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시작된 작가의 꿈
십여 년 전 어느 날,
심신을 지치게 하는 모든 것으로 삶이 버거운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내게있어 소망은 사치였고 관계는 고통이었다. 혹한의 겨울바람 속에 우두커니 서서 어쩌지 못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때였을거다. 등본을 떼러 방문한 동사무소에서 만난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된 일이다. 동사무소 한 귀퉁이엔 민원인들을 위해 준비된 책장이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곳을 향했고 한 곳에 눈길이 멈추게 되었다. 김남희작가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경험을 쓴 책. 여자 혼자의 몸으로 세상 이곳저곳을 다니며 쓴 기행문형식의 글이었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란 곳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언젠가 친구가 자신이 속한 걷기 동호회를 소개하며 자기가 열심히 걷는 이유는 언젠가 순례길을 걷기 위해서라고 했던 것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책 겉표지 쓰인 산티아고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고 친구에게 들은 말도 있고 해서 호기심에 그 책을 대여하게 된 것이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예상치 못했던 감정들로 꽤 오랫동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삶이 주는 허무와 인생의 무상함으로 그즈음 나는 의도적인 고립을 택하고 있었다. 힘겹다고 하는 그 순례길을 걸으며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본다면...... 걷고 싶은 욕망이 일기시작했다.
그 길 위에서 내 삶의 변곡점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무언가에 홀린듯 산티아고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걷기 연습부터 시작했고 준비를 위해 몇권의 책을 더 읽었다. 이 년 여의 긴 준비를 마치고 도착한 스페인. 대륙의 서쪽, 대서양과 맞닿은 그 순례길의 끝에 다다르면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하나로 걷고 또걸었다. 그렇게10,000km 를 날아간 그곳에서 10킬로의 배낭을 메고1,000km를 걸은 후 돌아온 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방송통신대 국어국문 학과에 입학원서를 내는 일이었다.
한 권의 책이 주는 감동과 그 감동을 따라 무작정 떠난 그 길 위에서 내가 붙잡은 삶에 대한 희망. 나의 삶은 순례길을 걷기 전과 걸은 후로 나누어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내년이면 다녀온 지 10년이 된다. 나를 변하게 한 그 시작을 나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죽을 만큼 힘들어 무너지던 한 사람이 온전한 자신과 만나고 돌아온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고 싶었다. 말은 시간과 함께 그 기억이 쇠퇴하지만, 글은 영원히 남게 됨을 믿는다. 그렇게 오십 중반에 시작한 공부를 마치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만나서 시작된 도전과 그 후 변화한 내 삶. 나는 힘겨운 누군가에게 내 경험과 글이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부족하지만 용기를 내어 블로그를 시작했고 브런치작가에 응모하여 브런치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황금기를 걷고 있다. 소소한 일상을 글로 남기며 나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내가 남긴 글을 읽고 누군가도 나처럼 힘겨운 시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내가 꿈꾸는 작가로의 꿈이라면 너무 거창한 바람일까?
백세시대를 논하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가 무작정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심신의 건강과 주변과의 관계, 경제적인 여건 등이 편안하지 못하면 어쩌면 그것은 힘든 고행이 될 수도 있다. 생사는 하늘이 뜻이라 하지만,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날을 어떻게 채워가야 하는가는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주는 기쁨과 의미를 알게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늙어 노쇠하여도 할 수 있는 최고의 취미 역시 글쓰기 아닐까? 손에 쥘 수 없는 헛된 것들을 내려놓고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는 글의 힘을 믿으며 힘껏 펜을 쥐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