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칠일. 하버 브릿지
록스 마켓과 서큘러 키 위쪽에 위치한 길거리 시장까지 모두 둘러본 우리는 그때 거의 체력이 반 토막 난 상태였다. 얼마나 체력이 저질인지, 매일 신문사 컴퓨터 앞에서 기사나 두들기던 과거의 나를 원망하면서 독기를 품고 하버 브릿지를 향해 걷는 수준이었다. 이 원망은 쭉 이어져서 올해 1월에도, 지금도 그렇다. 운동 좀 하자. 근육을 갖자.
이 운동 부족 듀오는 어찌저찌해서 결국 하버 브릿지 바로 밑까지 가는 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초행길은 언제나 서툰 법. 우리는 하버 브릿지 쪽으로만 구글 지도를 믿고 돌진하듯이 걷지만 정말 다리 밑에 도착하자 당황했다.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다리 위로 가는 계단이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 바로 하버 브릿지가 있는데 입구가 보이질 않아 답답해지는 찰나에 나는 하버 브릿지에 그룹 지어 올라가는 프로그램을 발견해 이름을 읽었다.
“알라야 여기 다리 올라가는 클라이밍 체험도 있나 봐.”
“다리 위를 올라간다고?”
“응, 다리 위에.”
“그거까지 할 거야...?”
“?”
다리를 올라간다는 건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자동차와 사람이 함께 지나가는 평평한 위를 걷는다는 걸 말할 수도 있고 다리의 철교 위를 걷는다는 걸 말할 수도 있다. 어딜 걷던 일단 다리 위쪽은 맞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전자로, 알라는 후자로 받아들였다. 갑자기 표정이 하얗게 질린 듯한 알라를 보며 물음표를 띄운 나는 일단 하버 브릿지 쪽으로 향하기 위해 길을 계속해서 찾았다.
우리는 다리 옆면을 겨우 돌아 사람들 몇 명이 무리 지어 어딘가로 향하는 걸 발견했다. 우리처럼 하버 브릿지를 가는 여행객이 아닐까? 기대에 부풀어 그들을 따라가자 이내 하버 브릿지로 향하는 높지 않은 엘리베이터를 발견했다. 냉큼 올라타 내리자 바로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 우리는 그제야 드디어 하버 브릿지에 도착했다.
“와, 여기 그 프로그램으로 왔으면 진짜 더 힘들었겠다.”
“클라이밍?”
“응, 그 클라이밍.”
“아 그게 이 위를 걷는다는 거였어?”
“그렇지...?”
“나는 또 이 철교 위를 걷는다는 줄 알았네...!”
작은 오해가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순간 힘든 것도 모두 잊고 왜 알라의 얼굴이 질렸는지를 깨달아 빵 터져서 깔깔거렸다. 아무리 없는 체력 있는 체력 긁어모아도 그렇게는 못 한다며 알라에게 마저 대답하고서는 후다닥 여기를 구경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하버 브릿지는 철교였는데 바로 옆에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가 있었고 그사이에 인도를 향해 굽은 보호판이 있었다. 이중으로 되어있어서 사진으로 보면 튼튼해 보이지만 저 위에 직접 가보면 전혀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 다들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는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당장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는 위험함을 즐기는 거다. 물론 나는 아니다. 차도 옆이라 바람도 쌩쌩 불었고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가 너무 무서워서 얼른 사진만 찍고 가고 싶었다.
그래도 하버 브릿지에 올라가자마자 자동차가 무섭게 달리는 건 아니고 다리 중간 지점으로 갈수록 빨리 달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라 다리 입구에서는 엄마에게 페이스톡을 걸어 시드니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알릴 수 있었다. 엄마는 연락이 좀 많이 뜸해진 딸에게 섭섭하다는 이야기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TMI지만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엄마와 일본 여행도 가고 싶었는데. 그날을 위해 더 열심히 적금해야겠다.
엄마에게 잘 지낸다고만 전하기는 아쉬워서 얼른 하버 브릿지 왼쪽으로 카메라를 틀었다. 왼편에 오페라 하우스가 큼지막하게 잘 보여서 엄마도 즐거워했고 나 역시 철 보호판 틈새로 사진을 찍으며 며칠 뒤에 갈 오페라 하우스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엄마와의 안부 통화를 끝내고 우리는 다시 다리 중심으로 걷기 시작했다. 중간 부분으로 걸으면 걸을수록 맞은편에서 운동 삼아 달려오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실로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누구는 무서워서 걷는 것도 중간까지만 걷고 얼른 돌아왔는데 이 긴 다리를 뛰면서 통과하다니.
아무튼 여차저차 중간 부분에 도착한 나와 알라는 두 장 정도 인증샷을 남기고 걸음을 재촉해 비교적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다리 입구 쪽으로 돌아왔다. 그곳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지만 없는 타이밍을 틈타 독사진도 여러 가지 포즈로 찍어봤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호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바로 풍경 사진이다. 운동하는 사람이 가장 적은 틈을 타 찍어본 하버 브릿지 풍경 사진이다. 반대편으로 찍었으면 더 좋았을 법했다. 여행 사진은 아무리 찍어도 아쉬운 점이 항상 남는다. 다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라 더 그런 걸 수도.
지친 체력을 긁어모아 하버 브릿지까지 다녀온 알라와 나는 다리를 뒤로 해 다시 서큘러 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아주아주 특별해 식당까지 가는 다리에 힘이 솟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