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속을 달리다
삼월의 경주는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으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보문단지를 끼고도는 길가에는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무리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코오롱 구간마라톤대회
경주시내 42.195km를 6명의 아이들이 나누어 달리는 대회.
형형색색의 유니폼에 저마다의 학교이름을 새기고 달리는 아이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이 대회를 통해 황영조. 이봉주. 김완기 등 한국 마라톤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처럼 명성 있는 대회이니 만큼 전국에서 잘 달린다는 중장거리 선수들은 모두 모였을 테고,
경기 시작 전부터 출전 선수들의 결심이 어떠할지는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나는 생전 관심 한번 가진 적 없던 경기를 보겠다고,
방영 스포츠 채널을 찾아 목을 빼고 티브이 앞에 앉았다.
처음엔 그저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알 것 같은 아이들이 티브이 속에서 달린다는 게 얼마나 재밌는일안가.
그러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과 마음이 함께 반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코너를 돌 때면 내 몸도 함께 쏠렸고, 선두로 치고 나갈 때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박수를 쳐주었다.
멀리서나마 진심으로 응원을 해 주면 그 기운이 경주까지 갈지도 모르니까 하면서..
전국 각 시도를 대표하는 체고 학생들의 실력은 역시나 막상막하였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정말 쭉쭉 잘도 달렸다.
한평생 달리기와 친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보문단지를 시작으로 분황사와 무열왕릉을 지나며 어느덧 중반을 넘으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선수들은 서서히 몇 그룹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육당하는 중이야 ~ "
점심을 맛나게 먹고 나오면서 고맙다는 표현을 우리 어른들은 늘 그렇게 했다.
4대 영양소가 골고루 분포되어 한 끼만 먹어도 하루에 쓸 에너지를 모조리 공급받을 것만 같은 학교 급식.
몸에 좋은 것은 물론인데 거기다가 맛까지 으뜸이라 별 다섯 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들 했다.
아! 우린 알고 있다.
그 맛난 급식은 체육특기생을 배출하는 우리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마련하는 밥상이란 것을.
아이들 덕분에 학교에 근무하는 어른들까지 날마다 호사를 누리는 것이라는 것을.
점심식사 후 서서히 탄력을 받기 시작하는 운동장의 기운을 나는 가장 사랑한다.
매일 보고 또 보아도 눈을 뗄 수 없는 역동의 순간이다.
총알같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단거리 선수들의 모습과
한 팀으로 뭉쳐 운동장 수십 바퀴를 도는 중장거리 선수들.
기다란 봉을 지탱하며 더 높이 오르려는 높이뛰기 선수들까지.
이제 사춘기에 막 들어선 아이도, 조금씩 청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형, 누나들도
모두 최선을 다해 달리고 오른다.
한낮의 태양이 머리 위에서 그 열기를 내리꽂는 듯한 더위속에서도 아이들은 달린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붉은 트랙에 대자로 누운 채 숨을 고르는 아이들을 볼 때는 마음이 찡하기까지 했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달리는 아이들의 몸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기도 한다.
작은 빗줄기를 피하려 우산을 쓰고 지나는 어른들 옆으로 비를 맞으며 트랙을 도는 아이들이 스친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힘 내 얘들아."
선두에서 달리는 두 학생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의 선수는 아주 작고 왜소했고, 뒤의 선수는 그에 비해 훨씬 힘이 좋아 보였다.
해설자는 선두에서 달리는 선수가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이라고 했다.
선배, 동기들의 양보와 응원으로 마지막 6구간 선수로 뛰게 된 것이라 했다.
보기에도 아직 중학생 티를 못 벗은 듯한 그 아이는,
오후 운동 때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본 적이 있는 아이였다.
몸 좋은 선배들 틈에 껴서 운동장을 돌던 아이라 기억이 났는지도 모른다.
뒤에서 따라오는 선수는 곧 따라잡을 기세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큰 키로 성큼성큼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의 손발이 다 저릴지경이었다.
막판 스퍼트를 하고 있는 듯했다.
조금씩 간격이 좁혀지고 있다는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 그 순간이 어찌나 길던지..
결승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저기 눈앞에 보이는데, 아이는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벌어진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아가! 조금만 더 힘내자... "
내 눈에도 핑그르르 눈물이 돌았다.
"이제 추월은 불가능합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차에 들려온 너무도 반가운 소리였다.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서로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땀에 젖은 러닝 속 작디작은 몸으로 고통을 견디고 달린 아이는 일등으로 들어왔고,
우리 학교는 22년 만에 코오롱구간마라톤에서 남녀 동반우승을 했다.
여학생 역시 6구간에서 역전까지 하면서 우승을 했다.
더우나 추우나 방학도 없이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였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흘린 땀방울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설령 고비는 있을지언정 그 항해는 언제나 좋은 곳을 향하리라 믿는다.
오늘도 변함없이 내게 커다란 에너지를 선물해 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