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먹는일기장(송미경.문학동네)
☀ 일기 먹는 일기장(송미경.문학동네)
지민이는 아픈 아빠와 시장에서 튀김을 튀겨 파는 엄마랑 산다. 지민이는 일기를 열심히 쓰는데, 일기장에 쓴 일기가 자꾸 사라진다. 지민이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부분만 사라진다. 그러던 어느 날 지민이는 친구 동진이와 ‘지구 반대편 음악 잔치’에 초대받는다. 엉터리 연주를 해야만 상을 받는 이상한 음악 잔치다. 지민이도 동진이도 제멋대로, 제 마음 가는 대로 연주하는데 아름다운 곡이 완성된다.
송미경 작가의 이야기는 늘 읽고 나서 생각을 오래 해야 한다. 아이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어른(엄마,선생님)의 반대쪽에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돕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샘)이 있다. 적은 평수의 집이 모여 있는 아파트 1동(지민이 집)이 있는가 하면 넓은 평수에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7동(동진이 집)이 있다. 지민이가 제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기장이 선생님이 검사할 때는 텅 비어 있다. 빈부격차, 삐뚤어진 교육, 병들어가는 아이의 마음 등 책에 담긴 이야기가 워낙 많다. 어떤 것을 주의 깊게 보고 읽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로 읽힌다.
나는 『일기 먹는 일기장』이란 책 제목에 주목했다. 선생님이 보는 일기장에는 왜 지민이의 속마음이 담기지 못했을까. 지민이의 고민과 소망이 담긴 부분은 왜 저절로 없어지는 걸까. 책 속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의 속마음에 관심이 없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고 혼내고, 벌을 주기만 한다. 지민이의 일기를 볼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요즘은 선생님이 이렇게 혼내고 벌줄 수 없고, 일기 쓰기 숙제도 내줄 수 없다. 몇 년 만에 세상이 변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선생님이, 어른이 많아졌을까? 는 잘 모르겠다.
지민이와 동진이가 자기만의 색깔로 실컷 연주하는 일은 ‘지구 반대편’에서나 가능하다. 어려운 형편에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 지민이도, 부모의 욕망 탓에 원하지 않는 학원을 전전하는 동진이도 상상의 나라에 이르러서야 행복해졌다. ‘지구 반대편 음악 잔치’에서 지민이와 동진이가 완성한 피아노곡은 완벽한 ‘불협화음’이었다. 현실의 학교에서, 가정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음악이다. 아이의 마음결을 살피고, 아이들이 저마다의 음색으로 실컷 연주하도록 돕는 어른은 이렇게 상상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걸까. 씁쓸하다.
어른 눈으로 읽으면 『일기 먹는 일기장』은 무겁고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아이 눈으로 읽으면, 그저 제멋대로 읽으면 통쾌한 판타지일 수 있겠다. 꼭 거창한 주제를 발견하고, 자아성찰을 하며 읽어야 한다는 것도 답답한 어른의 생각일 거다. 특히 이 작품은 아이들에게 툭 던져주고, 제멋대로 읽게 두고 싶다. 아이들의 통통 튀는 해석이 기대된다. 여러 결로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 그렇다. 책 모임에서 읽고 싶다. 초등 4학년이 읽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