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협영화 안에 시 있다
머리 위로 보라색 중국영화가 책장을 펴고 날아다녔어
수만 권의 이생과 저생을 알고 있다는 나의 무간도
당신의 요술처럼 장풍은 변함없이 구름을 퉁기고
휘날리는 도포는 하늘에 핏빛 다섯 손가락 수를 놓지
폭포물로 잡아내린 천년여우의 머리카락은 도도하고
불로초와 키스한 앵두빛 입술은 팽팽한 힘줄이 가득해
천도복숭아 가득 열린 벼랑의 그 끝에서 나는 이별하고
당신은 너무 향기롭지 않은 마른 바람을 맞지
찢어져도 불러낼 수 없는, 이미 금이 가버린 재생화면
산산이 부서진 검개의 수만 년 전 밤빛이었어
그런 당신을 주워담고 뒤돌아서던 우물 속 달 그림자
쌍검이 실종된 신선나비와 어깨가 실종된 상사구렁이
끈적끈적하게 묻은 당신과 나의 시큼하고 오랜 이야기들
내 백발 위로 방금 항우의 마지막 검이 날아갔어
바위로 만든 책장은 민들레씨앗처럼 하얗게 부풀어오르고 이제
수만 권의 생들이 다시 흩어져 칼부림 소리를 내기 시작하겠지
강에 젖은 눈물로 무간도를 파괴하는 한 권의 책을 들고 서서
마치 구름에 달 가듯
김은 / 월간문학 (2013년 9월호)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분위기 같아서)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프시케]라는 시를 써봤습니다. 이후로 문예창작과 조교 시절, 25세가 되었던 해, 근로자문화예술제에서 [응어리]로 시 부문 대상을 받았고, 그 상으로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2006년)으로 등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해에 청년토지문학상에서 [유목민]으로 시 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문예지에서 시를 간간이 발표하고 있습니다. 문예창작과 조교 3년 임기를 끝내고, 2007년부터 사보담당자로 쭈욱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문예창작과 공부, 중문과 공부, 국문과 공부, 사진 공부, 뮤비 공부, 디자인 공부, 영화 공부... 아주 이것 저것 공부 중입니다. 앞으로 브런치에는 제 생각들, 글들, 사진들을 올리려고 합니다. 반가워요. 뿌잉뿌잉.
중고등학교 때 중국영화를 무척 많이 봤고, 사춘기 시절을 중국영화와 함께 보냈습니다. 아직도 중국영화 음악들, 주제가들이 머릿속에 자주 떠오릅니다. 위의 시 [무협지]는 영화 <백발마녀전>과 <동방불패>의 임청하, <패왕별희>의 장국영, <진용>의 공리를 이미지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진용>의 주제가는 정말 멋지지요. 엽청문의 분심이화(焚心以火). 이 시를 쓸 때 계속 머릿속에서 아마도 이 음악이 맴돌았던 것 같네요. https://youtu.be/IYPtoss8w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