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가방을 되찾기 위한 여정

파라솔에 떨어진 종이 가방

by 최칠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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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링 하버. 이름도 사랑스러운 이 선착장은 주변에 다양한 여가 시설이 있는 대규모 번화가다.


관광객과 현지인의 여가 생활을 위해 조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선착장인 달링 하버는 과거 쇠퇴한 공업 지대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호주 건국 200주년 기념으로 재개발돼 쇼핑센터와 카지노, 박물관, 아쿠아리움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고 한다. 아름다운 야경뿐만 아니라 매주 토요일 밤 열리는 불꽃놀이도 있고, 마쓰리 일본 축제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달링 하버 밑으로 가면 차이나 타운도 있고, 그곳에서 명나라 전통 양식의 중국 정원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쿠아리움이나 박물관은 이제 너무 많이 다녀와서 알라와 나는 건전하게 근처 쇼핑센터와 정원만 구경하기로 했다. 카지노라니... 내 기준 불건전함에 포함되는 장소라 방문지로 고려도 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짐을 옮기느라 힘 빼고 아점도 든든하게 먹은 알라와 나는 천천히 달링 하버로 가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자라 매장으로 향했다. 기껏 가까워졌는데 불쑥 가고 싶은 마음이 달링 하버로 가는 발걸음을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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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 방문에도 여전히 내가 사고 싶은 옷이 잔뜩 있었다. 어째 동네에서 백화점을 갔을 때는 보는 둥 마는 둥 했던 내가 왜 호주에서만 열심히 옷을 보러 다녔는지는 미스터리다.


아무튼, 이렇게 세 벌이 사고 싶었던 옷이었는데 여행을 다닌 지 시간이 꽤 지났던 터라 남은 도시에서 먹을 돈을 세어보니 지갑 사정이 많이 비루해져 있었다. 그래서 가장 왼쪽에 있는 후드티를 골랐다. 팔 쪽에 기모가 있어 따뜻할 줄 알고 신나는 기분으로 달링 하버로 다시 걸어 도착했다.






달링 하버는 에스컬레이터로 두 개 층을 내려가야 선착장이 나왔는데,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면 이런저런 식당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카페보다는 맥주와 감자튀김 같은 안주류를 파는 식당이 주를 이뤘다. 이 중에서 우리가 며칠 뒤에 칵테일을 먹을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다음 이야기에서 소개되니 내일을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다 :)


한 층을 내려가면 바로 밑에 식당들이 있는 테라스가 나와 거기에 기대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였다. 난간 넓이가 꽤 넓어서 아까 산 옷이 든 종이 가방을 난간에다 뒀는데, 하필 그날 바람이 세게 부는 것이다. 종이가 불안하게 팔락거렸지만 설마 무슨 일이 있겠나, 싶어 알라에게 사진을 부탁한 그 순간.


펄럭-


옆에 있던 종이 가방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몇 초는 멍하니 추락해서 보이지도 않는 가방을 밑에서 내려다봤던 것 같다. 퍼억, 하는 소리가 났는데, 아래 식당에 펼쳐져 있는 파라솔에 가방이 부딪힌 것 같았다. 세상에, 거기서 식사하시는 분들은 마른하늘에 불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잘 먹다가 갑자기 위에서 퍼억, 이라는 소리가 들렸으니...


아무튼 수 초 만에 정신을 차린 나는 알라와 함께 헐레벌떡 파라솔이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때는 파라솔에 가방이 부딪혀 아래로 떨어진 줄 알고 식당에 들어가 종업원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아까 부딪혔을 파라솔 밑을 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다행히 그 파라솔 밑 테이블에는 손님이 없어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근데 세상에.


없다.


종이 가방이 없다.


뭐지. 진짜 퍼억 소리 났는데. 왜, 왜 없지?


당황한 나에게 종업원이 다가와 이 위에 떨어뜨린 종이 가방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분께서 혹시 파라솔 위에 있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단신 한국인. 파라솔 위를 확인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며 혹 파라솔 위를 한 번 휘어져 줄 수 있냐 물었고 친절하신 종업원들은 두 분이 사다리까지 가져와 파라솔 위를 훑어 종이 가방을 찾아내 주셨다.


그렇게 파라솔에 기부한 줄 알았던 종이 가방을 찾아서 품에 꼬옥 안은 나는 그 상태로 종업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비틀비틀 식당을 나왔다.


세상에, 호주에서 기대한 영어 소통이 파라솔에 떨어진 종이 가방 찾아달라는 내용이었을 줄이야...


알라와 그때 얼마나 심장이 쿵 떨어졌는지를 이야기하며 키들키들 웃었지만 그제야 긴장이 풀려 달링 하버 근처에 주저앉아 시간을 보냈다. 바람이 불어 조금은 추웠지만 식은땀이 나서 그런지 오히려 시원했다. 그날따라 더 지쳐서인지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가 차라리 내일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기로 했다.


정말이지, 여러 사연이 얽혔던 달링 하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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