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대하여

by 정원철

불안에 대하여


2022년 3월

이 세상 속에 내던져진 듯한 삶을 이어가는 나는 불안하다. 나의 자유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이유도 나의 불안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나는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나의 존재에는 이유가 없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소멸할 운명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태어났고 나도 모르는 어느 날 죽을 운명인 것이다. 어제는 이미 지나버렸고 내일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이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림으로써 인간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해서 나는 오늘 불안하고 또 불행하다.


코로나로 가족들이 감염되어 일주일을 집에 갇혀 지냈다. 상투를 잡은 주식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어머니의 병세는 호전과 악화를 거듭하고 있다. 아들은 새 학기를 맞이하러 집을 나가 살고 있다. 그리고,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사람 간의 생각 차이가 얼마나 폭력적 일지 알 수 없다는 또 다른 불안을 낳았다. 정치적 동지가 아니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은 그야말로 상식이 되었다. 친구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적이 될 수도 있을 증오와 미움이 선거 기간 내내 온 거리의 현수막에 걸렸다. 이 싸움의 지겨움을 벗어나려 할수록 늪에 빠진 것처럼 더욱 커지는 불안으로 세상은 우울하다. 현수막은 어느새 사람들을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도록 내몰고 세상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며 쏟아내는 정치구호 아래 각양각색의 누군가의 부모와 조카 그리고 아이들이 지나가고 있다. 내 처의 친척일 수도 있고 내 친구의 부모일 수도 있을 내 이웃들이 나와 너무도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미워하는 나를 보며 섬뜩해진다. 제주 4.3 사건이나 여순 반란 사건과 광주항쟁뿐만 아니라 동학민중항쟁까지 머릿속에 그려지며 나는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사람과는 조금 생각이 달라도 서로의 존중이라는 완충지대가 있다. 오늘은 또 지금은 상식조차도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불안이 거리에 나뒹굴고 있다. 불안과 손을 맞잡고 오는 녀석은 늘 걱정이다. 요즘의 걱정 중에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섞여 있다. 이럴 때는 거짓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거짓말이 통하지 않다면 세상의 반과 같이 사는 생은 불변한다는 믿음이라도 상기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이야말로 믿을 바가 못되고 휘발성이 강해 입만 벌려도 한숨 속에 섞여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밖에 나가면 반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거짓말이나 믿음을 만들어냈으면 한다. 이 세상은 누구라도 살아갈 땅과 공기를 나눌 수 있다.

세상의 반이 여자이고 그 여자를 사랑한 존 레논의 ‘woman’의 가사처럼 말이다.

Woman

Please let me explain

I never meant to cause you sorrow or pain

So let me tell you again

And again and again

I love you, yeah yeah

Now and forever

I love you, yeah yeah

Now and forever


2025년 1월

2022년 3월 브런치에 올린 그때의 불안을 읽어 내려간다. 그해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세상은 반으로 나뉘었다. 다음 날 밖에 나가 거리에 서서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 중 반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의 반이라는 이 상황을 잊으려 존 레논의 노래를 반복해 들었다. 존 레논은 나와 다른 성별인 여자가 반이고 그 여자를 사랑해야 한다고 노래한다. 그러니 나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거짓말이라도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2년 9개월이 지나 그때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포했다. 불안이 오래되면 공포가 되는가? 계엄령이 발포된 이후 나와 같은 선택을 했었던 이 세상 사람의 반이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광장으로 나왔다. 나와 선택을 달리 했었던 사람들의 반이 다시 광장으로 돌아왔다. 서로의 주장이 확성기에 뒤섞여 누구의 주장도 광장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계엄이 실패로 끝나고 대통령의 탄핵을 위해 여의도로 가는 마포대교를 건너는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있었다. 지금 나를 지나치는 사람의 거의 대부분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서로 신뢰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잠 못 이루는 불안을 잠시 잊을 수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존 레논의 ‘woman’을 듣지 않는다. 대신 광장에 울려 퍼지는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따라 부른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이유도 없어 진심도 없어

사랑 같은 소리 따윈 집어 쳐

오늘 밤은 삐딱하게’


그 후 다시 일 년이 지나 대통령선거가 치러졌고 내란재판이 진행되었다. 광장은 예전보다 불편한 소음이 조금 잦아들었다. 불안이 일상에서 어느 정도 진정되었으나 사람들은 예전과 조금 달라졌다. 지난 몇 년 내가 겪었던 불안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는 급격히 줄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서 가지는 불편함 정도는 그래도 괜찮다. 증오가 마음에 담기면 선을 넘은 것이다. 민주화와 시민운동에 한평생을 바친 매형은 기획수사로 국가보안법 위반을 명목 삼아 2년형을 확정판결받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고 분노를 느낀다. 불안이 일으킨 파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간의 신뢰와 믿음을 집어 삼키는 파도가 되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가지게 된 증오심이 어떠한 일을 벌일지 불안에 휩싸인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서울콘서트를 다녀왔다. 내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거의 60대 이상처럼 보였다. 광장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모두 한 사람의 노래에 같이 따라 부르며 기뻐하고 환호했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지만 만약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 시간 우리가 노래를 같이 부르며 환호하는 마음의 온기가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말이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아야 돼.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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