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을 지키는 일을 물려받다.
20리터 물통 두 개를 사서 물을 채우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실었다. 몇 년 전 할아버지 산소의 봉분를 평장한 자리에 심은 소나무 ‘반송’에 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8대 조부모님 묘까지 관리하는 일을 서울 사는 나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되겠다고 몇 년을 두고 말씀을 하시다가 구십을 넘기고서야 선대의 묘지정리를 결행하셨다. 아버지도 당신의 할아버지 묘까지는 차마 어찌하지 못하시고 나에게 남겨놓고 몇 해 전에 작고하셨다. 결국 별도리 없이 징조 할배와 할아버지의 묘가 나에게 남겨졌다. 솔직히 나는 징조 할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할아버지마저 뵌 적이 없다. 그래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만 아버지가 오십이 넘어 나를 보셨고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할머니는 이미 쇠약하고 치매를 앓고 계셨다. 할머니의 사랑은 기대할 수 없었고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에 대한 추억도 없다. 아버지가 짊어지고 고집하시던 8대조 할아버지까지의 벌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는 내 몫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몇 해는 할아버지의 묘를 서울에 있으면서 벌초하러 다녔다. 매년 벌초를 아니한 것도 아닌데 어느 해부터 할아버지 산소는 칡넝쿨의 습격이 거세었다. 급기야 칡넝쿨에 갇힌 할아버지 산소는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성질 급한 나는 늙으신 작은 아버지에게 할아버지 묘도 정리를 하자고 설득했다. 그래도 조금의 성의를 다하겠다고 할아버지와 징조 할아버지를 한 곳에 모시고 봉분을 없앤 자리에 반송 한그루를 실한 놈으로 골라 심고 상석과 갓 비석은 그대로 두고 반송 아래에 조부모님들을 다시 모셨다. 묘지의 산일은 하루종일이 걸렸고 일을 다 마치고 난 후 작은 아버지는 아침의 섭섭함이 조금 가신 듯 나에게 고생 많았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가셨다.
물통에 물을 받아 차에 싣고 할아버지 산소에 내려가는 내 모습에 기가 찼다. 이제껏 추석에 벌초하러 할아버지 산소를 찾은 적 외에 나는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할아버지 산소를 간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조부모님들에 대한 추억도 없으니 추석에 벌초하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평균의 도리는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봄이 되어 한식도 아닌데 차를 몰아 할아버지 산소를 가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내가 심은 그 소나무 ‘반송’이 발단이었다. 모든 일이 잘 마무리가 된 듯 보였다. 봉분이 있는 묘지는 모두 정리가 되었고 상징적으로 좋은 소나무 한그루를 심고 주변 정리를 마쳤기 때문이다. 서울에 올라와 한동안은 조금은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는 잘 살까?’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이 스파크를 일으켰고 곧바로 지식백과사전을 뒤지기 시작했다. 소나무는 이식하고 관리해주지 않으면 삼 년 동안 생존할 확률이 삼 분의 일이라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소나무를 이식한 상태는 사람으로 따지면 암 환자와 같다는 말까지 들은 이후에 온 신경이 소나무에 쏠렸다. 다음날 종로 농약상에 가서 살균살충제와 뿌리 발근제 등 약제를 샀다. 소나무를 심은 지 한 달 만에 다시 산소를 찾았다. 문제는 물이었다. 물통을 들고 산에 오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쉬면서 들고 온 물이 메마른 땅에 흔적 없이 사라지면 한숨만 나왔다. 다시 내려가 물을 길어 오려면 읍내에서 물 동냥을 해야만 했다. 겨울을 지내고 봄에 두 번을 다녀오고 오늘은 물을 주고 제법 무성해진 가지를 쳐서 통풍이 잘되도록 해주었다. 삼 년을 버티고 살면 소나무가 땅 맛을 알아서 잘 살 수 있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물을 지어 나를 도리밖에 없었다. 일을 마치면 오는 길에 사 온 술을 올리고 추석 외에는 해 본 적이 없는 절을 두 번 올렸다. 추석 때도 안 오겠다는 마음으로 묘를 정리했는데 이제는 서울에서 물 길어다 시도 때도 없이 와서 절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다시 한번 기가 막혔다.
이러려고 할아버지 산소에 칡이 뒤덮였나 싶기도 하고 어쩌다 내 꾀에 내가 넘어간 것 같기도 하고 벌초마저도 안 하도록 자갈을 깔라는 말을 안 들은 게 화근 같기도 했다. 그 반송을 살리러 간 길에 잔디를 덮은 잡초를 뙤약볕에서 한 시간만 뽑아도 온몸의 땀이 속옷까지 흠뻑 젖어갔다. “어쩌자고 나는 이 소나무를 심자고 마음을 먹었을까?” 산모기가 온몸을 흡혈하고 더위에 지쳐 기진해지면 후회가 밀려왔다. 막상 힘이 들어 그렇게 후회가 되다가도 일을 마치고 건강하게 솔방울을 매단 소나무와 잡초를 걷어내고 푸르름이 돋아난 잔디가 맑은 하늘아래에서 바람결에 살살 흔들리며 좋아하는 듯한 모습이 느껴지면 왠지 마음이 흡족해져 갔다. 봄에 한 번 다녀오고 여름에 비가 통 오지 않으면 또 물을 길어 나르고 가을에 벌초 다니기를 삼 년이 되니 반송은 자리를 잘 잡았는지 눈에 띄게 커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묘를 정리할 때 당숙의 말이 떠올랐다. “명당자리는 후손이 잘 만들어도 명당이 되고, 그 후손이 선산의 주인이 되는 거다. 이제 이 선산은 네 것이다.” 졸지에 종중 선산중 할아버지 묏자리는 내 것이 되었다.
심리학에서 자주 나오는 이론 중에 ‘인지부조화 이론’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생각이나 태도와 행동이 서로 모순될 때 마음이 불편해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태도나 행동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랑도 인지부조화로 설명한다. 내가 허리와 어깨가 쑤시도록 할아버지 산소에 물을 길고 자라난 풀을 뽑을수록 아마도 나는 한 번도 보지도 못한 할아버지와 징조 할아버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오늘 절 두 번 올릴 때는 속으로 할아버지에게 말까지 걸었다.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버지도 그래서 구십이 넘으시도록 8대조 할아버지까지 산소를 지키셨나 보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산소에 갈 때마다 산을 넘으면서 이분은 네게는 4대조 할아버지 할머니이시고 다시 산길을 걷다 이분은 너의 7대조 이시다라고 말씀하시면 나는 자동반사처럼 절 두 번을 하고 일어서며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매년 성묘를 다녔지만 어느 묘가 몇 대조인지 알지 못했고 이 거추장스러운 성묘가 왜 중요한지 의문마저 들었었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길을 걸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처음부터 8대조 할아버지의 산소를 지키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선산이 당신에게 왔고 그 책임을 다하며 어느 순간 마음의 위안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추석에 절 두 번으로는 선산을 지킬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데 선산은 못난 나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남은 나무가 지키는 것이다. 나는 굽은 나무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은 나무인 것이다. 아버지도 그러하셨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나도 아버지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