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보다는 바게트

by 정원철

케이크보다는 바게트


집 근처에 맛으로 제법 입소문이 난 빵집이 있다. 빵은 불어 pain(뺑)에서 유래된 외래어이다. 이 빵집의 이름에 뺑이라는 단어가 있어 알아보니 ‘뺑’이라는 말은 ‘빵’을 뜻한단다. 빵이 외래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지금까지 순우리말로 알고 있었다. 그 빵집 앞을 지날 때 먹음직스럽게 쌓아 놓은 빵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유혹에 가까운 많은 빵들 가운데 창가 가장자리에 놓인 바구니 안에 바게트가 있는지 살핀다. 이 빵집은 하루에 바게트를 많아야 5개 정도 내놓고 그마저도 없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바구니 안에 바게트가 있으면 무조건 빵집에 들어가서 바게트를 산다. 이 반사적인 소비행태는 전적으로 아들의 식성 탓이다. 아들은 바게트를 사랑한다. 뻑뻑하고 딱딱한 이 바게트를 식탁에 놓아두면 오며 가며 하나씩 입에 물고 간다. 아들이 부엌에 오고 가기를 몇 번이면 바게트는 반나절도 안 되어 사라진다. 입이 짧아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음식은 먹지도 않으면서 바게트만큼은 질리지도 않는지 사다 놓으면 하루가 가지 않는다. 어느 날 나도 부엌을 오고 갈 때 바게트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었다. 처음에는 마르고 거친 식감이 낯설더니 계속 씹으면 곡물의 단맛이 뒤늦게 올라왔다. 아들이 바게트를 먹을 때 누굴 닮아 하필 바게트만 먹는지 모르겠다며 출생의 비밀까지 파헤치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바게트에 계속 손이 가고 있다. 내가 아들의 아버지임이 조금 분명 해져갔다. 달달한 빵은 한 달이 지나도 한 개 먹을까 말까인데 바게트는 눈에 띄면 하나씩 입에 넣는다. 빵집에는 맛은 물론이고 보기에도 사람을 현혹시키는 빵이 가득하다. 케이크는 이제껏 먹어 본 중에 이 집 케이크가 제일 맛있다. 그럼에도 정작 빵집을 나올 때 손에 들린 것은 바게트이다. 빵집에 바게트가 몇 개 안 나오는 이유를 뭣도 모르는 나는 이렇게 짐작했다. 빵을 만들고 남은 반죽으로 바게트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바게트는 빵집에 두세 번 가서 한 번 살까 말까 할 정도로 빵집에서 많이 나오지 않는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때의 강렬한 맛이 온몸을 놀라게 할 때가 있다. 이 빵집에도 그러한 빵이 몇 종류가 있다. 맛이 사악한 수준으로 사람을 끌어당긴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 머리가 어질어질하게 예쁜 여자가 나와 시선이 나도 모르게 고정이 되었다. 여자 아이돌이 춤을 추는 것을 보면 젊고 예쁜 얼굴이 사람의 넋을 뺏아가는 듯하다.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예쁜 여자 좋지?” 나의 머리는 반사적으로 여자인데 예쁘면 좋지라고 생각했지만 입은 “예쁘다고 다 좋은 여자는 아니지”라고 말했다. 아내는 나의 임기응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예쁘다와 여자를 두고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예쁜 여자는 마치 빵집의 진열장 안쪽 자리에 모셔진 케이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예쁘고 잘생긴 매력에 열광하는 만큼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대접도 받는다. 그 화려하고 수려한 용모가 사람을 너무도 현혹하기 때문이다. 예쁜 케이크가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는다지만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이다. 대신 거칠고 투박해도 정작 곁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는 것은 바게트이다. 바게트의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순수한 맛은 예쁘다기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이 예쁘다는 말은 쉽게 하지만 아름답다는 말은 듣기 어렵다. 잘생긴 사람은 많아도 멋진 사람은 드물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예쁘고 잘생겼다는 소리는 부질없는 헛소리로 들린다. 아무리 예뻐도 나이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타고 난 매력이다. 어린 나이에는 그 매력에 빠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잘생긴 남자가 멋져 보이는 환상에 빠진다. 나이가 들면서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 눈에 보이는 때가 온다. 그들과 같이 있으면 오래 있을수록 단맛을 낸다. 마치 오늘 품에 안고 가는 바게트처럼 거칠고 투박한 겉모습과 달리 은근한 끌림이 있다. 사람의 아름다움과 멋짐은 오랜 세월의 외투를 입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 곁에 있는가?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결코 변하지 않을 아름다운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가에는 확신이 있으나 과연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은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나 멋진 사람이 되는 길은 도전해 볼 만해 보인다. 나이 들면서 예쁘고 잘 생겨지길 바라는 마음은 추하다. 하지만 적어도 멋진 인생의 꿈은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피부가 늙고 거칠어져도 누군가의 마음을 빼앗는 바게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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