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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철 Mar 21. 2022

봄바람 차가운 날

 어느 순간 산수유가 다시 나타났다. 가지 위에 몽올진 매화가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더니 내 발걸음 소리에 맞춰 매화 한 송이가 망울을 터뜨렸다. 그 순간 갑자기 찬 바람이 불었다 그쳤다. 지금 봄은 밀고 당기고 주거니 받거니를 하며 술렁술렁 오고 있다. 지난주는 봄바람맞으며 설레었는데 이번 주는 길을 나섰다가 집으로 다시 들어와 두꺼운 옷으로 바꿔 입었다. 봄바람의 밀당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목 언저리는 바람을 가려달라 하고 가슴팍 옆 겨드랑이는 바람 좀 쐬게 해달라고 다툰다. 이러다 바람이 훈훈해지고 꽃이 터지면 옷은 벗어 팔에 걸어두는 날이 올 것이다. 더 이상 밀당도 없고 어느 누구의 변덕도 없이 모두 완연한 봄기운에 녹아내릴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밀고 당기는 일은 긴장감보다 불편하다. 남녀의 사랑이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어느 한쪽이 확 끌려가지 않는 이상 서로의 줄을 쥐고 밀려가고 당겨오기를 반복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싫다. 그래서인가 난 주로 혼자서 결정하고 실행하는 혼족에 가깝다. 여행도 혼자서 다니길 좋아하고 하루 중 일정 시간은 혼자 있는 시간을 누가 만들어 주지 않아도 찾아 먹는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 밀지도 당기지도 않고 곧바로 진도를 확 빼고 관계로 돌진했다.      


 ‘저기요... 아침 배드민턴반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저랑 배드민턴을 안 하면 어쩌죠? 그때는 환불이 되나요?’

동네 생활체육관의 아침 배드민턴을 등록하면서 인포데스크에 계신 분에게 물었다.

‘가 보세요. 가시면 그냥 돌려보내지는 않을 거예요.’ 인포데스크에 계신 분의 대답이 내 귀에 세상 단순하게 들렸다. ‘해보면 알아요’

아침 6시 어디서 주어온 배드민턴 라켓 하나를 덜렁 들고 생활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내가 들은 대로 윤이 번지르한 마루 위에 고목처럼 서 있었다. 이게 내가 한 전부이다. 그 후 한 시간이 지나서 나는 마룻바닥 위를 망아지처럼 뛰어다녔고 강아지처럼 굴렀으며 원숭이처럼 깔깔거렸다. 아침 배드민턴반의 꽃님이 누님이 라켓의 그립을 새로 감아 주고 문식이 형님이 내게 자세를 다시 알려주었다. 다음날 나는 배드민턴장에 나가지 못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은 새로 들어온 막내 신세가 되어 대기 선수로 기다리다 투입 명령이 떨어지면 비장하게 코트에 들어선다. 그리고 할배 형님이 셔틀콕을 좌우 앞뒤로 보내며 나를 농락한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인포데스크에 계신 분의 차분한 말이 되살아났다. ‘해보면 알아요.’     

 

실패를 두려워 용기 내지 못하는 순간에 일단 해보면 안다는 말만큼 단순하면서 어려운 말이 없다. 밀고 당기지 않고 이리저리 재지 않고 일단 해보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일들이 봄날에 꽃망울 터지듯 벌어진다. 봄꽃들이 밀당을 즐기며 피어날 때 삶은 좀 더 과감하고 단호하다. 밀고 당길 여유가 없다. 일단 해보면 아는 일들이 즐비하다. 작년에는 그렇게 시작한 일이 드럼이었다. 드럼으로 본 조비의 ‘always’를 완주하고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드럼 쌤과 합주를 마쳤을 때의 흥분으로 몇 달은 행복했다. 그때도 드럼 선생님이 말했었다. ‘일단 해보면 모두가 다 할 수 있어요’     

 

 정작 다른 곳에 가면 이런 말은 되도록 조심한다. 잘못하면 자기 자랑이고 잘해봐도 자기 자랑이다. 삶이 팍팍할수록 밀당 그만하고 일단 해봐야 한다. 신발을 신어야 밖에 나가고 밖에 나가야 봄꽃과 인사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운동화는 신발장에 넣지 않고 바닥에 둔다. 어쩌다 봄 이야기에서 삼천포로 빠졌다. 빠지더라도 일단 쓰고 본다. 그래야 내 진짜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 오늘은 논리 정연한 글보다 누군가와 신나는 잡담이 하고 싶다. 신나는 봄 이야기하며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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