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내가 쓰게 될 줄은 몰랐지 시X서.
연예인 스캔들 기사가 왜 올라가!
때는 1년 차에 접어든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오랜만에 호통 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웬만하면 실수가 나오지 않아 자신과 협력 직원의 능력을 신뢰하는 단계였다. 그런데 인생이 그리 쉬울 리가 있나. 운명의 장난처럼 대형 사고가 하나 터졌다.
그날, 갑자기 책임에게 1:1 채팅이 왔다. 한 품번을 던져주더니 상세페이지를 빨리 내리란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확인해 보니, 웬걸. 정말 대형사고였다.
어떻게 연예인 스캔들 기사가 상세페이지에 올라가지? 미친 거 아냐?
책임은 수석님께도 소식을 전했고, 수석님은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수석님이고 책임이고 할 것 없이 나에게 1:1 채팅이 날아왔다. 다른 것도 아닌 연예인 스캔들 기사 일부가 상품 상세페이지 위에 얹어져 올라가 있으니 난리가 날만도 했다.
나는 상세페이지 이미지부터 빠르게 내렸다. 다행히 해당 상품이 노출된 건 약 40분 정도. 비인기 분류의 상품이라 확인한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오픈된 것 자체가 문제였기에 대형사고임은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이걸 내부에서 먼저 발견한 게 아니라 고객사 측에서 발견한 것이라 공식 이슈로 제기되었다.
이거 누가 작업했어? 왜 스캔들 기사가 올라가?
분노가 극에 달은 수석님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와 디자이너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곧장 대답할 수 없었다. 원래 사고라는 게 의도해서 나는 게 아니지 않나.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고, 우리도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랐다.
왜 이렇게 됐냐고!
어떻게든 원인을 파악해 보려고 확인하던 중, 수석님의 목청이 한껏 높아졌다. 나와 디자이너들은 이미 초조한 마음으로 원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설명을 하라는데, 우리도 정말 설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원인을 알아야 설명도 할 것 아닌가.
그러면서 수석님, 책임 할 것 없이 나에게 채팅을 보내왔다. 작업 당시의 상황부터, 최종 반영 일이 언제였는지까지. 왜 지금까지 발견을 못했는지도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상황을 설명했다.
해당 상품은 본래 제휴몰 단독 런칭이었다. 그래서 전용 이벤트 페이지가 따로 제작되었고, 기본 상품 상세페이지는 후에 제작되었다. 수정도 많았고, 담당 디자이너도 둘이었다. 가장 최근에 상단 수정이 있었다. 하지만 간단한 수정이라 캡처본이 올라간 하단은 확인하지 않았다. 캡처본은 작업하다가 오류 혹은 실수로 올라간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이유로 올라간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제휴 단독 상품이어서 자사몰에는 노출될 리 없다 생각해서 검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최대한 담백하게 담아냈지만, 당시 나는 앞뒤로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무조건 빌었다. 작업 자체는 디자이너들이 했지만, 어쨌든 최종 게시자는 나였다. 나의 실수도 명백했기에 나는 빌고 또 빌었다.
다들 업무 시간에 일 안 해? 검수는 대체 왜 똑바로 안 하는 거야?
다른 것도 아니고 어떻게 연예인 스캔들 기사가 올라가냐고!
결국, 화가 끝까지 난 수석님은 직원을 모두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나를 포함해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였고, 다른 직원들도 험악한 분위기에 몸을 사렸다. 수석님은 자리에 앉지도 못하게 한 채 한참 동안 설교를 진행했다. 우리는 다 같이 벌을 섰다.
내가 메일 보내는 사람들은 시말서 써서 제출하세요. 사고를 쳐도 수습이 가능한 사고를 쳐야지!
긴 설교는 시말서 작성 고지 예고로 끝이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메일이 왔다. 나와 메인 디자이너님, 그리고 책임. 이렇게 셋이 시말서 대상자로 공표되었다. 함께 작업을 진행했던 디자이너 한 분은 왜 자신은 시말서 대상자가 아니냐며 의아함 반 미안함 반으로 물었지만, 이미 멘탈이 나간 나에게 그게 들릴 리 만무했다. 차라리 나도 누가 대신 책임을 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시말서는 어떻게 쓰는 거예요...?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우리는 먼저 수습부터 했다. 상세페이지는 금방 수정되었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대체 시말서는 어떻게 쓰는 것인가.
폼이랄 것도 없는 시말서 양식을 받고 내 머리는 백지가 되었다. 광활한 페이지에 대체 무슨 내용으로 채워 넣어야 한단 말인가. 난생처음 써보는 시말서였다. 더군다나 원인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이슈였다. 내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하는 내용을 쓰면 되는데, 뭐부터 써야 할 지 감도 안 잡혔다.
그래서 포털사이트에 미친 듯이 검색을 시작했다. 다른 업무는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어떤 문체로 써야 하는지, 하다못해 얼마큼의 양을 채워야 하는 지도 찾았다. 전부 두루뭉술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직장 상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최종 검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했다. 앞으로 이런 일 없게 하겠다.
우여곡절 끝에 이 짧은 문장 하나를 가지고 시말서 내용 칸을 다 채웠다. 최대한 담백하게 늘이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모르겠다. 원인이 파악되지도 않은 잘못에 대해 구구절절 빌어야 하니 더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억울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으며, 내가 디자인 작업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최종 검수는 내가 했어야 했다. 어찌 보면 내가 나와 동료를 너무 믿은 탓에 발생한 사고였다.
그래서 나는 나은 편이었다. 내 잘못은 명확했으니까. 최종 게시자로서 검수를 하지 못한 죄. 이건 원인과 상관없이 잘잘못을 나눌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직접 작업했던 것인데, 원인은 알 수 없다. 심지어 작업자도 둘이니 누구의 잘못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반성문과도 같은 시말서를 써야 한다니. 그 누구보다 억울하고 화났을 것이다.
그럼 네가 했지 누가 했는데? 다시 써!
아니나 다를까. 디자이너가 시말서를 제출하러 가자 수석님은 무턱대고 화부터 냈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화가 난 사람이 뭐가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어오겠는가. 차마 욕을 할 수도, 울 수도 없는 억울한 상황에서 시말서를 다시 들고 가는 디자이너를 보며 생각했다.
회사가 참 X 같구나.
회사에서는 꼭 한 번씩 불명확한 원인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생겼다. 내 부사수가 저지른 실수를 대신 책임져야 하는 일도 있었으며, 그저 같은 팀이라고 혼나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가 불리한 상황에는 개인에게 책임을 물었고, 개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그의 상급자나 팀에게 연대 책임을 부여했다. 한마디로, 회사 마음대로 상사 마음대로다.
나는 딱 그때 환멸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가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수많은 현실의 벽과 문제들이 나를 붙잡았다. 붙들린 나는 또 나를 탓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걸 왜 못 봤을까. 왜 하필 이번에 놓친 걸까.
결국 병이 도졌다. 자책 병, 불안 병, 스트레스 병. 어쩌면 직장인이라면 하나씩 다 달고 다닐 그런 병. 그러나 예전만큼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이제는 맥주를 들이켜며 욕 몇 번 쏟아내면 다 흘러갈 일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내 상처 위에는 딱지가 앉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굳은살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이후에 금세 멘탈을 회복하고 이를 박박 갈며 미친 듯이 검수했다. 수석님의 아니꼬운 시선 따위는 무시했다. 이미 나는 물을 다 닦았다. 이미 닦았는데 쏟아진 물이 어딨다고 뭐라 하겠는가. 그러니 무슨 말을 더 할 필요도 없이 다음 일이나 잘하면 됐다. 그렇게 다시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사람이 모이면 꼭 일이 생긴다. 그건 우리 회사도 피해 갈 수 없는 관성인가 보다. 나는 며칠 뒤, 시말서 따위는 까맣게 잊을 만한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이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다.
*본 글은 시리즈로, 이야기가 다음 회차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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