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먹함.
여전히 아빠에서 멈춰버린 나의 기억들..
나이가 들어서도 제겐 그냥 아빠입니다.
너무도 그리운 나의 아버지.
아빠!
초여름 아침 햇살에 연초록 나뭇잎에 달린 이슬들이 윤슬처럼 빛나고 있어요. 제가 사는 곳은 나무가 아주 많은 동네입니다. 저 아래쪽 마을어귀부터 쭉 늘어서 있는 가로수는 또 그 잎이 얼마나 실하던지 길 양쪽으로 우뚝 선 나무들이 하늘을 다 가리고 있는 모습은 꼭 밀림 속 둥근 터널 같이 울창하답니다. 그래서 초여름부터 몇 달 동안은 한낮에도 라이트를 켜고 운전을 해야 되는 곳이고요.
자연을 좋아하셨던 아빠가 보셨다면 그 울창한 푸르름에 반하여 아마도 "야~ 좋다"라고 말씀하셨을 거예요. 그리고 며칠 후엔 분명히 커다란 종이에 뚝딱하니 수묵화 한 장을 그리셨을 테고요. 한 번 배워본 적 없는데도, 그니까 그런 걸 보고 타고난 재능이라고 하는 게 맞을 텐데. 아빠의 그림 실력은 주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하셨어요. 시대를 잘 타고나셨다면, 아!! 먹고살 걱정 없는 형편이셨다면 분명 멋진 동양화가가 되시고도 남으셨을 우리 아빠.
들으시면 좋아하실 만한 이야기가 있어요.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저희 삼 남매가 가족모임을 했거든요. 언제부턴가 부쩍 제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처럼 별거 아닌 일에도 외롭고 쓸쓸했더랬습니다. 어렸을 적엔 삼 남매가 적다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살다 보니 셋도 적더라고요. 더구나 부모님 두 분이 일찍 돌아가시고 저희만 남은 형편에는 더 그러했고요. 그 셋마저도 젊은 시절엔 각자들 자리 잡느라 바빴고, 아이들 키울 땐 애들 때문에 꼼짝 못 해서 얼굴 보기가 힘들더니, 정작 애들도 성인이 될 즈음엔 저희가 너무 늙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어요.
"정기적으로 한 번씩 모여야지 안 되겠다"하고 말이에요.
나이를 먹으니 가신 부모님이 그립듯이 제 피붙이도 그리워졌습니다. 불쑥 보고 싶을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건 저만의 생각일 뿐 두 동생은 저랑 나이차가 많아서 그런지 그다지 애달픈 것 같지는 않았어요. 아직은 제 식구들하고 사는 게 재미나는 때라 그런 거겠죠. 저들도 십 년 후쯤 되면 변할까요?
아빠!
어젠 홀수해에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차 아침 일찍 금식을 하고서 동네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이것저것 검사를 한 후 마지막에 가정의학과 선생님을 뵈었는데, 가족력에 두 분 다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체크한 부분을 보시더니 저더러 특별히 잘 관리하라고 하시더군요. 다행인지 저는 아직 성인병으로 지적되는 것은 없었지만, 혈압과 당뇨는 부모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경험되지 않은 것 일 뿐이니 백 프로 방심은 말라고도 말씀하셨어요. 문득 성인병을 염려하지도 못할 시간만 허락된 엄마 아버지의 인생이 너무 가여웠어요.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겨우 오십 년을 사시고 가신 우리 엄마... 환갑잔치가 마지막 잔치상이 되신 아빠.. 왜 그리 빨리들 가셨는지요...
보고 싶은 아버지...
제가 몇 살 때였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응암동 마당 있는 집에서의 기억 하나가 사진처럼 선명하게 스치곤 합니다. 저는 아주 작은 아이였고, 저보다 큰 누렁이 한 마리가 마당에서 기다란 꼬리를 흔들며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누렁이가 쥐약을 먹었지요. 쥐를 잡겠다고 구석에 놓은 쥐약을 누렁이가 먹은 거예요. 놀라신 아빠는 강제로 누렁이 입을 벌려 갈아 만든 비눗물을 먹이면서 살려보려 했지만 누렁이는 한참을 고통스러워하다 곧 죽고 말았어요. 그 누렁이를 쓰다듬으며 아빠가 눈물을 훔치시던 모습. 한 번씩 제가 그때의 기억을 말씀드리면 아빠는 정말로 누렁이에게 미안했다고 하셨죠. 지금처럼 반려견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그냥 마당 한구석에서 먹다 남은 밥으로 키운 똥개였지만 정말 아끼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빠!
지금 제 곁에는 열여섯 살 먹은 노견이 잠을 자고 있답니다. 이제는 다리도 아프고 귀도 잘 안 들리는 아픈 아이예요. 아침저녁 심장약 챙기느라 바쁜 제게는 어떻게 해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생명체입니다. 저도 아빠를 닮아서 강아지를 끔찍이도 예뻐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강아지를 마주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쳐다보곤 하구요. 아! 그러고보니 남동생은 고양이를 키우고 여동생도 반려견을 키우는것이 모두 아빠를 닮아 그런것 같네요.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나신 게 어언 3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죄송하게도 세상의 희락에 젖어 즐거울때는 아빠를 잊은 듯하고 살다가 허전하고 쓸쓸할 때만 이렇게 넋두리를 하고 있는건 아닌가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오늘은 그냥 이래저래 아버지가 그리운 그런 날이었나 봐요.
삶의 시간과는 무관하게 여리고 선하셨던 우리 아빠. 세상 누구보다도 진실되고 아름다운 감성을 지켜내셨던 우리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한 하루가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