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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Sep 20. 2020

04. 초등1학년-아이 책 모임의 시작

책 읽는 도토리

초등 책 모임, 무모한 도전


  막상 아이 책 모임을 하려고 보니 참고할 자료가 없었다. 사실 ‘책모임은 ○○이다.’는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먼저 해본 사람이 있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일러주면 좋으련만... 아이를 독서논술학원 보내는 사람은 많아도 책 모임을 꾸려준다는 사람은 없었다. 독서교육, 독서, 책 읽기, 책 모임, 북클럽 등 관련 낱말로 검색을 해봐도 쓸 만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독서 교육은 아이 ‘혼자’, ‘많이’ 읽게 하는 거였다. ‘함께 읽기’는 학교에서 공부 시간에 교과서를 함께 읽는 것 정도에 머물렀다. 아이를 위해 거실을 서재처럼 만드는 방법, 나이에 맞게 꼭 읽혀야 한다는 전집 목록은 넘쳐났지만 아이에게 '함께 읽기'의 기회를 어떻게 마련할까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그런데 이때 이미 '함께 읽기'의 가치를 알고, 아이 책모임을 오래 운영한 분이 있다. 바로 백화현 선생님이다.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책을 멀리하고, 성적을 비관하며 힘들어했다. 엄마는 '큰아이를 드넓은 책의 세계로 이끌고 싶고 책의 힘을 얻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책 읽을 친구들을 모아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가정독서모임을 7년간 운영했고, 아이들은 '놀랄 만큼 자아가 튼튼해지고 친구들에게 너그러워졌으며 정신이 확장' 됐고 한다. 그 이야기를 《책으로 크는 아이들》(2010.우리교육)에 담았다.


   《도란도란 책모임》(2013.학교도서관저널)에서는 백화현 선생님이 학교에서 다양한 책모임을 운영한 사례를 살필 수 있다. 선생님은 '책과 친구가 함께 하는 도란도란 책모임'을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하나의 제안'이라고 한다. 선생님은 가정독서모임에서 얻은 통찰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학교에서 여러 책 모임을 운영했고, 그것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고 나누며 함께 성장했다. 《책으로 크는 아이들》과 《도란도란 책모임》, 이 두 권의 책 덕분에 내가 하려는 아이 책 모임이 의미 있고, 중요한 활동이 되리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반갑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함께 읽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어른들의 독서 모임이 많이 생겼고, ‘함께 읽기’의 가치와 즐거움을 알리는 책이 많이 출판됐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 책 모임, 특히 학교 밖에서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초등 아이 책 모임에 대한 논의는 찾기 어렵다. 혹시  여기저기서 책 모임을 하고 있더라도 자료를 서로 공유하고, 쉽게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앞서 말한 백화현 선생님의 사례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결국 초등학생을 모아 책 모임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까? 정말 해야 하는 걸까? 에 대한 답은 오롯이 나 혼자,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 책 모임에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무엇이 나를 그리 대담하게 만들었을까. 책 모임 자료를 찾다가 포기했고, 누군가의 조언을 기대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애쓰다가 지쳐갈 때쯤,  그냥 ‘아이 책 모임도 어른 책 모임처럼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해나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아이 책 모임을 왜 해야 하는지 확신도 없으면서. 일단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참 무모했다. 아이가 어릴 때 챙기고 신경 써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책 모임에 빠져 다른 것들을 죄다 놓칠 뻔했다. 한편으론 그래서 다행이다 싶다. 이것저것 따지느라 시작도 못했다면 어쩔 뻔했나. 이렇게 좋은 책 모임을! 겁 없이 시작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 책 모임을 시작하다


  책 모임의 시작은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였다. 당시 나는 같은 반 친구의 엄마 몇 명과 정기적으로 책 읽는 모임을 하고 있었다. 그 모임에서 아이 책 모임 이야기를 나누고서 바로 모임을 꾸렸다. '이렇게 좋은 책 모임을 우리 아이들도 하게 해 주면 어때요?' 하는 생각을 공유하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일주일에 한 번,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네 집에서 모여 책 읽고 노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모이는 사람은 아이 4명과 엄마 4명, 때로는 동생들까지 6명이 되기도 했다. 엄마들이 돌아가며 그림책을 읽어주고, 재미난 독후 활동 몇 가지를 진행했다. 책 모임 날은 친구랑 책 읽는 날이고 친구랑 노는 날이라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처음 책 모임을 시작할 때는  '즐겁게 읽기'가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아이들이 좋아할 그림책을 골랐고, 아이들이 좋아할 간식을 준비했다. 엄마들이 뭘 거창하게, 멋지게 준비한 건 아니었다. 그림책을 읽어주다 어느 장면에서 어떤 질문을 할까만 정했다. 집에서 우리 아이 책 읽어주듯 편안하게 읽어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한 가지씩 했다. 클레이로 주인공 만들기, 책에 나오는 놀이 해보기, 노래 부르기, 역할 놀이 하기 등. 아이와 집에서 했던 활동을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게 준비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엄마가 아직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이고, 아이의 독서 취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아이들도 책 읽기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놀이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책 모임을 꾸려 책을 함께 읽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물론 읽을 책과 활동을 고르고, 아이들의 일정을 조율하고 챙기는 일은 엄마가 신경써야 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둘째 아이는 "엄마, 책 모임을 이렇게 오래 하게 될지 몰랐어요." 한다. 책 모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친구하고 노는 게 좋았다고 한다.  아이는 그렇게 시작한 책 모임을 6년째 하고 있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계속할 거라고 한다.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책 모임을 시작하길 권한다. 어린아이일수록 책과 친구를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아이도 중요하게 여긴다. 책 모임 날짜를 달력에 표시하고, 책 모임할 책을 고르고, 정성껏 간식을 챙기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는 '책 읽는 일', '타인과 생각 나누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를 배운다. 자연스레 책 읽는 아이로 자랄 준비를 한다.

     



 가보지 못한 길, 그러나 계속 가야 하는 길


   올해부터 둘째 아이는 친구들끼리 하는 책 모임 외에 내가 이끌어 가는 책 모임을 하나 더 한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책을 정하다 보면 지적 자극을 주고 생각을 확장시켜 주는 책은 읽기 어렵다. 부모 입장에서 ‘아, 이 책은 지금 읽으면 딱 좋은데!’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그래서 책 모임 하나를 더 만들었다. 아이는 같은 친구들과 두 개의 책 모임을 한다. 한 번은 친구들과 자유롭게 읽고, 한 번은 엄마랑 조금 더 깊이 읽는다. 아이들은 두 개의 책 모임을 능숙하게 오가며 읽고 이야기 나누는 삶을 산다.


   아이 책 모임은 내게 가보지 못한 길, 미지의 영역이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몰라서 좌충우돌했다. 하지만 일단 책 모임을 시작하니 그만둘 수 없었다. 아이가 책을 읽었고,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 귀하고 소중했다. 아이는 책 모임에서 우정, 사랑, 공동체 등 가치로운 생각들을 말했다. "엄마, OO는 참 생각이 깊어요." 하며 친구들의 좋은 생각을 자기 안에 담았다. "엄마, 이 책은 읽기 어려웠지만 우리가 꼭 읽어야 하는 책 같아요."라며 깊이 있는 책 읽기로 스스로 나아갔다.


  아이는 책을 스스로 찾아 읽고, 책 모임에서 자기 생각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며, 친구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내가 책 모임에서 성장했듯이 우리 아이도 성장하고 있었다. 책 모임은 나와 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책 모임을 꾸준히 하면, 책 읽기가 먹고 씻는 일처럼 당연한 일상이 된다.
아이 삶 속에 책이, 함께 읽는 사람이 깊숙이 들어온다.
책 읽기가 일상이 되는 마법, 아이 책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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