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엄니행전

3. 달콤, 그리고 쌉싸름

by 꽃무릇

'두부는 큰 거 두 개면 되겠지?'

'모자라려나? 해놓으면 얼마 안 되는데...'

진미채에 어묵, 양파, 홍두깨살, 또 뭐였더라

나는 시장바구니 하나 가득 장을 봤다.


아들의 주문은 늘 동일했다.

"엄마~ 두부조림, 어묵볶음, 진미채무침에 장조림이요~~"

"반찬 좀 해다 줄까?" 하고 슬며시 던져본 나의 물음에

아들은 신이 나서 읊어댔다.

'듣는 나는 왜 신이 났을까?'


내일은 아들의 신혼집에 처음으로 가는 날이다.

그나저나 내 집에 애들이 오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이렇게 분주한 거지?

나는 주문받은 찬을 만드느라 밤늦게 까지 지지고 볶고 끓여댔고,

'거봐라~ 당장 엄마 밥이 먹고 싶을 거라 했지?'라는 마음이 들어

마음마저 뿌듯했다.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귀여운 실내화 두 켤레에 눈길이 멈춘다.

'자~!! 여기부터 저희들의 천국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코끝을 스치는 아로마향 때문이었을까?

나는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예쁘게 꾸며놓은 집을 돌아보며

연신 "이쁘다 이뻐"를 외쳐대고 있었다.


애기가 있는 집에 가면 포실포실한 분유냄새가 나고

신혼집에 가면 고소한 깨소금 냄새가 난다고 했던가?

아이들의 집에서도 상큼하고 달콤한 향으로 가득했다.




식탁 가득 이것저것 정성스레 준비한 아들과 며느리.

조막만 한 손으로 참 잘도 했다 싶어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 퇴근길에 "엄마 오늘 반찬은 뭐양~~ "할 정도로 먹는데 진심인 아들인데

'뭘 먹고 사는지' 나는 늘 궁금했었다.

몇 가지는 만들고 몇 가지는 사 왔다고 했는데 음식들은 의외로 참 맛났다.


식사가 끝날즈음 "물은 어딨 니?"라고 내가 말을 하자

아들이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엄마! 물?" 하며

싱크대로 가서는 물병과 컵을 들고 왔다.


'헉! 이 놈 봐라!'


원래 아들은 저런 애가 아니었다.

식탁의자에 곰처럼 뭉개고 앉아 "엄마~~ 물~~" 하던 애가 아니었던가?

결혼이 사람을 저렇게 바꾸어 놓았다고?

아니, 며느리가 곰을 다람쥐로 바꾸어 놓았나?


그 순간이었다.

아들이 싱크대로 가더니 커다란 테디베어가 그려있는 앞치마를 입고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싱크대정리를 시작했다.

앞치마에 그려진 테디베어는 양손에 국자와 포크를 들고 웃고 있었고,

아들은 행주와 수세미를 들고 웃고 있었다.


익숙하지도 짐작하지도 못했던 아들의 모습을 마주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순간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ㅅㅇ아~ 기름기 잘 닦을 수 있지?"

"싱크대 물 때도 잘 닦고~~"

나는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 엄마! 나 설거지 고수야 고수~!"


응 그래 장하다 장해......!!


"어머니~~ ㅅㅇ이 설거지 잘해요~~"


아들보다 두 살 위인 우리 며느리는

야물어 보여 잘할 줄 알았지만 기대이상이었다.

효율성과 실리적인 면을 강하게 주장하는 전형적인 MZ인 아들을

말 잘 듣는 순한 양으로 바꾸어 놓았다.

가만 보니 며느리는 아들보다 고수였던 것이다.

'뭐가 됐던 고맙다 고마워.'

결혼 후 아들은 정말 어른이 된 듯이 보였고,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오래 전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주방에서 음식을 하던 내가,

애들 아빠에게 급히 대파하나 만 사다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누워계시던 어머니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자마자

벌떡 일어나시더니,

밖이 춥다고 걱정하시며 "내가 갔다 온다"라고 하시고는 가셔서 대파를 사오셨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 아들을 그렇게 병아리처럼 품으려 하셨다.

그러므로써 정작 힘든건 난데 말이다.


그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내 아들들이

아버지처럼 그렇게 살까 봐 나는 늘 걱정을 했다.

그래서일까?

아들이 설거지를 한다고 앞치마를 두르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그 걱정을 안 해도 되겠구나' 안도감이 밀려 온 것은

스스로도 용납이 되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잠깐 생각에 잠겨본다.

그 안도감은 내게도 정말 완벽한 달콤함이었을까?

달콤함과 함께 쌉싸르함이 생겨나면 어쩐다지.

내 마음 안 어디서라도 쌉싸름함이 싹을 틔우지 않도록

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고민은 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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