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달살이의 마지막 날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일 육지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숙소를 일주일 연장을 하게 되면서 시간이 더 생겼다. 이 숙소에 오기전에는 집에 너어어무 가고싶어서 한 달을 다 채우지 못할것 같았는데, 한 달을 채운것도 모자라 더 있게 될 줄이야...이런것이 바로 무계획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사람일은 정말 모를일이다.
그래도 오늘이 서른한번째날이라고 하니, 괜히 일기를 뒤적거리면서 지난 한 달간의 제주 생활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지난날의 심경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세상에 이런 행복은 없을 거라며 마음껏 즐겁고 행복했다가, 또 어떤 날은 미친 듯 외로웠다가, 현재의 모습에 자책하고 불안했다가, 또다시 평온했다가, 자괴감에 엉엉 울다가, 변덕도 이런 변덕이 없을 것이고 번복도 이런 번복이 없을 것이다.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그 모든 모습들이 '나'라는 것을 안다.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하다. 결론은 그냥 열심히 놀고먹은 것 같다.
오늘도 그랬다. 옆방 언니, 앞방 동생과 함께 숙소에서 가까운 수산봉에 그네를 타러 갔다가 이동하면서 유쾌한 택시 아저씨도 만나고, (제주도의 택시 기사님들은 왜 자꾸 본인의 아들을 소개해준다고 하실까.하하하) , 한담에서부터 시작하는 애월의 해안도로를 걷고, 다시 호탕으로 와서 동파육을 먹고(호탕에 또 갔다. 사장님이 왜 맨날 오냐고 하셨다. 하하하), 귤 따기 체험을 했다. 원래는 호탕 근처에 칵테일 집에 가서 선셋을 보려고 했는데, 휴무날인 관계로 급 결정한 일정이었다. 귤 따기 체험이라니! 제주에 와서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는데 그게 오늘이었다니! 귤 따는 체험을 한번 해보니 왜 귤 따는데 초보는 뽑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귤을 선별하는 일부터가 난관이었는데, 맛있게 익은 귤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먹어보는 것' 뿐이었다. 먹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따는 족족 바구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뱃속으로 들어간다.(하하하하) 생각해보면 맛있는 것은 다 먹어놓고, 결국 맛을 알 수 없는 귤만 바구니에 가득하게 된 사실이 웃기다. 귤을 딴다-> 확인차 먹는다-> 없다 의 굴레 속에 어찌어찌 한 바구니를 채웠다.
작고 동글동글한 귤들이 바구니에 꽉 차있으니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실제로 배가 부른 것도 맞다.) 아주 든든하고 풍족한 느낌이랄까. 귤나무 틈 사이에서 서로 인생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열정을 다해 사진도 찍고 나니 체력이 바닥이 났다. 해가져서 추워진 날씨와 지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옆방 언니와, 앞방 동생은 선셋을 보러 간다며 숙소 근처의 해안가를 산책하고 온다고 했다. 정말 대단한 체력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어 방에서 쉬기로 했고, 둘을 기다리는 동안 방에서 엄마와 통화도 하고, 누워서 책을 읽었다. 이젤이는 내 무릎에 올라와 있더니, 나중에는 나의 이불 위가 본래 자신의 자리인양 자리를 차지하더니 잠들었다. 잠들어버린 이 녀석을 깨울 수가 없어 그대로 두었다. 선셋을 보러 간다던 두 사람이 돌아왔고, 손에는 떡볶이와 튀김이 들려있었다. 세상에!!! 기승전결이 떡볶이라니! 하루의 마무리를 떡볶이로하는 이렇게 완벽한 하루가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맥주가 함께하는데 이보다 행복한 저녁은 없을 것이다. 장담한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에 실감했다. 귤 따기 체험을 하면서 "여기 혼자 귤 따러 왔으면 재미없겠겠다!"라는 말에 모두 동의하며, 함께라는 사실과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에 감사한 하루였다. 내일부터는 별책부록 같은 일주일이 남아있다. 남은 시간을 또 어떻게 보낼까? 또다시 숙소를 연장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우당탕탕 제주도 여행기. 한치 앞도 모르는 이 하루들이 기대가 된다. 내일이 궁금해진다.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애월 수산봉-> 애월 해안산책로 -> 호탕 -> 귤빛 정원-> 앨리스 그림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