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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비관우자앙비 Sep 21. 2017

내 인생 이야기 #6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국 적응기. 1997년의 제남.

전학 첫날, 조례 시간에 내가 소개된다. 담임 선생님께서 뭐라고 뭐라고 하시고 나에게 무언가를 종용하신다. 아, 자기소개. 영어로 아임 싸우스 코리안을 이야기한다. 분위기가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애들도 중2짜리니까.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영어로 한 마디, 뒤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온화한 미소로 좋은 인상을… 주려고 했으나, 난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80명이 넘는 시선이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진짜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빈자리에 앉았다.


딱 이 교실이었다. 힘겹게 찾았다. (이미지 출처: Baidu)


중국 학교의 교실은 매우 길었다. 등받이가 없는 등자(凳子, 등받이 없는 의자)와 나무로 만든 거의 정사각형의 책상이 줄지어 있었다. 내가 받은 번호는 82번이었다. 원래 그 거실에서 81명이 공부하고 있었다는 소리겠지. 대형은 짝꿍이 있는 대형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시험 보는 대형처럼 한 줄로 길게 있는 대형이었다. 나는 앞에서 약 60% 정도, 좌에서 약 40% 정도 되는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의 시선이 내 일거수일투족에 몰렸다.


조회가 끝났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대륙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그 들도 처음 본 외국인이 궁금했던 것이다. 나를 중점으로 동심원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세어봤다. 4겹. 엄마손 파이도 그만큼 촘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아마 중국말할 줄 아냐, 여자 친구는 있냐, 언제 왔냐, 무슨 생각을 왔냐 등등을 물어보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나를 콕콕 찔러보기도 했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그런 기분이었을까. 사람이 긴장하면 소변을 보고 싶어 진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반장이라고 불리는 아이 (반장은 한국어랑 발음이 비슷했음)에게 토일렛을 외쳤다. 그 아이는 벙찌더니, 아아 다블류시(WC) 그러더니 나를 데리고 나갔다.

오른쪽 끝에 화장실이 있고, 그 옆으로 탁구대가 20대 정도 있다. 이미지 출처: Baidu


이 학교에서 화장실은 운동장 끝에 있는 단독 빌딩이라고 썼었다. 나는 화장실을 가면 그 동심원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전생에 피리 부는 사나이라도 되었던지 내가 화장실을 향하는 뒤에는 모든 아이들아 날 따라오고 싶었다. 아마 외국 아이의 꼬추도 자기들하고 같은지 궁금했나 보다. 뒤에서는 알 수 없는 중국어가 계속 웅성거렸고, 누군가는 깔깔 대기도 했다. 참고로 중국 학교의 교복은 츄리닝 형태이다. 그 학교의 교복 역시 체육복 형태의 무언가였고 같은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그래도 첫날이라고 머리에 스프레이도 뿌리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간 나를 따라 운동장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좋았던 것은,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 당시 중국 학교의 점심시간은 2시간 30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오는 그런 스케줄이었다. 씨에스타라는 개념이 90년대까지는 존재했던 아시아의 스페인이 바로 중국이었다. 매우 두려웠고, 정신없었던 오전 시간이 지나고 내 전우조 아이들과 집을 향해 자전거를 몰기 시작했다. 전우조 아이들도 급조된 터라 손발이 딱딱 맞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친구들이 있어서 중국의 첫 시작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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