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7개월이 지났다. 누군가에게 일 년도 아닌 7개월은 걸음마를 이제 배우기 시작한 수준으로 보일 수도 있을 테지만 여름에 시작해서 겨울이 지나는 동안 매달 100km 이상을 달려오는 나는 나만의 감회가 있다. 작년 년 말 모임에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묻고 답하는 도중에 무심코 요즘은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갑자기 화제가 달리기로 돌아서며 내가 기억나는 말은 만약 이번 겨울을 잘 보내면 앞으로 달리기를 계속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선언이었다. 이제 겨울도 몸을 녹이는지 아침 공기가 달리기를 하는데 상쾌할 정도였다. 아무튼 나는 오늘 아침 마치 겨울 방학 숙제를 빠짐없이 챙겨놓고 새 학기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가뿐하게 달리기를 하러 길 위에 섰다. 여름을 지나 겨울을 보내는 사이 달리기는 한결 정돈된 페이스와 안정된 템포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케이던스가 높아지거나 기록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에게서 불편해하지 않고 나만의 달리기를 즐길 정도가 된 것이 무엇보다 뿌듯하다.
달리기를 하며 내가 누군가를 앞질러 간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보았다. 역시 그런 일은 없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여름 달리기를 시작하며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을 쫓아 가려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를 앞질러 갔던 사람들 중에는 내 나이 또래의 여자나 나보다 훨씬 나이 많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어느 순간 나타나서 나를 앞질러 가면 나도 모르게 그들과의 격차가 벌어지지 않으려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속도를 높여도 그들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점점 멀어지다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면 달리기는 나에게 맞지 않는 운동으로 돌리고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달리기를 단념했다. 달리기를 그만두고 그동안 줄곧 걷던 길을 다시 걷다 어찌 된 일인지 즐기던 산책마저 시큰둥해졌다. 산책길에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며 산책하러 나가고 싶은 마음조차 시들해졌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도 역시 나를 앞질러 가는 수많은 러너가 있다. 내 앞을 달리는 사람들을 더 이상 선망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나는 이 길을 달리는 동료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추운 영하의 날씨에 달리는 사람들은 이 겨울을 쉬지 않고 봄까지 달려 보겠다는 다짐이 있다. 몇 번을 망설이다 패딩을 입고 장갑을 끼고 신발을 신고도 현관문을 열고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내 앞을 지나 달려가는 사람에게서 용기와 위안을 동시에 받는다. 이제 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울을 지나며 봄을 지나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달리기를 계속해 가려면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어디에서 멈추고 돌아서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남 뒤따라 가봐야 평생 그 뒤만 볼뿐 정작 봄이 오는지 가을이 가는지 알 수가 없다. 달리기가 힘들고 어려운 이유는 다른 사람의 뒤를 쫓아 달리기거나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고난 체력이나 재능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순간 잊고 산다. 수십 년을 달리고 마라톤 풀코스를 매년 뛰며 서브 4를 기록하고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병아리 걸음마 같은 나의 달리기로 달리기에 대해 글을 쓰는 나도 멋쩍다. 그들은 진짜 달리기를 하는 것이고 나는 그냥 달리는 것이다. 나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내 귀에 꽂은 이어폰의 음악에 빠지고 북대서양 고기압의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얼굴을 팽팽히 당기고 손끝이 아려오는 아픔을 느끼며 그냥 달린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 중간에 그만두었던 수많은 일들이 달리는 내내 주마등처럼 지났다. ‘왜 그때 그만두었을까?’ 돌이켜 보니 별 뜻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평가에 기대어 웃고 울었던 순간들이 지나며 얼굴이 순간 붉어지도록 부끄러웠다. 나만의 달리기에 몰입하지 못하고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좇아 달리는 모습처럼 비쳤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경기는 잔인하다. 테니스 경기를 좋아하는데 2009년 호주 오픈 결승에서 페더러가 나달에게 풀세트 접전 끝에 패하고 “God, it’s killing me(정말 죽을 것 같네요)”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때 나달은 페더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위로를 했고 그 후 2017년 호주 오픈에서 페데러는 35세의 나이에 나달을 꺾고 우승을 했다. 이 둘은 테니스를 하며 라이벌이면서 동료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정반대의 경우도 빈번하다. 사람 사는 모양이 다 각각이고 누굴 경쟁상대로 만나는지도 어느 정도는 운명처럼 보인다. 지고는 못살아 자멸하는 사람도 있고 이기고 지는 일보다 자신의 인생의 깊이를 새기는 것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다. 테니스의 황제였던 페데러는 메이저대회에서 10년 동안 나달을 한차례도 이기지 못하면서도 ATP 팬 선정 인기상을 2021년까지 19년 연속 1위였다. 팬들은 왜 페더러에 열광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의 우아한 테니스 퍼포먼스를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으나 내가 페더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그가 테니스의 승패를 떠나 경기하는 상대를 동료로 존중하고 테니스에 몰입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하면 나에게 목표가 무엇인지 묻는 사람을 만난다. 하프 마라톤 정도의 목표는 당연하고 기록은 어느 정도로 삼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 정도는 되어야 좀 뛴다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는 식도 간혹 있다. 산에 다닌다면 지리산 무박종주나 백두대간의 섭렵 정도는 해야 등산을 한다고 할 수 있다는 사람이 산악회의 찐 산악인 대접을 받는다.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내용에서도 하루키는 달리기의 기록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책을 보며 하루키가 달리기를 통해 삶의 통찰을 어떤 식으로 얻고 있는지 행간의 의미를 찾으려 애썼으나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달리기라는 밋밋한 움직임에 가까운 몸짓을 무수히 반복하며 다져지는 속 근육 같은 글들이 느껴졌다. 달리기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숨을 쉬지만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고 집중하면 숨쉬기는 명상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달리는 단순한 움직임의 반복으로 마음에서 솟구쳐 오르던 감정의 기복들이 사그라드는 경험을 한다. 나에게 달리기는 나를 상대로 하는 밋밋한 대화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을 달리며 다시 겨울이 기다려진다. 겨울의 달리기는 길 위에서 동료를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