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김민수씨 31살에 GX 신입공채 합격

소설

by 봉봉주세용

그날 따라 참치가 맛있었다. 민수씨가 좋아하는 오도로의 상태가 좋았는데 마블링이 예술이었다. 민정씨는 눈살을 좋아했는데 참치 한점을 먹고 소주를 한잔씩 하다보니 어느 새 테이블에 빈병이 꽤 많아졌다.


소맥을 한잔씩 마시면서 소주도 함께 마시다 보니 평소보다 더 취기가 올라왔다. 하지만 기분 좋은 알딸딸함 이었다. 민수씨와 민정씨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둘은 얘기가 꽤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민정씨는 평소 친구들과 술자리를 할 때 보다 자연스럽게 많은 얘기를 했다. 자기도 모르게 수다를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기도 했다. 민정씨는 자기가 얘기를 하면서도 왜 이렇게 사적인 얘기까지 하고 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옆에서 미소지으며 묵묵히 들어주는 민수씨를 보며 얘기를 멈출 수 없었다. 민수씨도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셨고 민정씨의 얘기를 듣는 게 즐거웠다.




민정씨는 입사한 지 4개월 차였는데 그 즈음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했다. 명문대를 나온 그녀는 회사에 입사해서 전략을 짜고 마케팅을 하는 업무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대부분 그녀의 대학 동기들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현장 경험 1년을 해야 한다는 회사 방침 상 점포 관리를 하고 있었다.


매일 점포로 출근해서 장갑을 끼고 무거운 박스를 옮기며 제품을 매대에 채워넣어야 한다. 손님들이 매장에서 먹고 버린 라면 국물과 쓰레기를 치우고 점포 내부와 외부 청소를 하면서 유리창을 닦아야 했다. 머리를 쓰는 일 보다는 육체노동이 대부분이다.


알바생 관리하는 것도 힘들었다.


아무 연락없이 갑자기 알바생이 출근을 하지 않고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고 돈이 비는 일도 종종 생겼다. 매장에 있는 제품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CCTV를 돌려보며 사람을 의심해야 했다. 특히 카운터 뒤에 있는 담배에서 로스가 날 때는 CCTV를 돌려보며 알바생을 의심해야 했는데 그때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다.


그녀는 본사에 앉아 일을 해야 하는데 자기가 왜 매장에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고 때론 화가 났다. 하지만 그녀는 민수씨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비록 하나의 점포에 불과하지만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봤고 사람들이 편의점에 와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녀는 매장에서 경험한 것이 본사에 올라가서 근무를 할 때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퇴사 대신 편의점 관리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민수씨는 그런 민정씨의 말을 듣고 부끄럽다고 했다. 사실 민수씨는 편의점 알바를 할 때 그런 생각을 갖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거창한 생각을 갖고 알바를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한 것일 뿐이다.




노량진에서 전 여자친구였던 새롬씨가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후 민수씨는 한번 더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다. 그는 경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더 이상 노량진에서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좌절하지 않았다.


경찰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그렇다고 계속 주저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노량진에서 벗어나기로 했는데 마침 대학교 동아리 선배가 살던 고시원 방이 비어있어 그 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잠시 머물기로 한 그는 고시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알바를 구했고 그게 2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날렵하고 단단한 몸이었던 그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점점 살이 붙었다. 예전에는 눈빛이 살아있었고 턱선이 날렵했는데 점점 배가 나왔고 몸이 둥글게 변했다. 편의점에서 나오는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을 폐기하는 것이 아까워 하나 둘 먹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이 20킬로그램 가까이 쪘다.


도시락만 먹는 것이 아니라 콜라와 캔맥주를 곁들여 먹다보니 더 급격하게 체형이 변했다. 그는 알바를 하며 다양한 손님들과 얘기를 하면서 성격이 부드러워졌다. 경찰만 바라보고 공부를 하던 시절보다 보는 눈도 넓어졌다. 그런 그를 어린 학생들이 특히 더 따랐고 그러다 보니 그는 사람좋은 편의점 행님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민수씨와 민정씨는 꽤 취한 상태로 참치집을 나섰다. 민정씨는 근처에 가서 생맥주를 한잔 더 하자고 했다. 이미 취한 상태라 둘은 비틀거리며 어느 새 자연스러게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둘은 잡은 손을 흔들며 크게 웃으면서 걸었다.


강남역 8번 출구 뒤편에 있는 분위기 좋은 수제맥주집에 들어갔는데 빈 자리가 없었다. 다른 맥주집을 찾아 논현역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민정씨는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고 민수씨와 민정씨는 모텔에 들어가서 치킨을 시켜먹기로 했다. 하지만 둘은 치킨을 먹지 못했다.


민수씨와 민정씨는 거친 바다의 파도처럼 서로를 휩쓸고 휘감으며 밤새 껴 안고 있었다.


민수씨는 편의점 알바를 하며 꾸준히 회사에 원서를 쓰고 있었다. 대학 마지막 학년에 대기업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그는 크게 좌절했다. 하지만 이제 떨어지는 것에 익숙했고 내공이 생겨 좌절하지 않았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것이었고 면접까지 가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왔다.


2년 동안 그가 쓴 원서는 200개가 넘어가고 있었는데 그는 그 만큼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이미 그의 나이는 31살이었고 신입사원으로 취업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원서를 냈다.


꾸준히 문을 두드리던 김민수씨는 결국 GX그룹 공채에 신입으로 합격했다.


2년동안 GX25시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포트폴리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타 회사 편의점과 비교해서 장단점을 분석한 내용과 개선해야 할 포인트를 제시했는데 그로 인해 실무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종 면접에서는 운이 따랐다. 면접관 중 한 명이 태권도 매니아 였는데 민수씨의 대학교 시절 태권도부 활동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 면접관은 민수씨에게 태권도 발차기를 보여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민수씨는 그 자리에서 주특기인 540도 뒤돌려차기 발차기를 보여줬다.


민수씨는 편의점 알바를 하며 졸릴 때마다 밖에서 발차기 연습을 했는데 그게 빛을 발했다. 최종 면접에서 합격 여부를 두고 민수씨의 나이가 문제가 됐지만 발차기를 본 면접관의 강한 어필과 민수씨가 보여줬던 편의점에서의 진정성이 인정되어 결국 최종 합격을 했다.


주위에서는 31살에 대기업에 합격을 한 민수씨를 보고 기적이라고 했다. 부모님께 제일 먼저 전화로 합격 소식을 알렸는데 민수씨 어머니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화기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민수씨는 전화가 끊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후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전화를 넘겨받은 아버지도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 아버지가

고생했다 우리 아들


이라고 말을 했고 민수씨는 그 한마디에 왈칵 울음이 쏟아져 더 이상 통화를 할 수 없었다. 끊긴 전화를 잡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민수씨는 한참동안 울었다.


노량진에서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새벽에 학원으로 향하던 길, 추운 길거리에서 컵밥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던 모습, 마지막 경찰공무원 시험을 볼 때 갑자기 문제지가 흐릿해지며 보이지 않았을 때, 편의점에서 밤새 알바를 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와 삼각김밥에 라면을 먹을 때 등. 그 동안 힘들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친구들은 민수씨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부산에서 건설회사에 다니는 성욱씨는 그 주에 서울로 올라와 민수씨가 입을 수 있는 정장을 사주고 내려갔다.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준기씨는 수원에서 조그만 호프집을 운영하며 연기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민수씨의 합격소식을 듣고 그날 바로 민수씨를 보러왔다.


준기씨와 민수씨는 오랜만에 막창에 소주를 마셨다. 노량진에서 민수씨가 힘들어 할 때마다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주고 위로해줬던 준기씨는 민수씨의 합격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줬다. 준기씨와 민수씨는 노량진에서 공부하던 시절 얘기를 하며 즐겁게 술을 마셨다.


그날 민수씨는 그 동안 몰랐던 준기씨의 상황을 알게 됐다. 항상 밝고 유쾌했던 준기씨도 사실 노량진에서의 생활이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민수씨에게 힘든 내색하지 않으며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질 때도 덤덤한 듯 보였는데 그 당시 준기씨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풀리지 않는 인생이 너무 답답해서 가야 할 곳을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노량진에서 민수씨를 만나 가끔 소주잔을 기울이며 준기씨는 조금씩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외로운 시기에 민수씨를 만나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민수씨는 준기씨에게 위로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준기씨는 민수씨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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