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by 정원철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개그맨 박영진이 한때 유행시킨 말이다. 개그콘서트 집중토론 코너를 유튜브에서 다시 보기를 하니 개그콘서트의 부활 이야기가 솔솔 새어 나오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개그콘서트를 다시 보는 내내 상복부는 웃음으로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지난 1년 글을 쓰지 않았다. 딱히 글을 쓸만한 소재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필력이 내 욕심만큼 따라주지 못해 글을 써놓고도 못마땅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글쓰기를 중단한 여러 이유와 핑계가 있다. 그 많은 이유 중에 내 마음에 꽂히는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이다.


술자리에서 친구가 말했다. “요즘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안 올리는 걸 보니 네가 요즘 일도 잘되고 걱정이 없구나~” 갑작스러운 친구의 말에 반사적으로 말이 생각을 앞질렀다. “그 시인분이 요즘도 연탄재가 생각날까?” 말을 내뱉고 나니 생각이 뒤따라 왔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글을 쓰지 않는가?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생각이 밤마다 방구석을 떠나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된 계기는 친구의 권유에서 시작되었다. 무언가를 끄적이기는 했으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오랜 기간 마음에 담아 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렸을 적의 꿈이 작가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 내놓을 정도의 필력도 없고 실제로 글을 쓰는 일은 내 역량으로는 버거웠다. 작가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니 마감을 지켜야 할 일도 없고 좀 글 완성도가 떨어져도 핀잔이나 비평받을 일도 없는데도 정기적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이 어렵고 힘들었다. 어느 때는 한 줄 써가기가 어렵다는 말로는 부족하도록 머릿속이 꽉 막혀 이야기가 끌려 나오지 않았다. 나를 그토록 틀어막은 돌덩이를 앞에 두고 노트북 자판 위에 손을 얹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돌덩이 앞에 다가가지도 않고 더 이상 노트북을 켜지도 않게 되었다. 그때가 여름이 한창일 때였다. 그 여름은 덥고 습하고 답답했다.


사람은 어느 정도는 가면을 쓰고 산다. 술자리에서 그 말이 나오면 그 순간은 정말 취한 것이다. 상대에게 이제부터 내가 쓴 가면을 벗겠다는 신호이거나 자신도 속을 가면을 쓰는 찰나이다. 그 찰나에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라는 말이 내 안의 누군가의 목소리로 또렷이 들리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브런치스토리’의 나의 구독자 중 상당수는 나의 지인이거나 지인의 지인들이다. 그 지인 중에는 나와 너무도 가까운 사람도 당연히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올리는 글에는 늘 나에 대한 검열이 따른다. 내가 그들에게 보여준 나와 글을 쓰는 나와의 괴리감이 느껴질 때 나는 주춤한다. 내용과 언어 모두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의 기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청불 이상은 엄격한 자체심사도 거쳐야 한다. 내 욕망이 나의 시간을 뒤덮는 순간에도 브런치스토리의 글들은 어쩌다 솔직하고 대부분은 감사하거나 충만함으로 뒤덮여 있다. 그렇다고 내 속마음 그대로 옮겨 적으면 어찌 되겠는가? 그러겠지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내 마음이 불온하고 부도덕한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 아니다. 내 하루의 거의 대부분은 감사함이나 당연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냥 아주 평범한 중년이다. 일상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에 쌓여 사람을 혐오하고 싫어하는 축에 가깝고 글에 내비친 사랑과 감사는 어쩌면 나의 고해성사와 같은 것이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는 일의 유익함이 있다. 나의 글을 읽는 독자들로부터 갈채를 받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러니 글을 한 편이라도 더 쓰게 되고 써놓은 글을 다시 고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인정받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가 내 마음의 생김새를 알아가게 하고 명확해 보이게 한다. 브런치가 없었더라면 글쓰기는 내 인생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이 다 좋은 것도 아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나의 유치함에 실망도 한다. 다른 작가님들의 꾸준한 글쓰기와 감탄스러운 글을 읽노라면 부러움과 약간의 좌절이 생긴다. 글을 올리는 기간과 횟수가 길어지고 늘어날수록 나의 편협한 경험과 얕은 사고의 깊이가 더욱 드러난다. 이럴 때는 브런치라는 벌판에 맨몸 벗고 다니는 기분이 들어 한동안 브런치를 열어보지도 않는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이제부터는 작가 흉내 내지 않고 내 마음이 생긴 대로 적어보려 했다. 솔직한 마음을 담백하게 적어보자고 했으나 곧 모두 지워야 할 정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사람이 너무 솔직해도 못쓴다.' 이 말의 두 가지 의미가 다 맞는 것 같다. 솔직한 글을 못 쓰기도 하지만 너무 솔직하면 사람이 뻔뻔해지고 무례해진다. 글 쓰는 일은 참 어렵다. 글을 쓸 때는 나를 속이는 말이라도 해서 나를 좀 녹아내려야 한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대신 “그걸 몰라서 그러겠어?” 말로 나무껍질처럼 딱딱해진 마음을 좀 달래야 한다. 비록 나만이 아는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글로 옮겨놓고 묵은 찌꺼기를 걸러내듯 마음을 청소해야 한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서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말로 나를 속여서라도 글로 옮겨놓으면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가뿐해진다. 그렇게 내 마음이 종이에 적힐 때 정말 솔직한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때서야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라는 물음에 정직하게 답을 할 수 있다. 그때의 답은 차분하고 진지하다. 글이 나를 위해 쓸 때 비로소 나를 치유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글은 오히려 쓸수록 나를 찌르고 괴롭힌다. 내가 글을 쓰며 알게 된 글을 쓰는 이유이다.


글을 쓰며 남은 생은 어쩌겠다거나 앞으로는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오늘의 실수는 어떤 식이든 일어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반성과 다짐을 반복한다. 술도 못 마시는 나는 아내에게 못 마시며 마시는 조금의 술이라도 완전히 끊어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운동을 마치고 무알콜 맥주를 사서 집으로 왔다. 담배로 따지면 ‘무알콜 맥주’는 ‘니코틴 패치’ 쯤 되는 거라고 우기며 맥주를 마셨다. 결국 내가 했던 술을 안 마신다는 약속은 없던 일로 되었다. 브런치에 계속 글을 올려보라는 친구의 권유에 화답하려는 다짐도 없던 일로 될지 모른다. 그럴 때는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라고 다그치는 대신 브런치에 알맹이 없는 글이라도 올려야겠다. 그리고, 이렇게 읽어야겠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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