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임은 같은 책을 읽고, 만나서, 책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나는 아이들과 긴 시간, 꾸준히 만났다. 직장 일이 바빠 몸이 힘들어도, 날씨가 좋지 않을 때도 책 모임 약속은 지켰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대유행으로 책 모임에 위기가 닥쳤다. 갑작스러운 등교 금지와 온라인 수업 시작으로 부모도 아이도 허둥대는 중이었다. 모두의 건강과 안전이 제일 중요했다. 대면 만남이 불가능해졌고, 도서관 대출이 어려워졌다. 뒤죽박죽 된 일상 속에서 책 읽기는 부담스러웠다. 책 모임을 일단 쉬면서, 코로나 유행이 멈추길 기다렸다. 조금만 지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봄이 다 지나가도록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아이도 집에서, ‘혼자’ 지내는데 익숙해졌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혼자 끼니를 챙겨 먹었다. 친구들과 가끔 나누는 안부 전화가 가족 아닌 사람과 나누는 대화의 전부였다. 어느 날, 아이가 컴퓨터로 온라인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가 무엇이든 ‘혼자’하는데 길들여지고 있는 게 위험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유행으로 아이는 혼자 공부하고, 혼자 놀고, 혼자 책 읽는데 익숙해졌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고,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제 생활을 스스로 챙겨서 하니 자기 주도적인 생활 태도를 길러 오히려 잘된 일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가 타인과의 소통 없이 지내는 건 큰 문제였다. 아이는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 다른 사람과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직접 만나기 어렵다면_화상 책 모임
나는 아이 책 모임을 다시 시작할 방법을 고민했다.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는데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덕분에 스마트기기 활용법을 잘 알고, 문자나 영상으로 만나는데 큰 거부감이 없다. 그렇다면 책 모임도 온라인으로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성인들은 코로나 사태 전부터 화상이나 SNS 채팅을 활용한 독서 모임을 해왔다. 아이들도 기기 사용법이나 플랫폼 특성만 익힌다면 못할 게 없다. 언제 가능할지 모르는 대면 만남을 기다리기보다는 비대면 모임을 빨리 하는 게 낫다. 이런 생각이 드니 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엄마들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온라인 책 모임 시작합니다.” 4개월 만에 올린 글에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는 답이 달렸다. 그렇게 2020년 4월 말에 중학교 2학년 큰 아이 책 모임《다온》, 초등학교 6학년 작은 아이 책 모임《작은도서관》,《소녀들의명작읽기》를 다시 시작했다. (《작은 도서관》은 아이들끼리 매주 발제와 진행을, 《소녀들의명작읽기》는 내가 2주마다 발제와 진행을 했다. )
줌은 학교와 기업에서 많이 사용하는 화상 플랫폼이다. 가입 절차나 사용법이 간단해서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줌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가입 후 회의를 열면 된다.(https://www.zoom.us/) 진행자가 초대 링크를 복사해서 참가자에게 전달하면, 참가자는 링크만 눌러서 화상 회의에 참여 가능하다. 인터넷에 줌 사용법을 알려주는 영상도 많이 올라와 있어 사용법은 금방 익힐 수 있다. 참가자는 줌 회의에 들어와서 자신의 화면과 소리를 켜고, 끄는 방법만 익히면 된다. 진행자는 필요에 따라 화면 공유(발제문을 화면에 띄워 함께 볼 때), 주석 기능(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화면에 기록할 때) 정도만 더 익히면 책 모임이 가능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작은 아이는 직접 줌 회의를 열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책 모임을 진행한다. 어른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줌 사용법을 금방 익히고, 능숙하게 활용한다. 줌 말고도 다양한 화상 회의 프로그램이 있으니 선택해서 사용하면 된다. (네이버웨일, 구글미트 등)
줌으로 만나면 직접 모임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이 절약되고, 집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바로 모임에 접속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학업량은 늘고, 여유 시간은 줄어든다. 모임 장소와 좀 떨어진 곳에 사는 아이들은 오가기가 불편했을 거다. 화상으로 모임 하면 사는 곳에 상관없이 모임 하기 수월하다. 이것 말고도 화상 모임의 좋은 점은 또 있다. 주변 상황에 영향받지 않고, 말하는 사람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발표자만 크게 확대해서 보고, 스피커 볼륨을 높여서 들을 수 있다. (다만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잘 듣고 있는지, 내 목소리가 어느 정도 크기로 전해지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함을 느낀다.) 화상 모임의 장점과 단점을 잘 살펴서 활용한다면 코로나 시대에도 책 모임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아이 책 모임은 일요일 밤 8시에 한다. 평일은 약속 시간 정하기가 어렵고, 가족 일정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 결석이 잦다. 아이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더 그렇다. 일요일 밤은 모든 일정을 정리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라 약속 지키기가 수월하다. 화상 대화는 서로의 표정, 몸짓을 살피기 어렵고, 동시에 여러 명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기에는 불편하다. 동시에 여러 명이 말하면 소리가 섞여 들리고, 인터넷 연결 상태에 따라 대화가 끊어지기도 한다. 1시간 이상 이야기 나누면 눈이 피곤하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실제로 모임 해보니 일요일 밤 8시~ 9시, 약 1시간 정도 책 이야기 나누니 부담 없고 좋았다.
2021년 봄을 앞둔 지금, 코로나 사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화상 책 모임은 7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아이들과 좀 더 이야기를 잘 나누려 애쓰면서 알게 된 점들을 정리했다.
화상 책 모임 하는 법
1. 미리 안내해요.
책 모임 이끔이는 참여자가 모임 날을 기억하고, 준비할 수 있게 안내해야 한다. 먼저, 참여자가 소통하는 공간(카카오톡, 밴드 등)에 공지글을 띄운다. 모임 횟수, 모임 날짜, 읽어올 책 등을 안내한다. 모임 날이 가까워지면 “책 읽었나요? 내일 밤 8시에 책 모임 합니다.” 하는 글을 올린다. 나의 경우 모임 이틀 전쯤에 글을 올리는데, 혹시라도 미처 책을 못 읽은 아이가 있다면 서둘러 챙겨 읽게 하기 위함이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이런 안내글 올리기가 아이들에게 소속감과 책임감을 갖게 해 준다. 발제문을 따로 마련했다면, 모임 하루 전에 발제문도 아이들에게 미리 공유해주면 좋다. 출력용으로 문서 파일을 올리고, 바로 확인할 수 있게 이미지 파일로도 톡방에 올린다.
모임 공지글
2. 화면 공유는 되도록 하지 않아요.
줌에서는 진행자가 화면에 발제문을 띄워서 참석자들과 함께 보며 대화 나눌 수 있다.(화면 공유 기능) 처음에는 이 기능을 활용해서 발제문 공유해놓고 이야기 나눴다. 그런데 화면 공유를 하면 아이들 화면이 작아진다. 화면 가득 발제문이 뜨고, 사람들 얼굴은 작은 화면에 담겨 화면 한쪽으로 밀려난다. 서로 얼굴 보며 대화하는 기분이 안 난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이 미리 발제문을 출력해두게 하고, 화상 모임 때는 화면 공유하지 않는다. 큰 화면으로 서로 얼굴 보면서 대화 나눈다. 한 아이가 자기 생각을 말할 때 다른 아이들이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 좋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곱다.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은 가까이 느껴진다.
3. 모두가 말해요.
앞에서 말했듯이 화상 모임에서는 여럿이 동시에, 자유롭게 대화하는 게 힘들다. 할 말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서 표시를 해야 한다. 진행자가 손을 든 사람을 지목해서, 발언하게 한다. 한 사람이 발언할 때 다른 사람들은 듣기만 해야 한다. “누가 먼저 이야기해볼까요?”하면 아이들이 서로 손을 들고, 진행자가 “OO이 이야기 한 다음, OO이가 이야기할게요.”하고 발언 순서를 정리해주면 된다. 나는 화상으로 책 모임을 할 때 빈 종이에 아이들 이름을 미리 써 둔다. 질문에 자기 생각을 말한 아이는 이름 옆에 표시를 한다. 발언하지 않은 아이를 챙기기 위해서다.마지막에 발언하지 않은 아이에게 "OO의 생각도 궁금해요."하고 말을 건넨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정리한 생각을 말한다. 화상 회의에서 듣는 역할만 하면 굉장히 지루하고 피곤하다. 모든 아이가 짧게라도 발언하게 해서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당장 말하기를 어려워한다면 “괜찮아요. 이따 생각이 정리되면 생각 나눠주세요.”하고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4. 질문 수는 적게, 이야기는 깊게 나눠요.
되도록 모든 아이가 말하게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면 모임일 때 보다 질문 수를 줄이면 좋다. 인원이 많다면 질문 수는 더 줄어든다. 중요한 질문 몇 가지로, 모든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게 하자.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모임 시간은 30분, 질문은 5개 정도가 적당하다. 중학년은 40분에 질문 6~7개, 고학년 이상은 1시간에 질문 9~10개가 가능하다. 읽은 책이나 질문이 어렵다면 질문 수를 더 줄인다. 만약 아이들이 화상 회의 경험이 많다면 모임 시간이나 질문 수를 늘릴 수 있다. 정해진 형식을 고수하지 말고, 상황에 알맞게 모임 시간이나 질문 수를 조절하자. 아이들이 힘들다, 지루하다고 느끼면 책 모임을 지속하기 어렵다. 화상 모임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질문 수를 적게 하고, 아이들 모두가 이야기 나누게 진행하자.
직접 못 만나니 더욱 소중한, 책. 모. 임.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화상 책 모임을 시작했다. 직접 만나지 못하니 이렇게라도 만나자는 마음이었다. 처음 줌에서 아이들을 만난 날, 나는 무척 당황했다. 네모난 화면 안에 들어앉은 아이들은 경직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애써 명랑한 목소리를 내어 질문을 던졌지만 아이들은 묵묵부답이었다. 한 아이는 인터넷이 불안정하다며 수시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내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이걸 계속해야 하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계속해보아야 했다.
한 달, 약 4회 정도 하니 화상 책 모임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나도 아이들도 이제는 편안한 모습으로 책 모임을 즐긴다. 돌발 상황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는다. 발언하겠다고 손 드는 아이가 없으면 “자, 그럼 모두 이야기해볼게요. 발언 순서는…….”하고 시간을 준다. 아이들도 당연히 모두 이야기한다는 걸 알아서 재빨리 머릿속으로 자기가 할 말을 정리한다. 말하던 아이가 인터넷이 불안정해서 갑자기 화면에서 사라져도 “OO 이는 다시 들어오면 이야기 듣기로 해요. 다음 친구 이야기 먼저 들을게요.” 한다. 때로는 질문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각자 인상 깊은 부분을 낭독해주세요.”하고 가볍게 모임 하기도 한다. 화상 모임이 대면 모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그만큼 화상 책 모임에 익숙해졌다.
아이들에게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책 모임이 필요하다.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질병으로 인해 인류 전체가 신음하는 이때, 자신의 마음을 단단히 다져줄 책을 읽어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과 웃음이 담긴 이야기,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책 읽기에 집중하면 과도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책 모임은 아이들에게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경험을 하게 해 준다. 아이는 책 모임에서 같은 책을 읽은 친구와 이야기 나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말하면서 시원해한다. 자기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친구에게 감동받는다. 아이는 그렇게 타인과 연결된 것에 만족스러워한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연결’의 기쁨이 이리 큰지 몰랐을 거다. 책과 사람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아이 책 모임은 지금 이 순간, 나와 아이에게 전보다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나와 아이는 화상 책 모임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하게 될까? 어서 빨리 일상을 회복하고, “아, 그때 화상 책 모임도 재미있었지.”하면서 옛 이야기하듯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