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한달살기] 우당탕탕제주도 서귀포 13일 차(2)

행복의 값

by 취미수집가
KakaoTalk_20210408_235725505_10.jpg 오브젝트. 늘 의 돌 창고


종달리의 동네 구경과, 필기를 구경하고 남은 20분 남짓은 돌 창고라고 불리는 '오브젝트.늘' 앞에서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 앉아있으니, 내 뒤로 웨이팅의 기다란 행렬이 시작되었다. '아니,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린다고?' 이곳이 문 열기를 오매불망 기다린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오픈을 예고한 시간이 되자 어디선가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뛰어오면서 굳게 닫혀 있던 돌창고 문이 열렸다. 그녀였다.

현재 코로나로 인해, 한꺼번에 2-3팀 정도만 입장이 가능하고, 그 외의 인원은 순환이 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예약제로 운영된다고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두 번째 순서로 기다리던 나는 오픈하자마자 첫 번 째타임으로 입장하여 아직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그녀의 작업물들들과 수집품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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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창고는 주얼리뿐 아니라 신기하고 예쁜 오브제들이 많이 있다. 원래 이발소 자리였다는 이곳은 주인을 잘 만나서 감각적인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돌창고가 아니라 보물창고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종달리의 들풀과 들꽃을 모티브로 주얼리를 만드는 '오브젝트.늘' 줄이면 '오늘'이 되는 이곳의 제품들은, 수작업으로 하나씩 만들기 때문에 '절대' 똑같은 디자인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계산대에서 마주하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힘주어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주목이 부담스럽다고 제주도 가장 끝자락 구석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광고는 커녕 개인 SNS 계정을 비공개로 돌려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문이 열려 있는 곳. 그래서일까? 더 궁금하고, 더 갖고 싶고, 더 안달 나게 만드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일을 좋아하는 것이, 그녀가 쌓아온 시간들이 선명히 보였다.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계속하다 보면 누구든지 그것을 잘 해낼 자격이 있다. 바쁜 일상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문득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태수-브랜드적인 삶. p.53>


"앗, 이거 제가 방금 전 마지막까지 만든 거예요! 종달리에서 나는 식물 보고 제작해서, 절대 똑같은 것은 없어요!"

"와 정말요? 너무 예뻐요...ㅠㅠ"

"제주도 여행 중이신가 봐요!~ 언제 오셨어요?"

"아, 저 제주도 한달살이 하는 중이에요! 2주 다되어가요! 너무 좋아요~"

"와! 정말요? 저도 제주도 한달살이 했어야 했는데, 했었으면 제주도 안 왔을 거예요ㅠㅠ"

"헉? 왜요??"

"지금은 겨울이라 괜찮은데, 여름이면 온갖 벌레들이 장난 아니에요..ㅠㅠ 특히 왕지네요 "


여름의 어마 무시한 벌레가 싫다며 질색팔색 하는 사장님의 솔직함이 귀엽고 유쾌해 보였다. 그 말이 공감이 되기도 하고...(최근 이모네 집에 갔을 때 그 왕지네를 봤기 때문이다.) 배송비만 내면 A/S를 해주니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연락 달라는 든든한 구두 보증을 받고 문을 나서니, 어쩐지 아까보다 줄이 더 길어진 것 같다.




목적을 다 이루고 나오니 배가 몹시 고팠다. 그러고 보니 아직 뭘 먹은 기억이 없다. 다음 버스시간까지 1시간이 좀 넘게 남아, 간단하게 배를 채우기 위해 제일 가까운 곳의 브런치 카페를 가기로 정했다. 힘없이 터덜터덜 걷는 와중에 동네의 풍경이 너무 예쁘다. 새로 페인트칠한 빨간 대문의 집, 이름 모를 오름, 잿빛 하늘에 살짝 비치는 노을빛과 갈대. 동네 이름도 종달새가 생각나는 종달리인데(종 모양을 닮은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동네의 분위기나 풍경이 조용하고 소박하고 예뻐서 또 가져온 카메라를 꺼내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꼬르륵 소리에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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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44(보정).jpg 동네 주민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듯한 진돗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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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이렇게 배고픔을 느낄 때만 먹을 생각을 하니, 살기 위해 먹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건강과는 거리가 먼 여행이다. 배고픔을 움켜잡고 향한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바게트 빵에 사이로 루꼴라와 베이컨이 들어있는 샌드위치. 당근 샐러드까지 넣어서 먹으면 건강한 맛의 완성이다. 당근을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꾸덕꾸덕하고 퍽퍽한 빵이 목구멍을 넘기기 힘들 때, 적당히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모금으로 퍽퍽함을 내리면 그렇게 풍족할 수가 없다. 허기를 달래고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 오전에 구입했던 책을 펼쳤다가 읽히지 않아 몇 장 읽다가 덮어버렸다. '하고 싶다'는 목적 하나로 즉흥적이고 빠듯한 하루에 쉼표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쉬다가 버스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로 끝일 줄 알았지만, 숙소 근처에서 <푸른 밤 소주를 주문하면 귤꽃 잔을 증정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보고 소주잔이 갖고싶어서 저녁을 주문했다. (하하하, 정말 호사스러운 날이다.)

이 소주잔으로 말할 것 같으면 푸른 밤 소주를 구매하면 얻을 수 있는 전리품 같은 것이다. 제주의 꽃, 바다, 동네의 시리즈로 구성된 제주스러운 굿즈인데, 특히 동네 시리즈는 그 동네에 가야만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끔 마트에서 두병 구매시 잔 하나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하는데 이 동네서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음식점에서 소주를 주문하면 잔도 함께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결국 이 주객이 전도된 소비는, 소주잔을 샀는데 막창도 주고 소주도 다소 웃픈 상황이 되었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혹시 소주잔을 모으고 있다면 벚꽃 잔 남은 것이 있다며 더 주겠다고 하셔서 두 개를 얻었다. 막창도 맛있었지만, 소주잔에 담아 마시는 소주가 맛있었다. 이전에 소주잔이 없어서 호텔에서 제공되는 머그컵에 담아 마셨을 때와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친구들은 술 먹지도 않는 애가 왜 이렇게 술이 늘었냐고 한다. (그래 봤자 몇 잔 깔짝대는 게 다이지만) '음... 분위기의 맛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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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영롱하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행복하다. 흐뭇하다. 기쁘다. 흡족하다. 충만하다. 이 모든 형용사들이 충족되는 밤이다.(지갑은 울고 있지만) 오늘의 모든 순간이 그랬던 것 같다. 오늘의 모든 소비가 행복의 값어치라면, 정말 가끔은 이렇게 행복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건을 볼 때마다 오늘이 생각 날 것 같다. 그러면서 얘기하겠지. '좋은 소비였다.'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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