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한달살기]우당탕탕 제주도 서귀포10일 차(1)

제주도 북쪽에서 남쪽까지

by 취미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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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부는 공무원이셨다. 퇴직 후 이모와 함께 제주도 이곳저곳 여행하다가 삼양해수욕장의 해변에 반해버린 것이 삼양에서 정착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낭만적이지 않은가. 한눈에 반해버린 곳에 자리를 틀 수 있는 용기가 부럽고 멋지다. 해변을 직접 마주하고 나서 이모부가 왜 이곳에 반했는지 알 것 같았다. 검은모래해수욕장(모래가 짙은 흑색이다.)이라고도 불리는 삼양해수욕장은 모래가 있는 해변이어서 맨발로 해변을 걷는 로망을 드.디.어. 실현할 수 있었다. 모래 위를 맨발로 한 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걸을 때마다 발가락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모래의 촉감과 발 위로 찰랑이는 물결, 적당히 시원한 바다의 온도가 기분을 얼마나 좋게 만드는지. 좋은 기억을 남긴 공간은, 그 기억을 잊지 못해 또다시 찾게 된다. 똑같은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쩌면 두고 온 것은 감정이나 기억이 아닌, 그때의 내 마음가짐이나, 생각 일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도착한 어제, 저녁을 먹고 나니 너무 늦었다며 자고 가라는 이모의 배려 덕분에, 오랜만에 이모와 수다를 안주로 한 맥주 한잔을 했다.


"OO아, 너는 정말 현명하게 너의 좋은 인생을 살고 있어. 제주도에서 한 달 살아보는 건 정말 잘 선택한 일인 것 같아"


잘하고 있다는 말에, 마음 한편에 늘 가지고 있는 불안한 마음이 다독여졌다. 내가 한달살이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모의 딸은 내가 너무. 너무. 너무 부럽다고 했다. 언니는 이모가 제주도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육아와 직장의 일로 한 번도 와보지 못했다고 한다. 얽매이는 것 없이 자유로운 나의 시간을 하염없이 부럽다고 했다. 이모도 언니가 참 보고 싶겠구나, 이모에게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지만 깊은 대화들이 오고 가는 밤이었다. 뜨끈뜨끈한 전기장판 위에 누웠다가 녹아버린 몸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제주에 온 이래로 가장 꿀 같은 단잠을 잔 것 같다.


아침에 나갈 채비를 하는데, 이모부가 육지 촌사람에게 관광을 시켜 주겠다며 해안도로 투어로 숙소까지 데려다주신다고 하셨다. 세상에! 뚜벅이인 나에게 제주의 바다를 투어 한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제안을 해주신 이모부가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 이모의 입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제주도 북쪽 용두암을 시작으로 서쪽을 한 바퀴 돌아 남쪽 서귀포로 내려가 제주도 반 바퀴를 돌게 되는 투어 일정이었다. 이모부의 트럭을 타고 이모와 셋이서 출발하는 제주 반 바퀴 우당탕탕 여행 시작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수학여행 때 갔던 용두암이다. 10년도 넘은 수학여행의 기억은 뒤죽박죽이어서, 이곳을 왔는지 안 왔는지 기억 날듯 말 듯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근무하셨던 이모부는 이곳을 안 왔을 리 없다며, 옆에서 보면 용처럼 생겼다는 용두암의 머리를 연신 가리키며 얘기하셨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것도 아닌데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용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모부를 실망시켜드릴 수 없기에 "오! 정말 용머리 같아요!"라고 아무렇게 맞장구를 쳐버렸다. 사회생활에서 갈고닦은 나의 리액션이 그럴싸했는지 흡족한 표정을 지으시며, 다음 코스 이동을 재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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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촌사람에게 제주도를 구경시켜 주겠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자격증 시험이 끝난 후의 오랜만의 외출이 즐거우셨던 건지 이모부의 얼굴에서 평소에 볼 수 없는 기분 좋음이 읽혔다. 이모도 그 모습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두 번째 목적지는 이호테우 해수욕장. 매번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이호테우 해수욕장의 빨갛고 하얀 말의 등대를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했다. 아침에 비가 살짝 내린 흐린 날씨임에도 제주는 제주이다. 날씨에 굴복하지 않는 관광객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부지런한 사람들. 주차장에 잠깐 정차하여 사진 몇 장 찍어보려고 했는데, 이모부가 다음 코스가 더 좋다며, 빨리 이동하자고 불렀다.


이모부: 이제부터 딱 5곳에만 정차할 거야.

나: 네...? 왜요? 지금 여기서부터 5곳인가요?

이모: 에이, 다음부터 5곳으로 쳐야지!


좀 더 여유롭게 움직이고 싶은 나와 이모와는 다르게 무언가에 쫓기듯 움직이는 이모부가 의아했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기에 이모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이었다. 다시 수학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라고 하면 내리고, 사진 좀 찍다가, 가자! 하면 가는, 속전속결한 가이드에 괜스레 웃음이 났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모부가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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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코스는 협재해수욕장이었다. 조개껍질이 부딪히고 부서져 가루가 되어 만들어진 은빛의 해변. 다음 코스가 더 좋다는 이모부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 해변이야 말로 '제주바다' 하면 떠오르는,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는 제주의 바다였다. 어제 본 애월의 바다보다, 서귀포의 바다보다, 삼양의 바다보다 맑고 투명해서 바다의 속살이 다 보이는,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의 바다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남아의 하와이와 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 아름다운 바다는 사람들을 홀리기 충분했고, 그곳에 기꺼이 빠져들었다. 이래서 다 협재 협재 하는구나, 싶었다. 이모부는 나를 피사체 삼아 앉아보라고 했다가, 점프하라고 했다가, 다시 서보라고 했다가, 하는 의욕과 열정이 넘친 촬영 시간이 이어졌다. 엄청난 바람에 머리카락이 물에 젖은 미역처럼 휘날리고, 눈 감은 사진이 반이었지만 그것대로 즐거움의 맛이다.


세 번째 코스까지 돌고 나니 허기진 우리들은 이모부와 이모가 제주도를 누비고 다닐 때 맛있게 먹었다던 짜장면 집을 갔다. 무조건 찬성. 제주도에 와서 제일 생각났던 음식 중 하나였던 짜장면이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짜장라면이 아니라, 춘장과 기름에 볶은 각종 야채과 고기가 면을 살포시 덮고 화룡점정인 아삭한 오이를 얹은 그런 짜장면. 그리고 바로 튀겨낸 따뜻하고 부드러운 탕수육과 함께라면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이사한 날 먹는 짜장면, 졸업식날 먹는 짜장면의 기분 이었다. 기분의 맛이 더해진 짜장면이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용두암-> 이호테우해수욕장-> 협재해수욕장-> 짜장면집-> 모슬포항-> 산방산-> 올래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