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십삼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다행히 과음까지 하지 않았던 알라와 나는 느즈막하게 일어나 시드니에서의 빅 이벤트 참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난밤에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두 개나 일어나서 정신이 없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늘은 우리가 한국에서부터 손꼽아 기다려오던 날이었다.
바로,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를 관람하는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6월 신문사에서 우리는 한 달 뒤에 볼 오페라를 고르기 시작했다. 오페라 하우스 홈페이지에 가서 어떤 오페라가 열리는지 찾아보고, 대략적인 줄거리도 찾아보며 어떤 걸 볼지 신중하게 골랐다.
우리가 방문하는 7월에는 대략 다섯 개 정도의 공연이 열렸는데, 중 두 개가 오페라였고 하나는 음악회, 나머지는 기타로 분류되는 종류였다. 시드니에서 만약 며칠만 더 묶을 수 있었다면 음악회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 음악회는 바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 OST 음악회였다. 영화를 틀어주고 그 영화 내에서 연주되는 OST를 오케스트라가 연주해주는 형식이었는데, 그걸 못 듣고 온 게 조금 아쉽다.
하지만 명색에 방문하는 곳이 오페라 하우스 아닌가. 그렇다면 오페라를 보고 와야지. 우리는 ‘안나 볼레나’라는 오페라를 보기로 결정, 선결제하고 티켓도 pdf 파일로 꼼꼼하게 받아뒀다.
티켓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정말 우리가 오페라 하우스에 가는 건가? 하고 긴가민가했다. 다녀온 지금도 사진을 볼 때가 아니면 긴가민가하긴 하다. 엽서에 자주 나올 법한 그런 멋진 장소에 내 발걸음이 닿았다는 게 아직 현실로 느껴지지 않아서인 것 같다.
시드니에서, 어쩌면 호주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다려왔고 커다란 이벤트인 오페라 하우스 방문인 만큼 푹 쉰 우리는 가기 전에 저녁을 든든하게 먹자는 생각에 지난번에 맛있게 먹은 바 레지오를 향했다. 또 오겠다는 약속을 나름 지킨 것이라 괜시리 뿌듯했다. 바 레지오에서 여러 가지 메뉴를 시켜서 실패할 정도로 자주 갈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한 번 한 번 가는 것도 아쉬운 처지라 지난번과 똑같은 조합으로 메뉴를 시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원체 피자는 불호도 아니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라 큰 인상은 없지만, 아직도 바 레지오의 버섯 스테이크가 떠오르는 걸 보면 정말 맛있게 먹은 게 틀림없다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확신한다. 다시 한번 호주 시드니를 간다면 꼭 바 레지오를 또 방문하리라.
바 레지오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예매한 오페라 ‘안나 볼레라’가 오후 7-8시에 시작하는 늦은 공연이라 바 레지오에서 3시 즈음 나온 것도 꽤 이르게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터벅터벅 걷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서 보이는 오페라 하우스의 하얀 지붕. 가까워지면 질수록 내가 정말 오페라 하우스 앞에 있다는 현실감이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멍, 하니 오페라 하우스를 보다가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여 얼른 알라에게 그곳에 걸터앉으라고 했다. 보아하니 다들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 사진을 찍는 것 같았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 타이밍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전형적으로 내 사진을 못 찍고 친구 사진은 괜찮게 찍어주는 편이라서 열심히 자세를 바꿔가며 내 모델이 되어준 알라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었다. 다리를 길게 나오게 찍거나 역광을 이용해서 찍어본다거나... 알라의 마음에 들었던 사진이 나와서 다행이었다. 나도 알라가 해본 자세와 비슷하게 해보려고 했는데, 비슷하려나?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의 왼편으로 와서 오른편으로 걸어갔고, 그곳에 레스토랑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오른편이 대부분의 오페라 하우스 방문객들이 도착하는 입구라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북적거리고 있었나 보다.
레스토랑은 오페라 하우스가 위치한 부두를 향해 탁 트여 있었는데, 그 트인 곳과 레스토랑의 경계를 만드는 둑이 있었다. 돌로 만들어진 둑이었는데 사람들이 워낙 많은 관광지다 보니 그 둑도 의자처럼 만들어 그 위에 쿠션을 올려뒀다. 암만 한국보다 따뜻하다고는 해도 호주는 엄연히 겨울이기 때문에 바닷바람이 거셌고 돌 둑도 굉장히 차가웠다. 레스토랑에서 배를 채우기에는 아직 바 레지오에서 맛있게 먹은 배가 꺼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돌 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돌 둑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뭔가 이 둑에 누워서 카메라를 잘만 조정하면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람도 춥고 사람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해서 좋은 타이밍을 잡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적은 틈을 타 둑에 완전히 누워서,
찰칵.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