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데즈카 히어로
우선 이 작가 작품군에서도 지금은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저는 정말 이 작품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데즈카 사후 이 만화 전집 시리즈가 기획되어 전 400권이 발매되었지요.
한국에 있을 때는 타이틀만 보고 고를 수 있는 작품이 얼마 없어서 함부로 주문을 못했다가 일본에 가게 되었을 때 한 만화 전문 서점 책장 한 곳에 전권이 주욱 나열된 것을 보고 어흐흑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만 400여 권이나 되는 타이틀을 전부 구매할 수는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정보를 찾아볼 곳도 없으니 그냥 운에 맡기고 아무 작품이나 구입을 하기에는 좀 그렇고 그랬지요. 그때 생각한 것이 100번째, 200번째, 300번째, 그리고 400번째 책자를 고르는 선택법이었습니다.
이 '슈마리'라는 작품 4권이 100번째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1~4권을 전부 구입을 했지요.
'아톰'이나 '빅 X', '마그마 마사', '마신 가론', '블랙 잭', '붓다'같이 이미 알고 있던 타이틀이 아닌 작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모험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구입을 하게 된, 전혀 모르던 데즈카 오사무 만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게 참 매력적인 드라마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운이었지만 좋은 작품을 만났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사실 저는 일본에 가기 전까지도 일본이라는 나라 그 자체에 대해서 크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전자제품, 만화, 애니메이션 등이 발달한 나라라는 인식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서울 동네 촌놈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제가 대뜸 이 작품을 만나 조금 고민을 하게 됩니다. 작품 배경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보니 아쉬운 것이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려고 간 동네 도서관이 제법 큰 곳이었고 관련 책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볍게 관련 역사책까지 봐가면서 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지요.
사실 북해도에 살던 아이누 족 이야기나 일본 개혁 기라고 할 수 있는 메이지 정부(明治政府)에 의한 강제 개혁, 그리고 정치적 대립으로 인한 일본 내전 사태. 그런 가운데 신비한 전설, 이야기들이 많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일본에 있었던 사무라이나 지역 번제도에 의한 구성, 대립 과정 같은 것을 잘 몰랐기 때문에 이해가 적은 편이었지요. 그나마 제가 일본에 있었을 때가 사카모토 료마의 탄생 기념 해이기도 해서 이런저런 드라마, 이야기, 만화가 나왔기 때문에 조금 이해를 높일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왜 그렇게 사극이라는 부분에 일본이 호감이 높은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재방송 타이틀로 등장하는 '미토코몬'이나 '이런저런 장군 이야기', '충신 이야기'들이 언제나 나오는 것을 보면서 참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었지요.
그런 인연을 통해서 알게 된 여러 가지 이해 가운데 등장한 이 작품, 데즈카 오사무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감성적인 접근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알던 소년 만화 작가 데즈카가 아니라 사극, 역사 액션 드라마와 더불어 개성적이면 멋진 남성 캐릭터를 그려냈기 때문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지요.
이때까지 데즈카가 그려낸 여타 캐릭터들에 비해 확실히 선이 다른, 성인 극화식 드라마였으니까요.
더불어 시대를 돌아보면 데즈카 오사무가 설립했던 무시 프로덕션(虫プロダクション)이 파산을 한 다음, 작가 자신이 상당한 슬럼프에 빠져있었을 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치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기존 소년만화 작품과는 선이 다른 [블랙 잭], [세눈박이 나가신다 三つ目がとおる] 그리고 이 작품 [슈마리]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덕분에 기존 데즈카가 그린 소년만화를 생각하던 사람에게는 전혀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군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고 하겠지요. 저는 그것을 통해 소년 만화 작가도 독자와 함께 성장해나간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소년, 소녀 만화가가 언제까지나 한쪽 장르에만 묶여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이후 그 소년소녀 영역에서 함께 성장해 성인 만화 쪽으로 나가는 것이 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이 작품이 가진 드라마적 구성, 캐릭터 묘사, 그리고 성인 극화로서 보여줄 수 있는 재미라는 것을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데즈카 자신이 원한 히어로 상으로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도 있어서 또 다른 의미로 보게 되는 데즈카 히어로라고 하겠지만요. - 2014
지금 시대에 와서 이야기를 하자면 좀 웃긴 부분도 있는데, 일본 친구와 이 책 내용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던 중, 제가 아직 홋카이도, 북해도를 가보지 않았던 것을 말하고 친구 둘을 더 모아 갑자기 자동차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도쿄에서 홋카이도까지 렌트한 차를 빌려 솔솔솔 올라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작 북해도 하코다테에 도착 후에 폭설로 인해 어디를 가지 못하고 그곳에서만 머물다고 돌아온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인이 북해도 관련 이야기나 역사를 진하게 알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이라고 할까, 나름 자국 역사에 대한 이해를 많이 가지고 있던 일본 친구가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빠른 소식 전달 매체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기도 해서 굉장히 엉뚱한 이야기, 소문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서 이쪽 관련 설화는 전설, 헛소문 급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다만 극적 효과를 위한 연출가나 소설,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래저래 써먹을 소재로 활용되었다고 하겠지요.
이 작품 이야기는 의외로 근래에 히트하고 있는 [골든 카무이 ゴールデンカムイ]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실제로 그런 소문, 설화 등이 여기저기에서 떠돌았다고 하니까요.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보면 또 재미있습니다.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다른 형태로 표현된 시대의 작품이니까요. 당시 이 작품은 데즈카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도이면서 새로운 인물상, 구성을 보여준 장편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면 서부활극, 액션 드라마 등이 많이 나왔던 것을 보고 그런 구성을 빌렸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장 저는 [카무이의 검]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본 기억도 있었지만 이때만 해도 숨겨진 보물, 아이누 족 관련 이야기 등에 대한 이해는 그렇게 많지 않았거든요. 더불어 '황금의 땅 지팡'이라는 구전적인 요소도 이래저래 작용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여러 가지 감상과 추억이 함께 엮여있는 작품이 이 슈마리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슈마리는 아이누 족 언어로 '여우'를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