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때도 지금도 쉽지 않아
아들 둘을 키웠고 곧 두 명의 며느리가 생긴다.
여전히 영글지 못한 시엄니가 괜찮은 시엄니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를....
시집살이를 시키시던 나의 시어머니.
그 어머니를 마음껏 뒷담화 하던 그 시절이 차라리 좋았다.
맵고 고달팠던 내 며느리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얼마나 다짐을 했었나.
형보다 먼저 장가를 간,
둘째 아들의 마음을 홀라당 뺏어간 아이는 아들 직장의 선배였다
그 아이를 소개받던 날.
어떻게 하면 내 첫인상이 좋게 보일까 하며 밤새 뒤척였던 기억이 난다.
너그러우면서도 만만해 보이지 않고, 교양과 품위가 뚝뚝 떨어지는 시엄니가 되고 싶었을 거다.
아들 곁에는 뽀얗고 야리야리한 벚꽃처럼 예쁜 아이가 앉아 있었다.
그 아이도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야 우리 잘 살아보자."
"나는 정말 좋은 시어머니가 되고 싶어."
"에고고 엄니~ 그건 제 바람이기도 해요"
미소 띤 두 얼굴 앞에 고요히 흐르는 파동이 귀를 스쳤다.
그 아이가 내 며느리가 되고 3년.
그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꽤 너그러워졌고, 이해심도 부쩍 커졌으며, 어지간한 일로는 서운해하지도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진화되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며느리와 편안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 나름 애를 썼다.
쉽게 되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기에 더욱 그랬다.
내 마음의 크기를 나는 알고 있다.
아주 작은 종지만 한 마음인 것을.
3년의 시간을 뒤돌아본다.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어도 바로 반응하지 않고
아이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고 했던 나의 애씀을 칭찬하고 싶다.
하루 더 생각하고, 한번 더 생각하면 거의 대부분은 응어리를 남기지 않고 지나갔다.
어쩌면 우리 며느리도 나와 같은 맘으로 도인이 되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거야 말로 완벽한 궁합 아닌가 하여 웃음이 난다.
매 순간 바로 얼굴을 붉혔다면 지금처럼 다정하고 원만한 고부관계가 되지 못했을 거야. 분명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좋은 시엄니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시대이다.
윗 세대의 며느리들에게 끊임없이 요구되었던 것들이
이제 부메랑이 되어 시엄니인 내게 돌아왔다.
내 마음은 두툼한 굳은살이 덮인 단단한 북이 되어 현실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러다가 한 번씩 허공을 향해 둥둥둥 소리도 내보지만,
그 울림은 곧 메아리가 되어 내 굳은살을 두텁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내가 안다.
이해하려고 들면 이해 안 되는 것이 없고, 서운하려고 들면 서운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게 마음이다.
얼마후면
큰 애의 결혼식이다.
또 한 명의 며느리를 맞기 위해
심기일전으로 다시 한번 파이팅을 해보련다.
2025.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