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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ll dude Aug 03. 2020

공기업에서 나왔는데.. 美쳤다구요?

"공기업 취준"이 아닌 "공기업 퇴사"에 관한 이야기

여름 끝자락 어느 날 이른 저녁.

무더위가 노을과 함께 서서히 옅어지며 회사 뒤편의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공기가 벌겋게 닳아 오르는 내 얼굴을 어루만진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10년 넘게 이 바닥에 있었으면서 아직 이렇게 쉽게 반응하나 싶어 깊은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한량 중의 한량으로 일은 눈곱만큼도 않으며 온갖 술수를 부리고 입만 살아있는 부장의 용납할 수 없는 그 날의 치사한 행동은 나의 한계치를 넘어섰다. 너무 속상해서 옥상으로 올라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약 6개월간 매일 '퇴사', '번아웃 증후군', '출근하기가 죽기보다 싫어요'를 키워드로 검색하며 살아남기 위한 자기 치유 방법을 부단히 찾아 헤맸다. 하지만 오늘 이 일을 겪고 나니 이젠 마음이 편안해졌다. 끝이라는 생각에 무책임하고 능력 없는 상사에게 화낼 필요도 가치도 없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의 좌절감을 느낄 필요도 없으니 회사 일로 나의 육신과 정신을 망가뜨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내가 퇴사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마음은 이미 떠났더라도 연말까지는 근무를 하면서 동시에 이직이든 전혀 다른 새로운 출발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대다수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얘기했지만, 이렇게 싫은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참고 견뎌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원형탈모가 생기기 시작했고 스트레스로 자율신경계가 무너져 피부 가려움증과 눈을 깜빡이는 틱 증상이 나타나 지친 몸을 위한 휴식도 제대로 취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한 달 간의 롤러코스터 같은 프로젝트들이 연이어 지나가고 모처럼 찾아온 조용한 한 주였다.


오늘따라 화장실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의 모든 것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무언가가 공기를 마구 밀어 내 몸 쪽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았다. 대기압도 아닌 이상한 압력이 내 몸속으로, 눈동자 속으로 파고 들어올 것 같은 기운으로 두려움과 현기증이 일어났다.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변기커버를 닫고 앉았다. 화이트톤의 인테리어와 하얀 LED 조명의 이 공간은 조용하다 못해 숨통을 죄어오는 백색감옥 같아보였다.


그 순간,

'여기서 내가 모든 삶을 정리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이 하얀 불빛 속에서 점차 눈 앞이 희미해지고 숨을 못 쉬게 되어버리면..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면... 더 이상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되고, 지난 몇 년간 푹 자본 적 없는 내 몸을 쉬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눈을 감은 채 점차 숨을 쉴 수가 없고 관자놀이가 부어오를 것 같은 숨 막힘이 내 몸을 채워 누르는 묘한 느낌이 드는데, 머릿속으로 나쁜 상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짧은 순간 내게 일어나는 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현기증이 나면서 옆으로 꼬꾸라질뻔 해 정신을 차리며 일어났다. 호수처럼 잔잔한 강물에 빠져 허우대며 아래로 가라앉으며 정신을 잃어가지만,수면을 관통하여 보이는 햇빛을 끝까지 쳐다보며 숨을 참고 겨우 물 위로 올라와 겨우 숨통이 퍽! 하고 트이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당장 실행에 옮겨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어찌 보면 내 삶의 새 출발을 진정 가능하게 해 줄 중요한 trigger point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 곳에서 근무하기 전, 다른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정식 첫 직장. 급여 조건도 우수했고 남들이 보기에는 철밥통 같다는 그곳에서 우리나라의 부조리한 실태를 몇 번 겪고는 그만둔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물론이고... 특히 나의 부모님은 억장이 무너졌었다고 하시며 아직도 아쉬워하신다. 지금까지 거기 근무했으면 얼마나 잘 되었겠냐고 착각 혹은 무지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사람들은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게 분명하다. 나는 이 곳의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생각하는 방식도 중요시 여기는 가치도 다른 것 같다는 걸 알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찍어져 나오는 공장의 제품들처럼 판에 박힌 삶을 살며 통장으로 들어오는 급여에 만족하며 내 삶이 윤택하다고 하고 싶지 않있다.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면, 여기 있는 내가 잘못 된거 아닌가.


하루 종일 회사에서 컴퓨터를 보고 문서작업과 정말이지 불필요한 탁상 행정 맞춤형인 서류 작성 업무들을 하며 저녁까지 일을 하면 하루가 지나간다. 바깥의 하늘을 바라 볼 시간도 없고 퇴근 후 운동을 즐기고 가족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무언갈 같이 하는 시간이 하루에 1~2시간이라도 있다면 그건 엄청난 여유 있는 삶이라고들 한다.  내가 다니던 공기업은 지방이전화로 인해서 본사가 서울에서 꽤 떨어진 지방에 위치하고 지사가 전국 각지에 있어서 상당수의 많은 직원들이 주말부부로 지낸다. 싱글들은 금요일 밤에 서울 혹은 다른 도시에 있는 본가로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다시 회사가 있는 곳으로 오는, 사실상 주말을 즐길 여유도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내 인생이 하루하루 매달 매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문제는 이런 삶이 싫으면서도 comfort zone을 벗어나는 게 두려워 결국은 가장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 또다시 이 세상 속으로 뛰어든 거였다. 이 공공기관, 공공사업 분야가 내가 제일 자신 있게 지원할 수 있는 분야이니, 싫어서 제발로 나갔다가도 나에겐 밥벌이 하기에 가장 쉬운 일이니, 다른 무언가에 열중하여 뛰어들어 진득이 매진할 용기와 끈기가 없어 다시 이 분야로 컴백하는  바로 나 자신이 문제였다.


대학생 무렵의 난 항상 '난 서른까지 살 거야~ 강렬한 삶을 살고 나면 상관없어'라고 철없는 말을 뱉어냈고, 서른이 되었을 땐 '인생'의 '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겨를도 없이 첫 직장에서 일에 빠져 치열하게 살았다. 서른이 되면 천지창조가 뒤바뀔 것처럼, 이제 늙었다며 슬퍼하던 여자 친구들도, 성대한 30세 파티를 열던 친구들도, 서른이면 세상 다 살았고 뭐 어찌어찌 내가 원하는 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던 나도. 언제 그런 걱정을 하고 염세주의적인 생각을 했었냐는 듯이 살아오면서 희로애락을 매일 겪고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백세 시대, 아니 이젠 백이십 세 시대라는 말을 흔히 듣는 요즘. 만일 내가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주마등처럼 빨리 지나가지 않는가. 남은 내 인생.. 절반의 일부가 여전히 이렇게 답답한 공기업 조직에서 근무를 하며 페이지가 넘겨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무서웠다.  


몸을 담고 있던 공기업 사무실의 직원들의 표정은 무기력함과 무표정의 로봇들의 공간 같았다


어차피 남들보다 용기 있게 나의 선택을 믿어오며 살아왔기에, "철밥통? 복지가 좋은 공기업? 신의 직장? 나가면 이런 곳 다시 들어갈 줄 아느냐? 요즘 경제가 얼마나 어려워지고 있는데 지금 나가면 경력 단절 인간 된다~" 등의 주변의 걱정과 동료들의 겁쟁이 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어쨌든.

난 퇴.사.하.기.로.  완. 전. 히. 결.심. 하.였.다.

plan B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그만둔다.


내가 정말 정신이 나간 걸까?

난 왜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걸까?


이런 생각을 매일을 반복하다 그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이른 저녁, 가방 속에 몇 개월을 매일 넣고 다니던 퇴직서를 그렇게 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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