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호의를 선물 받은 오페라

칠월 십삼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by 최칠칠


멋진 풍경 사진을 한 장 건진 나는 흡족한 마음으로 알라와 함께 오페라 하우스 근처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에서 무얼 파나, 라는 궁금증에 레스토랑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해 보고, 오페라 하우스 1층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서 내부를 보기도 하고, 오페라 하우스 기념품샵을 들리기도 했다.


여행을 다니는 나의 오랜 버릇이라고 한다면 여행지마다 다녀왔다는 흔적을 컵을 사서 모으는 습관으로 남긴다는 것이다. 설거지할 거리가 늘어난다고 엄마가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습관인데, 나중에 독립하게 된다면 없어질 습관인 것 같아서 지금이나마 열심히 모아두려고 한다. 그런 습관을 계속하게 해주는 좋은 브랜드가 바로 스타X스다. 초거대 프렌차이즈인 만큼 어딜 가나 없는 곳이 없고, 관광지인 곳마다 귀신같이 그 도시 마크를 새긴 컵을 판다. 이 시리즈의 네이밍이 따로 있는 거로 아는데, 그 시리즈에는 컵의 사이즈가 다양해서 작은 크기로 사면 귀국할 때 캐리어 자리 차지를 않아서 참 좋다. 더 큰 사이즈의 컵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서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아무튼.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이 습관이 여지없이 발휘돼서 적절한 사이즈의 컵을 이것저것 알아봤다. 아쉽게도 사이즈가 하나뿐이라서 많이 고민됐지만 그래도 습관은 습관이라고, 기어코 오페라 하우스라는 영단어가 그려진 컵을 사 오고야 말았다. 엄마는 여전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지만 나는 뿌듯하다. 정말 다녀온 것 같잖아!


기념품샵까지 구경을 마친 알라와 나는 또 시간 보낼 걸 찾다가 오페라 하우스 내부 투어가 있다는 걸 들어 투어가 시작하는 곳에 서서 기다렸다. 오페라 하우스 1층에서 시작하는 이 투어는 기념품샵 옆에서 시작했는데, 투어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그 옆 기둥에 큼지막하게 어느 언어로 들을지 선택할 수 있으니 그 옆 기둥에 서 있으면 자연스레 투어가 시작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스레 시작하는 한국어 투어는 굉장히 유쾌하신 안내자 분과 함께할 수 있었다. 나와 알라 포함 서른 명쯤의 대인원이 이동했는데, 중학생 때부터 나도 몇 년이나마 고궁 해설사를 한 적이 있어서 서른 명을 무리 없이 데리고 다니는 안내자분이 정말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어른들보다 산만한 아이들도 두세 명이 있었는데... 확실히 10년 이상 이 오페라 하우스 투어를 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그 경력이 남다른 것 같다.


투어는 굉장히 알찼다. 오페라 하우스의 역사부터 그 생김새가 지닌 의미, 오페라 하우스의 각 부분 설명과 기간마다 이뤄지는 다른 공연 설명까지. 오페라 하우스에서 내내 오페라가 공연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휴식기가 있다는 게 놀랐던 걸까? 아무튼 순식간에 오페라 하우스를 둘러보고 우리가 나중에 들어갈 공연장 입구까지 살펴볼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천천히 보내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공연, 안나 볼레나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오페라 하우스에 들어갈 때는 웃옷을 공연장 입구에 마련된 부스에 맡길 수 있는 서비스가 있었다. 그 외에 음료는 유료로 기억하는데, 엄청 비싸니 추천하지는 않는다.


알라와 나는 오른쪽 끝에 있는 자리를 예약해 그곳을 찾아 들어갔어야 했는데, 입구가 여러 곳이어서 자리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우리끼리 우왕좌앙하던 때에 정말 운이 좋게도 우리는 한국인 안내원 분을 만났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우리가 한국어로 자리를 찾는 걸 듣고는 우리 자리를 찾아주셨는데, 이곳은 공연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고, 가운데에 취소된 자리가 있으니 그곳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국에서 받은 뜻밖의 행운에 눈이 휘둥그레진 알라와 내가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말씀드리자 인자한 미소를 지으신 안내원 분이 본인이 말을 해두겠으니 걱정 말라며 자리를 알려주셨고, 우리는 그 자리로 다른 안내원분의 지시로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페라가 끝난 시간이 너무 늦어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바람에 떠밀려 나온 우리가 다시 들어갈 수 없어 그분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릴 수 없었다. 나의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기억에 오래 남을, 마음이 따뜻해지는 추억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새로 앉은 좌석은 2층 좌석 맨 앞줄 정중앙 줄이었는데, 우리가 처음 예매한 자리보다 더 비쌌고 그만큼 공연이 전체적으로 눈에 들어올 만큼 잘 보이는 자리였다! 자리에 놓인 팸플릿을 보며 나중에 꼭 그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자고 다짐하고서는 자리를 천천히 둘러봤다.


2층에 위치한 좌석이라 그런지, 공연이 펼쳐질 무대 아래에 위치한 오케스트라의 모습도 간간히 보였다! 극이 시작하기 전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먼저 인사하고 나머지 단원들도 인사한 다음 극이 천천히 시작됐다.


안나 볼레나는 비극 오페라로 이탈리아 발칸토 오페라를 이끈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왕비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영국의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결혼 3년 뒤의 시간대로 실화를 각색한 오페라다. 극 중 헨리 8세는 그 고칠 수 없는 불치병 같은 바람기로 안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안나의 불행한 삶이 2막에 걸쳐 그녀의 감정선과 함께 세밀하게 묘사돼있으니 부디 그 아리아를 듣는 것을 추천한다. 나의 자세한 감상문은 다음 화에 짧게 남기겠다.


안나 볼레나는 2막으로 구성됐고 각 막이 3장씩 구성돼있어 4~5시간이 걸리는 초대형 오페라였다. 그래서 알라와 내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나올 때는 오후 11시 반으로, 평소 우리가 8~9시에 숙소로 들어가던 걸 생각하면 엄청 늦은 시간이 된 셈이다. 오페라까지 모두 다 보고 나니 거의 11시간 공복이 된 셈이어서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걸어 나가 20분 거리에 있는 버거킹에서 와퍼 세트로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걷고 걸어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생각해보니 버거킹도 호주에 가서 처음 봤던 셈인데 그때는 하루 종일 7cm 구두를 신고 돌아다닌 날이라 무언가 보고 신기해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가 침대에 누우니 그제야 오페라 하우스를 다녀왔다는 실감이 났다.


그곳에 다녀왔구나.


그날 쓴, 안나 볼레나를 본 감상은 다음 화에 공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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