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전은 과감하게 결과는 덤으로
떠돌이처럼 연습실을 옮겨 다니던 때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고정으로 갈 수 있는 지하연습실이 생겼다는 것은
보금자리 전셋집을 얻은 것 마냥 좋은 것이었다. 우리는 그 안정감 덕분에 더 열심히 모였고 부담 없이 연습에 매진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그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듯 우리도 그랬다. 피아노 전공자인 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취미로 시작한 악기였으니 열심을 내는 만큼 조금씩 늘어가는 실력이 신기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밴드연주란 것이 얼추 맞는 듯하면 삐걱거리고 그래서 의욕이 상실될 즈음엔 어찌어찌 또다시 합치가 되는 들쑥날쑥한 실력 때문에 의욕만 가지고 이끌어 가기란 쉽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새로운 자극을 위한 계기로 직장인 밴드대회에 참가해 보자는 의견이 등장했고, 고민 끝에 우린 일단 부딪쳐보자는 방향으로 마음이 합쳐졌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신청서를 접수하고 통과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우리는 어차피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경험을 쌓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무모한 호기도 잠깐이었고, 다시 생각하니 사실 그게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말 문제가 아니란 걸 깨 닫게 된다. 턱없이 모자라는 실력으로 경연의 수준을 떨어트리게 하거나 주최 측을 비롯한 다른 참가자들에게 불쾌함을 끼치게 한다면 어쩐다지! 그런 염려가 타당할 만큼 우리는 완전 초보들이었다.
우리의 경험을 위해서 타인에게 불편함을 줄 순 없었다. 그러던 중 최선의 방법으로 우린 지인이 만들어 놓은 창작곡을 가지고 참가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미 잘 알려진 곡을 할 경우에 확연히 드러나는 부족함에 대한 대비책이었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선곡 후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했고 모이는 횟수도 늘여갔다.
부질없는 인생을 서술하듯이 써 놓은 그 창작곡은 시작부터 평범치 않았다. 도입부부터 랩으로 시작되는 그 노래를 익히기 위해 우선 네 명이서 몇 소절씩 가사를 분담해 외우기부터 시작했다. 랩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고 제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애썼던 거라곤 애 키울 때 쏟아붓던 잔소리가 전부였던 우리들이 가사를 외우고 그 가사를 리듬에 실어 랩을 해보겠다고 덤빈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런 적이 있다. 80년대 초반 LONDON BOYS에 빠져 허우적 대던 시절. 그 시절 청춘을 논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night club dance music 중, 그들의 노래인 Harlem Desire를 따라 부르며 그 건장하고 멋진 가수들의 유연한 몸짓을 넋을 잃고 보곤 했었다. 친구들과 종로의 Mr. Lee라는 나이트클럽을 다녀온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사지가 뻣뻣한 나와는 다르게 아주 유연하고 세련되게 춤을 추던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던 나는, 귀가하자마자 내 방 거울 앞에 서서 팔다리를 휘저으며 친구들의 몸짓을 따라 해 보았다. 하다 보면 되겠지? 누구라고 날 때부터 잘 추었겠냐고? 하지만 잠시 후 내 몸의 구조가 춤과는 친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되었고 헛된 수고 보다 조금 더 빠른 판단으로 춤에 대한 로망은 그대로 끝이 났다. 심장을 쿵쿵 뛰게 하는 Harlem Desire의 비트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율을 느끼게 했지만 리듬 속에서 허우적대는 뇌와는 다르게 몸은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다.
열심히 외운 가사가 리듬과 합쳐져 랩이 되고 그것이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느끼면 느낄수록, 그 옛날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던 음악들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내 하드웨어가 또다시 내 사기를 꺾고 있었다. 랩이란 것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혼자서 웅얼대다 끝난다는 사실, 외우고 또 외워도 정작 내 파트가 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사실, 내 것이 아닌 남의 가사를 부를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어쩌면 내 빛나던 20대에 미국 어느 빈민가의 슬픔을 노래했던 Harlem Desire와의 춤을 포기했던 것처럼, 지금 또다시 흥겨운 랩을 전혀 소화하지 못하고 노래의 가사처럼 인생의 무상함만을 웅얼거리다 말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창작곡을 선택함으로 오히려 그 곡을 익히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새로운 문제였다. 하지만 완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것 같은 희열도 덤으로 따라오고 있으니, 무작정 의기소침할 일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창작곡 한 곡과 기성가수의 곡 하나를 연습하여 경연에 참가를 하게 된다.
찰리채플린처럼 작은 체구에 적당히 배가 나와 귀엽기까지 한 친구의 랩을 시작으로 정신없이 첫 곡을 끝낸 우리들은, 머리가 하얗고 몽롱하기 까지 했던 긴장감이 곧 짜릿한 희열로 변해가는 것을 몸소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무대체질 인가 봐?"
"오~ 이런 기분이라고? "
그렇게 두 번째 곡까지 그동안의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우리는 실수 없이 잘 해냈다. 사막에서 꽃을 피우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을 마무리한 것이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팀들은 모두 프로들이었다. 의상만 봐도 철저한 준비와 많은 경험이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더군다나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월등했다. 생각해 보니 초보팀인 우리의 참여를 허락한 것은 이제 곧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시대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차원일수도 있었다. 우리만의 축제는 그렇게 끝이 나는 듯했는데,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동상 부분에서 우리 밴드의 이름이 호명되었던 것이다. 받으면서도 갸우뚱갸우뚱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https://youtu.be/aveYp9YGWvk?si=3N92IsFsiLXMF6DI
"동상~~
"인생 그건"을 부른 so so밴드~~
"우와~~~"
가장 많이 놀란 건 우리였다.
"아마도 경로우대 차원에서 준 걸거야"
라고 말하며 웃었다. 밴드결성 몇 개월 만의 도전이었고 실력도 미비해서인지 보는 내내 웃음이 나온다. 누구는 무모한 도전이라 했고,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자는 눈빛도 보았었다. 이렇게 우린 도전과제 하나를 완수했고 지금도 쭉 진행 중이다. 먼 훗날 우리가 떠나고 남을 이 흔적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것은 당연한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