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타일대로 가야만 하는 이유
어느덧 부산에 내려가 일을 시작한 지 2개월이 되었다.
지난번 (진주) 프로젝트의 뒷마무리가 깔끔하게 끝나지 못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로 피로한 상태로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순하고 좋은 줄만 알았던 사람들이, 무능함과 집요함으로 태도를 돌변할 땐 정말 당혹스럽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내가 맡았던 부분에서 잡음이 발생하였기에 내 책임 또한 부인할 수 없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만, 마음은 새로울 수가 없었다.
무능한 것에 당한 수모에 내 자존심도 상처를 입었기에 극도로 예민해 있었고, 이 난국을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 되짚어보고 반성해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스타일대로 고집을 부려야겠다”였다.
2년째 같이 손발을 맞추고 있는 프로젝트 팀원들이 이제 가족처럼 친해지다 보니 좋은 점이 많이 생겼지만,
반대로 ‘공사가 구별되지 않는’ 단점도 생겼다.
사무실 밖에서 웃고 떠드는 표정이 사무실 안에서 진지함과 뒤섞여 일을 그르치고 있었다.
더.. 까칠해져야겠구나.
더.. 신중해져야겠구나.
더.. 지랄 맞아져야겠구나.
우선, 불필요한 시간을 줄였다.
아침에 오자마자 커피 한잔 들고 아래층에 내려가 웃고 떠드는 시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일을 시작해야 하는 진지함이 또다시 웃고 떠듬으로 인해 나태해지고 마음자세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말을 줄였다. 농담 섞인 투로 말을 하니,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논리 정연하게 무게를 실어서 정확한 내 의견을 준비했고, 말보다는 근거 자료와 문서를 만들어서 함께 제시했다.
지난 프로젝트의 잡음이 내가 잘못해서 발생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프로젝트가 어느 때보다 더 깔끔하게 끝나야 한다.
양적인 면, 질적인 면 모두에서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내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부산한 행동보다는 과묵한 움직임으로 한 단계 한 단계를 준비해 나갔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내 각 팀이 서로 바통을 주고받는 형태로 진행된다.
내가 바통을 잡는 시기에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전체적인 프로젝트 일정이 지연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앞에서 달려오는 앞선 주자의 속도가 늦춰지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하고 있다가
바통이 내 손에 주어지면, 착착.. 내 맡은 임무를 수행해 내야 한다.
그 바통을 들고 있는 순간(우리는 마우스를 쥐고 있는 순간이라고도 표현한다)에는 완전히 각자 고유의 업무들이기 때문에,
간섭할 수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수도 없다.
다섯 번 읽었던 원문 문서를 열 번 읽었다.
이전에 했던 문서들을 여러 번 다시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과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의 라운드에, 나에게는 두 번 바통이 넘어온다.
그 첫 번째 시기.
‘시작의 의미’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스타일이라서 더 긴장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잘 돌아간다, 그리고 잘 끝났다. 무려 지난번보다 작업시간이 1/3로 줄었다.
그만큼 사전작업이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시기.
지난번 프로젝트에서는 약 3시간이 걸렸던 작업이다.
무척 빠르게 Task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이 진행속도라면 30분 만에 끝날 꺼 같았다. 근데, 마지막 Task에서 빨간불을 켜고 정지했다.
무언가 안 맞는 것이다. 에러 메시지는 매우 불친절하다.
일단 그날의 작업은 거기서 멈췄다.
WBS상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약 5일이었다. 하마터면 하루 만에 끝낼 뻔했지 뭐야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퇴근했다.
(월요일이었기에) 새벽부터 시작한 긴 하루였지만, Gym에 가서 숨을 할딱이며 땀을 쏟아내며 뛰었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서.. 푹 자고 일어나 내일 또 깔끔하게 남은 Task를 진행하기 위해서.
근데, 그렇게 운동을 하고 숙소에 돌아가도 잠이 오지 않는다.
전형적인 트리플 A형의 행태다, 몸은 쉬고 있다고 해도 머릿속은 아직도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12시가 넘어도, 1시가 넘고 2시가 다 되어가도.. 잠이 오질 않는다.
이제 3시가 가까이 온다, 그때 “ 아!!! 그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 침대에서 계속 천장을 바라보며 뒤척이다가 번뜩인 아이디어.
바로 사무실에 나가서 해볼까? (정말 그럴 뻔했다)
채 2시간이나 잤을까, 6시에 눈이 떠졌고 얼굴에 물만 바르고 가방을 챙겨서 사무실에 나와 시스템을 켠다.
불과 3시간 전에 번뜩인 아이디어를 적용해 보려 마우스를 클릭 클릭한다.
그리고, 전날 멈췄던 Task를 재기동시킨다...
흐흐 흐흐흐.... 잘 돌아간다, 그린라이트로 프로세스 완료.
프로젝트 팀 단체 카톡방에 사진 한 장을 올린다.
어젯밤에 빨간불이 켜졌던 화면에 켜진 그린라이트 그리고 그 위에 내가 쓴 손글씨, “ 진행완료 “
지난번과 비교해보면, 무려 1/6의 시간에 끝낸 결과였다. 됐다.
이제 다음팀에 바통을 넘긴다.
첫 번째 라운드가 이렇게 끝났다.
많은 짐과 피로를 얹은 채 시작한 프로젝트라서 첫 번째 라운드마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다면 그 여파가 더 컸을 거다. 회복되기 힘들 만큼.
현명하게 잘 대처했고, 좋은 결과로 증명이 되었다.
아웃사이더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내 컨디션을 유지하며 기대만큼의 Performance를 내기 위해서는 내 스타일을 유지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은 내가 잘해야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같이 웃고 떠들고 놀아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바통이 왔을 때 있는 힘껏 뛰어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이 Senior Consultant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또 다음 라운드를 위해서 이른 준비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