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값
오늘은 정말 과소비의 날이었다. 아...
버릴수록 행복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오늘 구매한 물건들로 꽉 채워진 행복은 저 말들을 거짓으로 만든다. 신이 탐욕스러운 인간에게 벌을 주기위해 인간이 가진 모든것을 빼앗았지만, 가져갈 수 없는것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인간의 탐욕이다. 신도 가져갈 수 없었다는 인간의 탐욕은 애써 비우려고 노력한 자리를 물건으로 자꾸 채우게 만들었다.
무엇을 샀길래 그렇게 행복했느냐? 첫번째 목적지는 독립서점인 라바북스 였다.
5명 정도 들어가면 꽉차는 이 공간을 탐험하는 일은 내 눈에만 보이는 보물을 찾는 일이었다. 일반 서점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자유롭고 재밌고 실험적인 독립출판 서적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구경하는 동안 '와, 이런책도 있다고?'를 30번쯤 얘기했던것 같다. 개성이 강한 책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모든 책들의 제목을 훑고, 책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콩을 솎아내듯 고르고 고른 두권의 책과, 제주 바다를 그린 그림엽서를 구입했다. 제주도의 뻔한 엽서들이 지겨워서 이제껏 단 한장도 사지 않았는데, 이 엽서는 사야했다. 색연필의 따뜻한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 엽서는 세장이 한 셋트로 되어 세장을 이어야 하나의 그림이된다. 예쁘다. 이것만으로도 사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책방 탐험을 하고나니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당이떨어진 채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다. 이때부터였다. 오늘의 계획을 다음으로 미뤄버리고, 송두리 채 바뀌게 만든 알람. 그 알람 하나에, 나는 제주도 동쪽 끝 종달리로 달려가고 있다.
이전에 한번 언급했던 적이 있는 책 <브랜드적인 삶> 이라는 책에는 '오브젝트.늘' 이라는 주얼리 브랜드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던 브랜드여서, 언젠가 제주에 가게 된다면 꼭. 반드시. 가야 겠다고 다짐했던 그곳이, 오늘 오랜만에 오픈을 한다는 알람에, 당장 달려갈 수 밖에 없었다. 평일에는 출장과 주얼리 작업을 하고 주말인 토,일에만 2-3시간정도만 오픈하는 쇼룸은 그마저도 비정기적이라 오픈의 여부를 늘 SNS 공지를 확인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타이밍이 맞는다면 무조건 가야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었다.
글로 읽고, 사진으로만 보던 곳을 직접 가보는 일은 늘 설레인다. 연예인을 보러가는 기분이랄까? 제주도에서 만든 플레이리스트가 끝나갈 무렵 종달리에 도착했다. 조그마한 초등학교에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동네에 생가 돈다. '나도 저렇게 놀 때가 있었지...' 절로 흐뭇해지는 광경이다. 오픈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한 덕분에, 시간이 남아 동네골목을 스윽 돌아보기도하고, 바로 옆에 있는 <필기>라는 문구숍도 가보았는데, 길을 걷다 금반지를 발견한 것 만큼이나 좋았다. 그냥 문구류만 파는 가게인 줄 알았는데, 연필이나 타자기를 이용하여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을 예약제로 제공하는 곳이였다.
"조금 느리고 불편하지만 오롯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아날로그 공간, 타인과 연결되지 않는 고요한 시간을 경험해 보세요."<필기>
공간에 대한 설명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이미 꽉차버린 예약판에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타자기를 두들기고 있는 예약에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다음에 꼭.꼭.꼭. 다시 오리라고 마음먹었다. 아쉬대로 둘러보는 가게의 내부와 판매하는 물건들도 너무 멋스러웠다. 이런 공간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은 사장님의 용기와, 애정이 멋있었다. 세상에는 멋진 사람이 너무 많은것 같다.
블랙윙의 연필부터, 스탠더드그래피의 자, 투명하고 영롱한 모양의 문진들, 각종모양의 연필깍지, 속속히 뭍어나는 아날로그 감성의 제품들을 보면서 코평수가 늘어난다.(너무 좋다는 의미이다.) 신기하고 예쁜, 취향저격당한 물건들이 너무 많아서 하마터면 통장을 털릴 뻔 했다. 정신을 부여잡고 볼펜 한자루와, 연필깍지 두개만 데려왔는데, 더 사올껄 그랬다. 연필깍지가 가져온 색연필에 원래 제것인양 아주 꼭 맞는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이 볼펜도 필기에서 사온것인데 색깔이 너무 예쁘다. 볼펜이 검정색 잉크가 들어있는 줄 알았는데, 볼펜의 색과 똑같은 컬러의 잉크가 들어있다. 너무 예뻐...!!! 후회없는 좋은 소비였다. (예쁜거 최고!)
오늘의 본래 최종 목적지인 '오브젝트.늘'에는 아직 가보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할 얘기가 많다.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라바북스-> 필기-> 오브젝트.늘-> 카페 플레이스 엉물-> 놈놈놈막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