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형님 오늘은 위대한 소세지 안 들어왔어요?"
“위쏘는 벌써 다 팔렸지. 한 시간 전 쉬는 시간에 애들이 내려와서 다 쓸어갔어.”
저녁 9시가 넘었다. 학원 쉬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근처 학원에 다니는 고등학생들이 편의점으로 몰려왔다. 학생들이 몰려오는 이 시간을 민수씨는 좋아했다. 계산대에 서서 학생들과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신문이나 인터넷에서는 요즘 학생들이 버릇 없다고 하는데 민수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민수씨 편의점에 오는 학생들은 확실히 그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보다 덩치는 커졌지만 오히려 마음은 여리고 순진한 구석이 많은 것 같았다.
그는 쉬는 시간마다 편의점에 내려와서 간식을 사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학생들이 귀여웠다. 그는 외동이라 형제가 없었는데 그래서 학생들이 더 동생같았고 챙겨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유통기한이 지난 김밥이나 샌드위치는 뒤로 빼서 폐기처분을 했는데 친한 동생들이 오면 민수씨는 빼 두었던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슬그머니 동생들이 라면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꺼내주었다.
유통기한에서 몇 시간 지난 음식은 먹어도 별 탈이 없었는데 학생들은 그런 민수씨에게 친형같은 친밀함을 느꼈다. 그래서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살 것이 없어도 어슬렁 거리며 편의점에 내려와서 잠시 수다를 떨고 다시 학원으로 올라갔다. 그러다보니 민수씨가 근무할 때 편의점은 항상 학생들이 가득했고 활기가 넘쳤다.
그는 일주일에 2번 쉬었는데 민수씨가 쉬는 날에는 넓은 편의점이 텅텅 비었다.
편의점 점장인 고민정씨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25살의 사회 초년생이다. 그녀는 GX그룹 공채로 회사에 입사했는데 회사 방침 상 1년동안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야 했다. 명문대 출신인 그녀는 미국 동부에 있는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동안 생활했다.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큰 키에 몸매가 좋았다.
오랫동안 달리기와 필라테스를 한 그녀는 인스타에서 꽤 유명한 스타였다.
여자들이 갖고 싶은 워너비 몸매로 유명했는데 잘 웃지 않았고 웃을 때도 살짝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편의점 단골인 고등학생들은 그녀를 ‘GX 시크걸’ 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계산이 빨라 그날그날 재고가 남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거의 딱 맞게 발주를 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주로 낮시간에 근무했는데 주간 매출 통계를 낼 때 마다 이상한 점이 있어 궁금하게 생각했다. 저녁 알바생 김민수씨가 근무를 할때와 하지 않을 때 매출 차이가 크게 났던 것이다. 편의점에 근무하는 알바생이 5명 있었는데 알바생 별로 근무시간 대비 매출 통계를 내 봐도 김민수씨가 근무할 때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녀가 볼 때 김민수씨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보통 키에 통통한 몸, 덥수룩한 머리와 검은색 뿔테안경을 쓰고 있는 김민수씨는 말투도 어눌했다. 가끔 그녀는 김민수씨와 업무 교대를 할 때 짧게 얘기를 했지만 그때도 특별한 느낌이 없었다. 30대의 나이에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그를 보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건 아닌지 생각했을 뿐이다.
날씨가 포근한 어느 날 고민정씨는 본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전국 최우수 알바생’으로 김민수씨가 뽑혔다는 것이다. 편의점에 배치받은 지 2달이 넘었지만 사실 고민정씨는 그런 상이 있는 줄도 몰랐다. GX는 편의점 전용 어플이 있는데 거기에 알바생을 추천하는 메뉴가 있다.
간단히 사연을 쓰고 편의점 위치와 알바생을 추천하면 되는 것인데 거기서 김민수씨가 압도적으로 많은 추천을 받았다는 것이다. 덩달아 고민정씨가 운영하는 편의점이 ‘친절 편의점’으로 뽑혔다고 했다.
고민정씨는 추천 글을 하나씩 읽어봤다.
‘편의점 알바형님 때문에 편의점에 자주 가게 됩니당. 형님 사랑해요.’
‘편의점이 아니라 집 거실 같은 편안함이 있어요. 김민수씨 화이팅!’
‘학원 쉬는 시간마다 민수 오빠가 있는 편의점으로 가는 게 습관이 되었어요. 덕분에 간식을 너무 많이 먹게 되네용 ㅠㅠ’
‘우리 학원 샘들도 민수오빠 때문에 편의점에 자주 간대요. 샘들이 추천해 달라고 해서 추천 글 남겨용.’
‘민수행님이 가르쳐 준 운동방법으로 운동하다 보니 몸이 좋아졌어요. 고마워요 행님.’
민정씨는 추천 글을 읽으며 의아했다. 도대체 편의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이렇게 많은 추천을 받았나 싶었다. 그녀는 그날 근무 교대를 할 때 민수씨에게 물었다.
“민수씨 이번에 이달의 최우수 알바생 뽑힌 거 알아요?”
“아. 그거 또 뽑혔어요?” 민수씨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축하해요. 예전에도 이런 거 뽑힌 적 있어요?”
“그거 한번씩 하는건데 지난 번에도 뽑혔어요. 그때 상금으로 30만원 받았거든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민수씨를 보며 민정씨는 더 궁금해졌다. 민수씨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는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근처 커피숍에 가서 매출 자료를 정리했다. 그리고 저녁 8시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왔다.
편의점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민정씨가 근무할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편의점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학생들 뿐 아니라 아주머니, 아저씨 손님도 꽤 있었다. 손님들이 물건을 사서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 안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민정씨는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서 갔던 시골 오일장이 떠올랐다.
북적북적 대면서 활기 넘치는 그런 오일장의 모습이 편의점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택배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드신 아주머니가 택배 기계 앞에서 헤메고 있으니 민수씨가 한 학생에게 아주머니 택배 기계 사용하는 것을 가르쳐 주라고 했다. 학생은 차분하게 아주머니가 택배 기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줬다.
계산대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는데 학생들이 저마다 간식거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딸기우유, 핫바, 삼각김밥, 컵라면, 샌드위치 등. 줄은 길었지만 빠르게 줄어들었다. 김민수씨는 한명한명 차분하게 응대를 하며 계산대에서 계산을 해 주고 있었다.
학생들 이름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계산을 할 때 학생 이름을 부르며 짧은 잡담을 나눴다. 고민정씨는 학생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인지 싶어 자기도 모르게 학생들의 옷을 살펴봤다. 당연히 이름표는 달려있지 않았다.
긴 줄이 없어지고 계산이 끝났을 때 민정씨는 민수씨에게 잠시 밖에서 음료수를 한잔 하자고 했다. 민정씨는 그에게 시원한 오렌지 쥬스를 건넸다.
“민수씨. 어떻게 학생들 이름을 다 외워요?” 민정씨가 물었다.
“다들 단골이라 그래요. 자주 보니 이름을 외울 수 밖에 없죠.” 민수씨가 대답했다.
그는 학생 손님 뿐 아니라 어르신 손님에게도 정성을 다했다. 학생들에게 얘기할 때는 반말로 편하게 얘기했지만 어르신 손님에게는 깍듯하게 대했다. 그래서 집 근처에 편의점이 있는데 민수씨를 보러 편의점에 오는 손님도 꽤 있다고 했다. 그리고 편의점을 지나갈 때 민수씨를 보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간단한 음료수나 생필품을 사고 가는 손님이 많은 것 같았다.
민정씨는 그런 민수씨가 고마웠다.
덕분에 민정씨도 ‘친절 편의점’에 뽑혀 본사에서 점포 관리를 잘 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민정씨는 민수씨에게 쉬는 날 저녁을 먹자고 했다. ‘전국 최우수 알바생’과 ‘친절 편의점’ 기념 회식이었다.
이틀 후 저녁시간에 민정씨와 민수씨는 강남역 근처에 있는 참치집에서 만났다. 부산이 고향인 민수씨는 회를 좋아했는데 참치회는 오랜만에 먹는 것이었다. 민정씨는 차가운 카스 맥주와 처음처럼 소주를 시켰다.
그녀는 회사 회식에서 배운 소주1, 맥주3.5의 비율로 소맥을 말았다. 그녀는 소맥을 만든 잔에 젓가락 하나를 꽂고 나머지 젓가락으로 꽂힌 젓가락을 가볍게 쳤다. 거품이 밑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퍼지며 소맥이 섞였다. 둘은 건배를 하고 첫잔을 원샷으로 마셨다.
차가운 소맥이 몸 안으로 들어가며 그 시원함과 짜릿함이 순식간에 머리까지 퍼져나갔다.
항상 시크한 표정의 민정씨도 소맥을 마시고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우수 알바생 축하 기념 회식이라는 명분으로 만났지만 그날은 편의점 점장과 점원이 아니라 편하게 친구처럼 술을 마시기로 했다.
민수씨는 조그만 그릇에 나오는 메밀죽을 먹고 참치회를 먹기 시작했다. 붉은색 아카미 한점을 집어 접시로 가져왔다. 참치에 생와사비를 조금 올리고 무순 2점을 올렸다.
젓가락으로 참치를 반으로 접어 간장에 살짝 찍어 먹었다. 단백한 아카미 한점이 입에서 스르륵 녹아 없어졌다. 민수씨는 가볍게 소주를 한잔 더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