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몇 달 후면 장가를 가는 아들내미가 유치원에 다닐 즈음에 있었던 일이다.
모처럼 놀러 온 친구가 현관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나를 보며 외쳤다.
"어이구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니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온 동네가 울린다. 야!"
나 역시 그 말에 백 프로 공감하는 터라,
두 살 터울 두 아들을 키우느라 그렇게 되었다고 변명도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큰 소리를 지르다 보니 언제부턴가 작은 소리로 말하면 성에 안 찼었나 보다.
내 목청은 날이 갈수록 커졌고,
그 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감정이 격해지거나 흥분을 할 때면 그 증상은 더했다.
말을 소통의 수단으로 쓰기보다는 공격의 수단으로 쓰고 있었다.
일부러 가시 돋친 단어를 골라가며 사용했고,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습관이 되고 나니 오히려 조용히 말을 하면 뭔가 지는 기분이 들고 손해를 보는 느낌도 있었다.
일부러 고치려고 하지 않은 나쁜 습관은 내 몸과 하나가 되어 동행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업무적으로 을이 되어야 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상대인 갑에게 매우 공손했고 예의를 갖추기에도 최선을 다했다.
하나 그것은 매 순간 끊임없는 스트레스만 남겼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작은 문제에도 감정이 격해지기 일쑤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언어를 타인을 향한 공격과 방어의 수단처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통과 공감의 기능보다 그것을 더 중요시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흡사 약한 모습을 들키기 싫어 강한 척을 하는 동물과도 같아 보였다.
사람들은 피리소리에 반응하는 코브라를 보고 코브라가 소리에 반응하는 듯 알고 있지만,
사실은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피리의 진동에 반응하는 것이라 한다.
본능적인 위협 반응을 보여주는 행위인 것이다.
겁을 먹거나 위협을 느낄 때 큰 트럼펫소리를 내는 코끼리나,
몸을 둥글게 모으고 가시를 곤두세우는 고슴도치,
목 옆 후드를 펼쳐 몸을 키우는 코브라처럼..
내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세상의 무엇이었을까..
거친 삶의 한가운데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강한 언어와 큰 목소리를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느새,
살다 보니 살아졌다는 말을 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이것이 책 제목이었던가?
오랜 경험을 통해 가장 위협적이고 강력한 언어가 무엇인지 이제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침묵.
가끔 사람들은 말한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약은 수를 쓰는 것 같지만 요샌 나도 제대로 알지 못할 땐 입을 다물고 능청을 떤다.
중간은 간다는 말을 아주 요긴하게 써먹는 것이다.
침묵에 대한 구절은 많은 곳에 쓰여있다.
성경 잠언에는 침묵을 금이라고 했고, 칼보다 강하다고도 표현하기도 했다.
그중 나에게 아주 큰 감명을 준 대목은 장자에 쓰여있는 침묵에 대한 구절이다.
말과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며 말보다 침묵이 더 깊은 지혜의 표현이라고 했던 것이다.
지혜가 부족한 나로서는 침묵을 통해서라도 지혜를 얻고 싶다는 어리석은 욕심이 생겼다.
나의 부족함이 크다고 느낄수록 목소리로 나를 대변하려 했고,
격한 단어를 선택하며 강함을 나타내려 했던 때를 돌아보면서
슬그머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던 대목이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당장이라도 말수를 줄여가며 침묵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늘려갈 생각이다.
서랍 속에 금이 쌓여간다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침묵을 통해 부자가 되는 꿈을 꾸어보는.....
2025. 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