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도가 높은 엄마였다. ‘어른이 없는 사이’를 큰 아이에게 내준 적이 없다. 첫 아이라 더 그랬다. 집 밖 험한 세상에 아이를 내놓기가 두려워 품에 꼭 품고 다녔다. 아이가 놀이터에 갈 때는 따라나서서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을 구분했다. 행여나 아이가 혼자 길 나섰다가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가까운 곳도 따라갔다. 마트에서 간식거리를 고를 때는 식품영양정보를 꼼꼼히 따지고, 아이를 향해 “이건 안 돼.”를 줄기차게 외쳤다. 아이가 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 모두 내가 결정했다. 제 스스로 무엇을 선택해본 적 없는 아이는 늘 “엄마가 골라주세요.”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도통 모르는 아이. “나 이거 하고 싶어요.”를 말하기 위해 여러 번 머뭇거리는 아이. 그게 우리 아이였다.
그러다 4학년 학기말에 아이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아이는 꽤 긴 시간 동안 친구들의 무례한 말과 행동을 받아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든 게 내 잘못된 양육 태도 때문이었다. 집에서도 자기감정과 생각을 꺼내놓지 못하는데, 학교에서 잘할 리가 없지 않나. 혹시라도 아이가 내게 힘든 내색을 했더라도 나는 “남에게 피해 주면 안 된다.”, “네가 참아야 한다.” 라며 아이 말을 끊었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거다. 그렇게 엄마 품에 갇혀 지내느라 아이 마음이 자랄 틈이 없다는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뒤늦은 후회가 몰려와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엄마 없이 해볼래요. 이제 엄마 없어도 돼요.”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까 고민하며, 급한 대로 아이 책 모임부터 꾸렸다. 마음 따뜻한 친구들에게 내 아이를 맡기고 싶었다. 부랴부랴 책 모임은 만들었는데, 나는 여전히 불안한 엄마였다. 아이들끼리 모임 하게 둘 수 없어서 내가 진행과 발제를 도왔다. 말이 돕는 것이지 아이들 하는 것을 속속들이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네 번째 모임 만에 아이가 “엄마 없이 해볼래요. 이제 엄마 없어도 돼요.” 했다. 잔뜩 힘이 들어간 그 목소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아이 마음 어디에 그런 당당함이 깃들어 있던 걸까. 기분 탓인지 아이의 눈빛마저 전과 달라 보였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에게서 독립하는 첫 발을 내디뎠다.
어린이에게 좋은 세계는 어른이 얼마쯤 눈길과 손길을 거두어도 편안하게 놀 수 있고 이것저것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세계다. 그런 세계에서 어린이는 ‘우리끼리 해봤는데 재미있는걸.’‘조금만 더 하면 어른들이 만든 것보다 더 멋지게 되겠다.’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기운을 모은다.
『거짓말하는 어른』 (김지은/2016/문학동네)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은 아동문학이 아이들을 위한, 어른 없는 좋은 세계가 되어준다 했다. 《스페이스》에는 그 좋은 세계로 함께 떠나 줄 친구들이 있었다. 엄마인 나는 책 속 세상 그리고 함께 하는 친구들을 믿고, 조금씩 아이를 옭아매던 눈길과 손길을 거두었다. 책 모임이 아니었다면 내가 아이에게 빈틈을 내어주기까지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그 사이 아이는 더 작아지고, 자기를 잃어버렸을지 모른다. 책 모임 덕분에 우리 아이는 “엄마 없어도 돼요.”라며 제 목소리를 내었다. 자기 영역 밖으로 엄마를 밀어냈다. 그 밀어냄이 나는 싫지 않았다. ‘아, 이제 됐다.’ 싶어 안도했다.
어른 없는 곳에서 아이가 자란다.
그때부터 책 모임의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맡겼다. 책 선정, 발제와 진행 등 모든 것을 아이들이 정했다. 아이들은 돌아가며 각자 발제하고 싶은 책을 골랐고, 함께 나눌 질문을 뽑아 발제문을 만들었다. 이제 막 5학년이 된 아이들은 컴퓨터 사용 경험이 적었다. 우리 아이도 극성 엄마 덕분에 인터넷, TV 시청을 거의 하지 못했다. 처음 발제문을 컴퓨터로 작성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이는 한글 프로그램 사용에도 서툴렀고, 원하는 글자를 키보드에서 찾아 입력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어른인 내가 하면 5분이면 끝날 일을 아이는 30분 넘게 걸려 겨우 마쳤다. 아이를 돕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자니 엄마 마음은 답답하고 힘들었다. 머릿속에 참을 인(忍) 자를 수십 번 새기며 기다렸다.
그렇게 책 모임 《스페이스》는 온전히 아이들만의 모임으로 자리 잡았다. 두 달 정도 우리 집에서 모이고, 이후에는 집 앞 작은 찻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4명씩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2개밖에 없는, 아주 작은 찻집이다. 손님이 없는 시간을 골라 1시간 정도 모임 했다. 아이들만 가서, 자유롭게 떠들었다. 찻집 주인 입장에서는 영업에 방해가 된다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다행히 마음씨 좋은 분이어서 언제나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나는 종종 찻집에 들러 주인아주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때마다 아주머니는 “아휴, 애들이 책 얘기를 아주 재미나게 해요. 딴 얘기로 갔다가도 금방 책 얘기로 와요.” 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해줬다. 아이들이 어떻게 모임 하는지 궁금해서, 슬쩍 옆에 가서 앉아있어 보려고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 아이가 ‘엄마, 안 가세요?’하는 눈빛을 보내서 잠시도 머무르지 못하고 일어섰다.
나는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모임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아이가 슬쩍 꺼내 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아이들은 어른 없는 공간에서 훨씬 자유롭게, 풍성하게 이야기 나눴다. 어른이 정해준, 어른이 바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책모임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을까 궁리했다. 별명 짓기, 책 내용으로 퀴즈 만들기, 그림책 한 권씩 골라서 읽어주기, 마니또 정해서 챙겨주기, 생일 챙겨주기 등. 책 이야기에 소소한 이벤트를 섞어 즐겼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잘하면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책 모임을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열두 살 소녀들의 예민한 감성과 풍부한 수다가 만나 《스페이스》만의 색깔을 만들었다.
아이들끼리 2년 동안, 책 모임 하며 자라다
2016년 겨울부터 2019년 봄까지, 아이들은 그렇게 저희들끼리 100회 이상 책모임을 했다. 사정이 있어 한 주 쉬고 만난 적도 있고, 방학에는 가족여행 일정으로 빠지는 아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거의 매주 금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모였다. 아이들은 책 모임에서 맡기로 한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발제하고, 진행했다. 발제를 맡은 아이는 책모임 하루 전까지 밴드에 발제문을 올렸다.(물론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늦게라도 꼭 올린다.) 발제자는 발제문을 아이들 수만큼 종이에 뽑아서 모임에 나왔다. 아이들은 약속한 시간에 모여 1시간~1시간 30분 정도 모임 했다. 아이들이 할 일을 잘하는지, 모임 약속을 잘 지키는지 검사하는 어른은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긴 시간 동안 읽고 생각 나누는 일을 잘해줬다.
물론 엄마들이 손 놓고 지켜만 본 것은 아니다. 한 발짝 뒤에서 아이들 모임이 잘 되도록 도왔다. 안전한 모임 장소를 마련해주고, 종종 맛난 간식을 챙겨주었다. 아이들 사이에 문제는 없는지 살피고, 특별히 아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을 넌지시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되도록 아이들 모임 운영에는 참견하지 않았다. 《스페이스》는 아이들끼리의 비밀스러운 모임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가까이서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는 순간, 이 모임이 한 번에 깨져버릴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이것저것 가르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이제 엄마 없어도 돼요”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존중하려 부단히 애썼다.
우리 아이가 변하다
약 2년 동안, 우리 아이가 책 모임 《스페이스》에서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함께 읽은 책 목록과 아이가 모임 후 쓴 글을 통해 내 아이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책 모임 하며 아이가 고르는 책이 달라지고, 아이가 쓴 글이 달라졌다. 아이는 엄마가 권하는 책 목록에서 벗어나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선택했다. 왕따, 친구 관계에서부터 동물 행복권이나 소외받는 아이들에 대한 책까지 제 마음을 담은 책을 골랐다. ‘나는 잘 모르겠다.’며 얼버무리던 아이가 ‘나는 ~에 대해 찬성한다.’, ‘나는 ~가 싫다.’로 자신의 생각을 뚜렷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아이의 표정과 말투에서 느껴졌다. 아이는 한결 밝아진 표정과 유머러스한 말로 나를 자주 웃게 했다. 책 모임 《스페이스》가 나와 아이에게 뜻밖의 해방구가 되어 준 것이다.
큰 아이는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훌쩍 자라 엄마보다 키가 커졌다. 그리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웃으며 이야기할 만큼 성숙해졌다. 아이는 유쾌하고 명랑한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요즘은 그림 그리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엄마의 통제도 없고, 자신을 함부로 하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다. 아이가 “이제 엄마 없어도 돼요.” 하지 않아도 나는 알아서 저만치 물러나야 한다. 내 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아이가 자랐다. 몸도 마음도 너무 커버렸다. 나는 그게 그렇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