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한테 치킨 뜯긴 썰 푼다.

서울 비둘기나 시드니 갈매기나 거기서 거기구나

by 최칠칠


숙소에서 푹 쉰 알라와 나는 밤공기도 마실 겸, 달링 하버의 야경을 구경할 겸 해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분명 낮에는 이렇게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밤에 나와보니 항구 계단 곳곳에 사람들이 앉아서 대화도 하고, 바깥 테라스에 있는 좌석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밤에 보니 또 새로운 풍경이 가득하여서 눈에 먼저 익혀둘 겸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밤이 되어도 온갖 빌딩에서 뿜어내는 빛으로 가득한 거리를 걷는 건 서울에 있을 때도 일상이었으니 별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 거리가 항구라면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의 즐거운 대화 소리와 섞여 들리는 파도 소리, 갈매기가 우는 소리와 곳곳에서 맡아지는 맛있는 음식 냄새와 바다의 짠내음이 한데 뒤섞였다.


유독 바다 근처에만 오면 사람이 느긋해지고 감상적으로 되는 것 같다. 페리 운항이 닫힌 시간이라 바다에는 정박해둔 몇 개의 작은 배와 시끄럽게 울어대는 갈매기가 전부인데도 이날 봤던 풍경이 눈을 감으면 바로 떠오르는 걸 보면.


우리는 달링 하버와 피어몬트 브릿지를 한 바퀴 삼아 몇 번 천천히 걸었다. 달링 하버가 U자 모양에 그 위를 덮는 모양새인 피어몬트 브릿지를 하나의 코스로 삼으면 산책하는데 적당한 거리가 나왔다. 게다가 우리의 숙소 맞은편에 있는 달링 하버에 우리가 그토록 찾던 아시안 마켓을 발견해서 이따 숙소로 돌아갈 때 밑반찬을 사 가기로 했다.


계속 목적 없이 돌자니 다리가 슬슬 아파서 우리는 근처 KFC에서 치킨 메뉴(다리 6조각으로 구성된 조촐한 사이드 메뉴다)를 사서 음식점 앞 항구 계단에 자리 잡았다. 오늘은 어쩐지 알라와 나 모두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아서 치킨 조금과 음식점에서 시킬 적은 양의 안주로 저녁을 때우게 됐다.



이 어색한 미소 어쩐담



치킨을 사 오고 바로 먹지는 않았는데, 여기서부터 문제였다고 본다. 치킨이 담긴 종이 용기를 적당히 우리 사이에 두고 항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다 찍고 보니 분명히 처음 자리에 앉기 전보다 더 많은 수의 갈매기가 우리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대수인가, 싶었다.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건 어쩔 수 없고, 혹시 저 인간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그때 남은 조각을 가져갈 심산이겠지, 싶었다.


치킨 한 조각을 다 먹고, 두 번째 치킨을 딱 한 입 더 씹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허여멀건한 물체가 나와 알라 사이를 쌩! 하니 날아갔다.


쌩! 하니 날아가는 물체와 분명 내 손이 스쳤다.


악어 비늘처럼 오돌토돌하면서도 날카로운 감촉이 찰나지만 생생하게 느껴졌다!



1초 후, 내 소중한 치킨 조각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뻔뻔하게 그 조각을 부리로 쪼아대고 있는 갈매기를 볼 수 있었다.


“... 저거 내 치킨 맞지?”

“맞는 거 같아...”

“와, 나 갈매기한테 치킨 뜯긴 거야?”


갈매기한테 치킨을 뜯기고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알 수 없는 현상이란. 아마 알라와 나 사이로 저 갈매기가 날아갔을 때 놀라서 소리 지른 탓이겠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어이가 없다.


갈매기한테 만만해 보인 건가? 싶기도 하다.


잘만 하면 치킨 먹겠는데? 하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호주 갈매기는 서울 비둘기처럼 무서운 걸 잘 모르는 건가?


얼이 빠져서 허허, 하고 웃다가 배가 꼬르륵, 울어서 나는 알라와 함께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정말이지, 그때는 왠지 모르게 잘 못 하는 술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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