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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Sep 18. 2020

03. 책 모임이란?

-  책과 사람 속에서 아이 키우기

책 모임이란?

 책 모임은 '같은 책을 읽고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모임'이다.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독서 공동체이다. 김은하는 『처음 시작하는 독서동아리』(2016.학교도서관저널)에서 ‘여럿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모임’을 ‘독서동아리’로 정의한다. 최근 독서운동가들은 ‘비경쟁 독서토론’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기존의 토론은 찬반으로 나누어 정해진 형식 안에서 승패를 나누는 방식이지만, 비경쟁 독서토론에서는 서로 경쟁하지 않고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주고받는다. 정답이 없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의견을 풍성하게 모은다.


  책 모임은 모임 형태는 독서동아리, 이야기 나누는 방법은 비경쟁 독서토론에 가깝다. 두 가지를 함께 좀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책 모임이다. 모임을 만드는 것도, 모임을 해나가는 것도 어떤 정해진 형식이 없다. 내 마음대로 해나가면 된다. 다만, 읽어야 하는 ‘책’과 이야기 나눌 ‘사람’은 꼭 있어야 한다. 어떤 책을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책 모임의 성격이 달라진다. 내가 처음 참여한 책 모임에는 ‘인문학 책’과 ‘엄마들’이 있었다. 책 모임 이름은 <밑줄 긋는 엄마들>이다.


읽을 책과 이야기 나눌 사람


    책 모임의 시작은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함께 책 읽으실래요?’라는 짧은 글이다. 그런 글은 아이, 시댁, 남편 이야기로 가득한 게시판에 어울리지 않았다. 아이 돌보고, 집안일 챙기는 것도 벅찬데 책을 읽다니! 그런데 예상외로 많은 엄마들이 댓글을 달았다. '제발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 '나의 정체성을 되찾고 싶다', '너무 우울해서 읽어야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모임에 나온 사람은 6명이었고, 모임 이름은 <밑줄 긋는 엄마들>로 정했다. 임신해서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돌 지난 아이를 한쪽 팔로 보듬으며, 친정에 맡긴 아이 걱정을 하며 그렇게 모임을 시작했다.


  한 사람이 집을 내어주고, 회비를 걷어 간식을 준비했다. 엄마들끼리 모이면 자연스레 먼저 나오는 출산과 육아 이야기는 얼마 나누지도 못하고 책 읽기에 뛰어들었다. 책 읽다 어려운 문장을 만나면 함께 낑낑대며 이해하려 애썼다. 관련된 다른 책을 찾아 읽고, 우리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묻고 답하기를 수없이 했다. 무슨 학위를 딸 것도 아닌데 열과 성을 다했다. 작품 속 인물의 마음을 살피다 내 마음을 들키고는 와락 눈물을 쏟기도 했다. 한 사람이 훌쩍거리면 곧 모두 울어야 했다.  ‘당신 마음 이해해요. 나도 그래요.’하는 공감과 위로로 서로를 보듬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닌데, 그토록 치열하게 책을 읽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1년 동안 16권의 책을 읽었는데, 니체 작품을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시간 순으로 읽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돌아가며 읽은 내용을 요약하고, 질문을 만들었다. 암호 같은 니체의 문장을 읽고 또 읽고, 거침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엄마, 아내이기 전의 자신을 다시 만났다. 나만의 빛깔로, 나답게 살 용기도 얻었다. 니체의 문장에 기대어 조금씩 단단해졌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울고 떼쓰는 아이를 보듬고 읽은 책이 니체라니!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어떤 책을, 누구와 함께 읽느냐에 따라 다양한 책 모임을 만들 수 있다. 그동안 내가 해온 모임에는 세계문학 읽는 ‘해윰’, 인문학 읽는 ‘책다방’, 토지 읽기 모임, 역사 공부 모임 등이 있다. 함께 읽으며 성장하는 내 모습이 좋아서 기회만 되면 모임을 만들었다. 어떤 책을 함께 읽을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만 보면 가슴이 뛴다. 책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낼 감동적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참가 버튼을 꾹 누른다. 출퇴근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아껴 읽고 또 읽는다. 못 말리는 책 모임광이 됐다.


우리 아이와 함께 책 읽을 친구, 한 명만 있으면 된다

    

   아이 책 모임도 어른 책 모임과 성격과 효과는 비슷하다. 내가 책 모임을 통해 느끼고 경험한 것을 고스란히 우리 아이도 얻게 된다. 하지만 아이 책 모임을 하려면 시작부터 끝까지 어른의 섬세한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가 기꺼이 책 모임을 하도록 돕는 일부터 책 모임 후 나눈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할 것이 제법 많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일이 모두 그렇듯 아이가 성장하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난다. 책 모임도 그렇다. 책 모임 횟수가 늘고, 함께 읽는 경험이 쌓일수록 아이는 읽고 나누는데 익숙해진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조금만 도와주면 아이들끼리도 책 모임을 잘한다.


    아이 책 모임을 하나 꾸리는 데는 부모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하지만 아이 책 모임에 들인 시간과 노력은 크나큰 기쁨으로 돌아온다. 아이 독서 교육에 대한 부모(혹은 교사)의 오랜 고민들을 책 모임이 한 번에 해결해준다. 단언컨대  부모가(혹은 교사가) 책 모임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 만큼 우리 아이는 책 읽는 아이, 책 좋아하는 아이가 된다. 부모가 책 모임 경험이 있다면 아이 책 모임을 좀 더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책 모임 경험이 없어도 괜찮다. 일단 시작하고 하나씩 만들어가면 된다. 책과 함께 읽을 친구 한 명만 있으면 된다. 우리 아이에게 근사한 책 모임을 선물해줄 수 있다.


함께 책 읽을래요?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 책 모임을 권하면 "좋은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단 함께 책 읽을 친구부터 구해! 그리고 일단 시작해!"라고 말한다. 딱 한 명이면 된다. 우리 아이와 같은 책을 읽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줄 친구!  아이가 자주 어울려 노는 친구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 주민들끼리 소통하는 곳에 글을 올리거나 지인의 자녀 중 비슷한 또래를 찾아볼 수 있다. 이웃집에 또래가 있다면 초대해도 된다. 용기 내어서 "함께 책 읽을래요? 맛있는 간식은 우리가 준비할 게요. 몸만 오세요."하고 먼저 말을 건네보자.


     함께 책 읽을 친구를 구했다면 책 모임은 일단 성공이다. 이제 '언제, 무엇을 어떻게' 읽을지를 약속하고, 그 약속을 잘 지켜가면 된다. 물론 이 약속을 잘 지키면서 책 모임을 계속해나가는 게 쉽지는 않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책 모임은 뒤로 밀리기 일쑤다. '책 모임 우선'이라고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한 명, 두 명 책 모임에 참여하는 친구가 늘고, 함께 읽은 책이 쌓인다. 책과 친구와 함께한 따뜻한 추억이 아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다. 우리 아이가 책 읽는 아이, 책 좋아하는 아이로 자란다. 책 모임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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