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북쪽에서 남쪽까지
점심을 먹고 난 후부터는 묵묵한 질주의 시간이었다. 세 군데를 돌고 나니 알았다.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일. 그러니까 제주도를 반 바퀴를 달리는 일은, 하루의 4분의 1을 이동하는데만 써야 한다는 의미이다. 70만 명이 살고 있다는 제주도의 땅의 넓이를 또다시 간과했다. 이모부가 빨리 이동해야 한다고 채근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운전자의 마음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아쉬운 내색만 내비쳤던 것에 죄송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리고 일단 허리가 아프다.
협재를 지나 모슬포항을 가는 바다는 화를 내고 있었다. 힘차게 밀려와 부서지기를 반복하는 파도의 모습은 무서웠지만 장관이었다. 두려움 따위 없어보이는 파도는 눈앞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집어삼킬 기세였다. 이모부가 말하길 이 부근의 바다는 제주의 바람이 모이는 곳이라 파도가 높게 친다고, 조금만 지나면 잠잠한 바다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말은 사실이었다.
모슬포항을 지날 때에는, 바다의 비릿한 냄새가 가득했다. 높은 파도로 바다에 나가지 못한 어선이 가득한 항구에서, 배를 구경하는 것이 쏠쏠했다. 항구를 스치듯 지나 도착한 마지막 종착지는 용머리 해안이 보이는 산방산 입구였다. 한 폭의 시야에 다 담기지 않고 고개를 젖혀야만 볼 수 있는 거대하고 위엄 있는 거대한 산의 모습이 경이로웠다.
미국에 그랜드캐니언이 있다면 제주도에는 용머리해안이 있다고 했던가. 용머리 해안은 제주도에 오기 전에 꼭 가리라 맘먹은 곳인데, 이렇게 먼발치에서 보니 더 애가 탄다.
이곳이 마지막 코스였다. 더 이상 해안도로를 달리기에 시간이 너무 늦어 가로질러가는 지름길을 택했다. 중간에 이모의 최애 호떡집을 찾았지만, 다 팔리고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곧장 내가 머무는 숙소로 향했다.
이모는 한달살이 하러 내려온 조카가 어떻게 지내는지 내심 걱정되고 궁금하셨던 모양이었다. 숙소에 주차를 하고 숙소 구경을 하기위해 올라왔다. 멋쩍은 마음에 쭈뼛쭈뼛문을 열었다. 좁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나의 공간. 쓱 한번 둘러보시고는 안심이 되셨는지 고개를 몇 차례 끄덕이시다가 문 밖으로 나가셨다. 왠지모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는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서 쉬면 되지만, 이모부는 또다시 두 시간 가까이를 운전을 해야 한다. 고생한 이모부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서 시장을 구경하는 동안 지난번에 먹어보고 맛있었던 치킨을 손에 들려드려 보냈다.
제주도에 볼 것이 많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제주도에 있는 동안 그래도 알음알음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든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반나절을 돌아다닌 제주는 가는 곳마다 새로웠다. 처음 알았다. 제주도의 바다가 이렇게 다 다른 것을. 협재에서는 투명한 에메랄드 같았던 바다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깊고 짙은 바다의 색이 된다. 잔잔했던 바다가 집어삼킬 듯 몰아치는 파도가 되고, 모래의 색도 짙은 흑색, 베이지색, 아이보리색, 모래가 없는 곳도 있다. 사방이 다 같은 바다인데, 바다의 분위기가 이렇게 다 개성이 넘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제주도민들이 새삼 부럽다. '음.. 오늘은 협재에 가서 수영을 해볼까~' '아니야 오늘은 삼양의 모래를 밟고 싶군' '아니면 곽지에 가서 선셋을 볼까?' 육지에서는 그저 만만하게 가까운 바다만 골라가기 바빴는데, 이곳에서는 입맛대로 갈 수 있다. 좋. 겠. 다!!!
"OO아, 덕분에 구경 잘했어. 일찍 푹 자여(너가 사준 치킨 저녁으로 묵고 씼는다)"
"이모~ 저도 오늘 구경 너무 잘하고 재미있었어요!! 고맙습니다. 또 놀러갈게요!"
"그래~~ 이모도 행복했어"
행복했다는 이모의 문자에, 코끝이 시큰거렸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투어가 저녁 7시가 되어야 끝이 났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거의 6시간을 차를 타고 해변을 보며 멋진 하루를 보냈다. 이 커다란 섬에, 피붙이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그 존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용두암-> 이호테우해수욕장-> 협재해수욕장-> 짜장면집-> 모슬포항-> 산방산-> 올래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