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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物之不齐,物之情也

物之不齊物之情也
천지간에 같은 것이 없음은 자연의 이치
맹자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 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의자 

김성용  


극장에 사무실에 학교에 어디에 어디에 있는 의자란 의자는

모두 네 발 달린 짐승이다 얼굴은 없고 아가리에는 발만 달린 의자는

흉측한 짐승이다 어둠에 몸을 숨길 줄 아는 감각과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을 지니고 온종일을

숨소리도 내지 않고 먹이가 앉기만을 기다리는

의자는 필시 맹수의 조건을 두루 갖춘 네 발 달린 짐승이다

이 짐승에게는 권태도 없고 죽음도 없다 아니 죽음은 있다

안락한 죽음 편안한 죽음만 있다

먹이들은 자신들의 엉덩이가 깨물린 줄도 모르고

편안히 앉았다가 툭툭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려 한다

그러나 한 번 붙잡은 먹이는 좀체 놓아주려 하지 않는 근성을 먹이들은 잘 모른다

이빨 자국이 아무리 선명해도 살이 짓이겨져도 알 수 없다

이 짐승은 혼자 있다고 해서 절대 외로워하는 법도 없다

떼를 지어 있어도 절대 떠들지 않는다 오직 먹이가 앉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곤 편안히 마비된다 서서히 안락사한다

제발 앉아 달라고 제발 혼자 앉아 달라고 호소하지 않는 의자는

누구보다 안락한 죽음만을 사랑하는 네발 달린 짐승이다




인디오의 감자
윤재철


텔레비전을 통해 본 안데스 산맥 
고산지대 인디오의 생활
스페인 정복자들에 쫓겨 
깊은 산 꼭대기로 숨어든 잉카의 후예들
주식이라며 자루에서 꺼내 보이는 
잘디잔 감자가 형형색색
종자가 십여 종이다 

왜 그렇게 뒤섞여 있느냐고 물으니 
이놈은 가뭄에 강하고
이놈은 추위에 강하고 
이놈은 벌레에 강하고
그래서 아무리 큰 가뭄이 오고 
때 아니게 추위가 몰아닥쳐도
망치는 법은 없어 
먹을 것은 그래도 건질 수 있다니

전제적인 이 문명의 질주가 
스스로도 전멸을 입에 올리는 시대
우리가 다시 가야 할 집은 거기 인디오의 
잘디 잘은 것이 형형색색 제각각인
씨감자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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