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49
찰나의 순간에 만들어낸 성과와
그렇지 못한 타이밍
태국 방콕에서 열린 'K-Contents Expo 2019'의 마지막 날,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행사장 한편에서 짧게 대화를 나누던 현지 업체 대표가 나의 즉흥적인 제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정식으로 마련된 미팅 테이블도 아니었고, 그저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교감이 이번 출장에서 우리가 그토록 갈구했던 '실질적인 연결'의 물꼬를 터주었다.
다행히 현장에 있었던 한국콘텐츠진흥원 측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MOU(업무협약) 세레모니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이 공식 일정표에는 없던, 그야말로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순간은 훨씬 생생하고 의미 있게 다가왔다.
잘 짜인 각본을 따르기보다 현장에서 발로 뛰며 만들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그 값진 열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계획된 성공보다 때로는 이런 '현장의 변수'가 주는 기쁨이 더 큰 법이다.
그날의 MOU 체결 소식은 곧 여러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었다. 기사화가 되면서 '맘모식스'라는 이름에 태국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작은 규모의 회사로서는 꽤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 셈이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깊이 와닿았던 점은, 친구이자 대표이사에게 '제2의 고향'이라 불리는 이 나라에서 새로운 인연의 끈을 이어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제 2의 고향땅에 든든한 파트너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출장의 가치는 충분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타이밍이었다. 행사장은 이미 폐장 직전의 어수선한 분위기였고, 조명이 하나둘 꺼지며 부스를 철거하는 인력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제휴를 승낙한 이미지맥스 대표 역시 곧바로 다른 약속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반가운 인연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채 작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발길을 붙잡았다.
우리 또한 다음 날 바로 귀국하는 일정이었기에, 더 머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헤어지기 직전, 나는 아쉬움을 담아 그를 붙잡고 말했다.
"꼭 다시 돌아와 사무실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 제대로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건넸다. 짧은 마주침이었지만, 그 맞잡은 손길에는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신뢰와 기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친절한 눈빛을 마주하고 나니, 역시 이곳이 '미소의 나라'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K-콘텐츠 엑스포 2019'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행사의 끝을 알리는 참가사들의 회식 시간이 찾아왔고, 우리는 행사장 인근의 유명 해산물 레스토랑 '쏨분 시푸드(Somboon Seafood)'로 향했다.
방콕 곳곳에 지점을 둔 이곳은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가격대는 조금 있는 편이지만, 대표 메뉴인 푸팟퐁커리(ปูผัดผงกะหรี่)를 맛보는 순간 그 비용은 금세 잊힌다. 부드러운 커리 소스에 볶아낸 게 요리의 풍미는 확실히 제값을 톡톡히 해냈다.
테이블 위에는 이곳의 주인공인 푸팟퐁커리를 필두로 똠얌꿍, 팟타이, 모닝글로리 볶음 등 태국을 대표하는 요리들이 빈틈없이 차려졌다. 코끝을 찌르는 매콤하고 이국적인 향신료의 향은 가라앉아 있던 식욕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쪽에서는 이번 엑스포의 구체적인 성과와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오갔고, 다른 쪽에서는 방콕 거리에서 마주친 풍경이나 숨은 맛집 정보 같은 소소한 경험담들이 공유되었다. 접시 위를 채운 풍성한 요리들과 사람들의 활기찬 대화, 그리고 방콕 특유의 후끈한 열기가 한데 어우러지며 회식 자리는 기분 좋게 무르익어갔다.
회식이 끝나갈 무렵, 반가운 변화가 생겼다. 며칠간 장염으로 고생하던 친구의 안색에 드디어 생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 종일 친구 대신 총대를 메고 일정을 소화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성공적인 파트너십 체결을 자축하고 방콕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웠던 우리는 부촌인 통로(Thong Lo) 지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가 찾은 라이브 펍 'SNAIL'은 강렬한 기타 리프와 드럼 소리로 가득했다. 팝과 록을 넘나드는 에너지는 후덥지근한 방콕의 밤공기와 어우러져 공간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의 유행이라는 과일 소맥 칵테일을 주문했다. 딸기나 복숭아 같은 과일 소주를 베이스로 만든 소맥은 화려한 색감만큼이나 맛도 달콤해 현지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았다. 잔을 부딪치며 출장의 긴장을 털어내고 라이브 공연의 열기에 몸을 맡겼다. 방콕의 화려한 불빛과 음악, 그리고 달콤한 술 한잔이 어우러진 그 밤은 고단했던 며칠간의 여정을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즐거움의 대가는 다음 날 아침 정직하게 찾아왔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짐을 챙기는데, 친구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 어제의 회복세는 '술기운'이었을까, 그의 장염이 야속하게도 다시 도진 모양이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간다면 좋으련만, 공항으로 향하는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서울이 아닌 도쿄였다.
절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맙소사, 우리의 여정은 이제 겨우 절반을 지났을 뿐이다.
태국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방콕을 그저 화려한 관광지로만 바라보던 좁은 시선에서 벗어나, 비즈니스의 기회가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기회의 도시로 다시 보게 된 계기였다. 이때 맺은 우연한 인연에 끊임없는 노력을 보태어 태국 시장을 깊이 파고들었고, 이 과정은 훗날 방콕 지사 설립과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개척이라는 값진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제휴를 맺었던 이미지맥스와는 그 후로도 꾸준히 교류하며 실질적인 비즈니스 노하우를 공유하는 든든한 파트너가 되었다. 그해 가을, 이미지맥스 대표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엑스포에서 함께 땀 흘렸던 멤버들이 이태원에 모여 다 같이 할로윈을 즐기기도 했다. 비즈니스로 시작된 인연이 국경을 넘은 우정으로 확장된 셈이다.
이로써 2주간 이어진 3개국 투어 중 두 번째 도시인 방콕에서도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기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일본 도쿄다. 늘 도쿄 게임쇼의 관람객으로만 찾았던 도시에 이번에는 당당히 전시 참가사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도전이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편, '일본 도쿄 : 서두르지 말되 멈추지 말라 1' 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