 민정씨 가슴에 파묻고 흐느꼈다.
“오빠. 왜 그래? 뭐가 그렇게 미안해?"
나 괜찮아. 정말이야.
민정씨도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가 왜 그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한참동안 민수씨와 민정씨는 서로를 안고 울었다. 그날 밤 둘은 많은 얘기를 나눴다. 민정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두달동안 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은 상태였다. 그녀는 민수씨에게 모든 것을 얘기했다.
민정씨는 팀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정씨가 남자 팀원들보다 성과를 내며 인정 받으면서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힘든 일은 남자들이 하고 민정씨는 손쉬운 일만 한다는 불만이 쌓였다.
민정씨 팀원 6명 중 2명은 민정씨보다 후배였다. 하지만 팀 선배들이 민정씨를 무시하자 후배들도 거기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이치열과장은 민정씨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냈다. 이과장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갈 때도 민정씨만 빼고 밥을 먹으러 갔고 회식을 할 때도 민정씨를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워낙 강성인 이과장이라 후배들은 물론 팀원들도 민정씨를 점점 없는 사람 취급했다. 민정씨는 이과장이 왜 그렇게 본인을 싫어하는 지 몰랐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과장과 친해져 보려고 노력했는데 그럴 때 마다 싸늘한 비웃음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한번은 워크샵 때 한명씩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건배 제의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민정씨는 용기를 내어 이과장과 친해지고 싶다고 얘기했다. 다른 팀에서는 민정씨가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의아해 했고 팀원들은 민정씨의 용기에 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과장은 여전히 민정씨에게 냉담했다.
민정씨 팀장은 민정씨를 도와주려고 했다. 무서운 팀장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팀 내에서 일어나는 따돌림 분위기를 알고 민정씨와도 개인적으로 수차례 면담을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민정씨에게 일부러 어려운 업무를 주고 실력으로 팀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팀원들이 함께 잘못한 업무는 민정씨를 더 혼냄으로써 팀원들이 반성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랬기 때문에 타 부서 사람들이 보기에는 팀장이 나쁜 사람으로 보였다. 팀장은 본인이 악역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민정씨가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
팀장의 노력으로 따돌림은 약해졌지만 민정씨는 이미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영업 업무 특성 상 매일 숫자에 치여살아야 하는데 그게 힘들었다. 그리고 민정씨는 선배들을 보며 본인의 미래를 그려봤다. 민정씨가 더 열심히 하고 조직에서 인정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팀장까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팀장이 되었다고 해도 뭔가 좋을 것 같지 않았다.
그 어려운 팀원 관리를 해야 하고 매출에 대해서 끊임없이 압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민정씨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답답함을 느꼈다. 그런 상태가 며칠 지속되며 민정씨는 유산을 했다. 민수씨에게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민정씨는 그 당시 임신 초기상태였다.
민정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뛸 듯이 기뻤지만 민수씨에게는 비밀로 했다. 조금 더 상태가 안정되면 얘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민정씨는 유산을 하게 되었고 회사를 그만둬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민정씨가 민수씨에게 포장마차에서 흐느끼며 회사를 그만둬야 되겠다고 한 날. 그 날 그녀는 유산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민정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멍한 상태로 생활했다. 도대체 자신이 뭘 잘못한 거지 하는 자책과 함께 팀원들에 대한 원망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런 마음이 없어졌다. 처음부터 회사가 민정씨의 길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특히 영업 업무는 민정씨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민정씨는 회사에 다니며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 하는 의문과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없었고 하루 하루 버티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평일에는 회의감 속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주말에는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했지만 미처 다 충전이 되지 않은 상태로 주말은 지나갔다. 그런 상태로 주말이 지나가면 다시 회의감 속에서 일을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그렇게 버텼던 것이다.
그녀는 잘 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그런 것이 점점 쌓이며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민정씨가 그렇게 참으며 조금 더 일을 했다면 곪았던 상처가 썩어서 터졌을 것이다.
민정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몸을 추스르며 본인이 얼마나 내면적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는지 알게 됐다. 회사를 그만두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민정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서는 민수씨가 출근을 하고 나면 동네 길을 걷기도 하고 공원에 가서 산책을 했다. 이사온 지 꽤 됐지만 동네 주변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민정씨는 동네를 걸으며 그 동안 너무 여유없이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동네에 그렇게 예쁜 가게가 많은 줄 몰랐다. 아기자기한 모습의 동네 상점들을 보며 그녀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좋은 식당은 나중에 민수씨와 같이 와야 겠다고 생각하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뒀다. 걷다가 지칠 때는 동네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셨다.
예전에 민정씨는 주로 회사 근처에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에만 다녔는데 조그만 동네 카페에 가 보니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주인이 직접 커피를 내려줬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민정씨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방에 넣어 온 책을 꺼내 읽기도 했다.
그녀는 얇은 감성 에세이를 좋아했는데 회사에 다닐 때는 책을 마음 편히 읽지 못했다. 하지만 동네 카페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떠오르는 생각도 책 여백에 간단히 메모했다.
예전에는 책을 읽을 때 급한 마음에 빠르게 읽어 내려갔는데 이제는 천천히 글을 곱씹으며 책의 내용을 음미할 수 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다보면 완전히 다른 내용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당시 읽었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라 민정씨는 책을 읽으며 깜짝깜짝 놀랬다.
가끔은 노트북을 꺼내 신문기사를 읽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체크했다.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었다. 그녀가 회사에 다니던 시절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고 세상은 바쁘게 돌아갔다.
실업률이 사상 최대라는 기사, 금리를 인상한다느니 마느니 하는 기사, 아파트 가격이 사상 최대라는 기사, 부동산 가격을 잡는 정책을 발표한다는 기사, 경제가 어렵다는 기사, 지난 정권 있었던 부조리한 사건과 적폐 청산 관련 기사 등등.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고 이슈는 항상 있었다. 그녀는 회사에서의 일이 거의 생각나지 않았다. 5년 동안 회사에 다녔는데 정말 회사에 다녔던 것인지, 꿈을 꾼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조금씩 회복을 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