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내가 직장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것

소설

by 봉봉주세용

김민수씨가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 덧 4년이 지났다. 그는 이제 회사에서 김대리로 불렸다. 그는 조직에서 인정받는 구성원이었다. 동기들보다 늦은 나이로 입사했지만 회사 생활을 할 때의 간절함과 진지함은 그 누구보다 강했다.


어렵게 회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회사 생활이 더 소중했던 그는 작은 일이 주어져도 최선을 다했다.


그는 처음에 동기들보다 일 배우는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업무를 대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 때문에 조금씩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3번의 인사발령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바뀐 조직에 빠르게 적응하며 성장해 나갔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전국 GX 매장에 들어가는 간편식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간편식 업체를 선정하고 상품 소싱 및 마케팅을 총괄하는 부서에서 일했는데 편의점에서 알바를 할 때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기획한 도시락은 매장에 깔리면 바로바로 팔리는 편의점 인기 품목이 되었다.


편의점 알바를 할 때 그 누구보다 편의점 도시락을 많이 먹어봤기 때문에 소비자가 어떤 도시락을 원하는 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수씨는 어느 새 회사에서 ‘히트상품 메이커’로 불리고 있었다.




민수씨는 편의점 알바를 할 때 점장으로 만났던 고민정씨와 만난 지 2년이 되던 해에 결혼을 했다. 민수씨는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 민정씨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야무진 성격의 민정씨였지만 시간이 지나도 남성적인 조직 문화의 회사에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동료들은 민정씨가 회사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정씨는 남자 상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농담에도 마음에 상처를 입고 남몰래 울었다. 회사 생활이 힘들어 질수록 민정씨는 민수씨에게 더욱 의지했고 둘은 예정보다 빠르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민수씨와 민정씨는 서울 외곽에 있는 방 2개가 딸린 허름한 주택에서 전세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민수씨와 민정씨가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돈과 은행 전세대출로 겨우 구한 집이었는데 민수씨는 그 조그만 주택이 마음에 들었다.


비록 전세였지만 민수씨와 민정씨가 누울 공간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민수씨와 민정씨는 퇴근할 때 항상 함께 했다. 민수씨가 야근을 하게 되면 민정씨가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렸고 민정씨가 야근을 하게 되면 민수씨가 근처를 돌아다니며 민정씨를 기다렸다가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주로 지하철을 타고 퇴근했는데 가끔은 내려야 할 역보다 1-2역 앞에서 먼저 내렸다.


둘은 손을 잡고 주위를 구경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걸었다. 주로 얘기를 하는 쪽은 민정씨였다. 그녀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민수씨에게 얘기했다. 그녀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일의 진행상황, 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회사에서 떠도는 소문 등.


민수씨는 그녀의 얘기를 심각하게 듣기도 했고 함께 웃기도 했으며 어떨 때는 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보통은 집에 가서 저녁을 해 먹었는데 가끔은 걷다가 괜찮을 것 같은 식당이 보이면 들어가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들어갔다.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는 집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우동에 소주를 한잔했다.


하루는 퇴근을 하는데 민정씨가 소주를 한잔 하고 들어가자고 했다. 민수씨는 조심히 민정씨의 얼굴을 살폈는데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그날은 포장마차에서 매콤한 닭똥집에 소주를 한잔했다. 그녀는 보통 때보다 소주를 빠르게 마셨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민수씨가 물었지만 민정씨는 아무 일도 없다며 웃었다.


그렇게 한잔 한잔 마시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갑자기 민정씨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빈 소주잔을 들고 흐느끼는 민정씨를 보며 민수씨는 당황했다. 하지만 민수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아 주었다.


민정씨는 민수씨의 품에 안겨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꾹 억누르며 우는 것 같아 민수씨는 마음이 아팠다. 한참을 울고나서 민정씨는 민수씨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아마 회사에서 민정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오빠 아무래도 나 회사 그만둬야 할 것 같애. 미안해.” 민정씨가 눈물을 닦으며 얘기했다.


“뭐가 미안해. 그까짓 회사 그만두면 되지.” 민수씨는 그녀에게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때가 되면 그녀가 얘기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오빠 나 왜 이렇게 바보같지?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회사 생활 잘 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지?” 민정씨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민정아. 너만큼 회사생활 잘 하고 있는 사람 없어. 정말이야.” 민수씨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밝은 모습의 그녀가 속으로는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지. 다음 날 민정씨는 회사에 연차를 내고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부서장에게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 회사에서는 민정씨를 잡으려고 여러 번 면담을 시도했다.

하지만 민정씨는 퇴사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인사부에 제출하는 사직서에는 퇴사 사유로 ‘일신상의 사유’ 라고만 적혀있었다.




김민수씨는 오랜만에 회사 선배인 정인구과장과 회사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정과장은 민수씨가 신입사원이던 시절부터 챙겨주던 고마운 선배였다.


민수씨는 신입사원 시절 정과장과 술자리를 자주 했었는데 민정씨와 결혼을 하고 나서는 거의 술자리를 갖지 못했다. 민정씨가 퇴사하고 나서 민수씨는 한 동안 퇴근할 때 쓸쓸함을 느끼던 차였다. 저녁식사로 오징어 회에 간단히 소주를 곁들였다.


“너 결혼하고 나서는 형님한테 저녁 한번 먹자고 안하냐?” 정과장이 소주를 원샷하고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과장님. 앞으로 자주 먹으면 되지요.” 민수씨는 능글맞게 대답했다.


“그나저나 민정씨는 괜찮냐?” 정과장이 걱정되는 말투로 물었다.


“괜찮고 말게 뭐 있어요. 요즘은 집에서 쉬고 있어요.” 민수씨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민정씨는 퇴사한 지 두달째가 되어가고 있었고 집에서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민수씨는 집에서 회사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고 민정씨도 그에게 회사 얘기를 묻지 않았다.


“그래도 민정씨가 그 팀에서 그만큼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그 팀장이라는 새끼가 나쁜 놈이지.” 정과장은 갑자기 흥분하며 얘기했다.


민수씨도 민정씨 팀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실적 압박이 특히 심했고 팀장 역시 성격이 불같았다. 민수씨가 그 팀장과 함께 일을 한 적은 없었지만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회사 생활이 다 그런거죠 뭐. 남의 돈 받기가 쉽나요.” 민수씨도 소주를 한잔하고 말했다. 그날 정과장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회사 돌아가는 소문을 잘 모르던 민수씨는 처음 듣는 얘기가 대부분 이었다.




민정씨 팀은 전체적으로 실적이 좋지 않았는데 그건 팀이나 개개인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외부적인 환경 변화가 주 요인이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민정씨 팀을 주 타겟으로 압박을 했는데 민정씨 팀장은 그런 압박을 받을 때 마다 은근히 민정씨 탓을 했다.


민정씨 팀은 팀장 1명에 팀원이 6명 이었는데 민정씨가 유일한 여자였다. 팀장은 회식을 할 때 민정씨를 빼고 남자 팀원들만 데리고 가서 회식을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여자가 팀에 끼어 있어서 팀이 안 돌아간다고 얘기를 했다고 한다.


본부에서 어려운 일이 내려오면 민정씨에게 그 업무가 돌아갔고 상대적으로 편한 업무는 나머지 남자 팀원들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민정씨가 조그만 잘못을 하면 팀장은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한번은 명절을 앞두고 거래처와 물량 공급 일정에 차질이 생겼던 적이 있는데 다른 팀원들에게는 화를 내지 않고 민정씨에게 모든 잘못을 돌리며 화를 냈다고 한다.


민정씨는 그날 선채로 1시간 가까이 팀장에게 혼이 났는데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같은 층이 아니라 민수씨는 그런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민정씨도 그런 얘기를 민수씨에게 한 적이 없었다. 회사 동료들은 민정씨의 상황을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남편인 민수씨에게 그런 얘기해 줄 수 없었다. 민수씨는 정과장에게 민정씨의 얘기를 듣고 화가 났다.


민정씨 팀장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 보다 그런 힘든 민정씨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본인에게 더 화가 났다. 그렇게 힘든 상황이었는데 민정씨는 남편인 민수씨에게 조차 얘기하지 못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퇴근할 때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얘기하던 민정씨가 생각나 더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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