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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 May 15. 2021

음악이 가진 사운드

Music  Sound


이번에 취미 친구들과 과거 음반, 음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취미인 중에는 최신 음원으로 재구성하거나 음원을 리마스터링 해서 고음질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이도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저도 눈곱만큼 아는 것이 있지만 사실 아는 것보다 그것을 얼마나 느끼고 이해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보통 음원, 음질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경우는 근래에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이어폰 헤드폰 시장이 확대되면서 더욱 많은 가능성을 보게 되었지요.

이 부분에 대한 이해를 알아보기 위해서 192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유명 스튜디오에서 눅음 된 대표적인 곡들을 들어보고, 유명 아티스트와 더불어, 엔지니어, 시스템 구성과 녹음 방식, 구성에 따라 어떤 형태로 음질이 구성되는가를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본래는 유명 사운드 엔지니어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곳의 초청을 받아 이런저런 강연을 들어보고 그 기준을 통해 얼마나 프로 사운드, 상업 음악의 기준이 놀라운 기준을 가지고 나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기업에 흡수되어 디지털 서라운드 프로세싱에 대한 노하우가 이전되기도 했는데 이런 여러 가지 기준과 접근은 이후 다양한 사운드 퀄리티에 대한 접근을 새롭게 알아갈 수 있게 해 줬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는 정말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감성적인 것보다 알아보기 쉬운 수치로 표현하겠습니다.

음악 녹음, 그것을 기반으로 완성된 마스터 테이프, 그것을 기준으로 복사된 테이프와 레코드판은 수많은 기준을 알려주었지요.

이때 마스터 기준을 10이라고 합시다. 기술적인 한계도 있지만 물리적으로 이것을 넘어설 수 없었지요.

그리고 한 시대의 기준을 만들었으니 10이라는 것은 당연한 수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녹음 기술 기준으로 10이라는 것이지 실제 악기 연주자나 노래하는 가수의 능력을 그대로 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의 노래, 구성을 지금 시스템에 맞추어 들으면 굉장히 어색하게 들리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1928년 마이크 프로세싱과 채널 디바이딩 기술이 발전을 합니다.

정확한 물리적 이해관계까지는 따지기 어렵지만 기존 한계였던 10을 넘어서는 15라는 수치를 만들게 됩니다.

다만 시장에 풀리는 테이프와 레코드판은 여전히 기본 스타일을 구사했기 때문에 라이브와 차이가 많다는 이해관계를 알게 해 줍니다.

특히 악기 문화를 기반으로 발전된 클래식과 재즈와 같은 구성은 그 악기 하나하나의 감성이 담긴 매력을 얼마나 따로 담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는데 이 부분은 더 강한 자력 기기 성장과 함께 높은 음대비 성향을 입력하는 데 성공하지만 문제가 생깁니다.

예, 지금 기준으로 말하는 노이즈, 공간 노이즈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스튜디오에서는 마스터링 작업을 하면서 이 노이즈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특히 1930년대에 들어 진공관 기술과 더불어 트랜지스터 스타일을 도입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그 변화 기준을 어떤 형태로 잡을지 많은 기술자들이 노력을 하게 됩니다. 1908년에 등장해 세상에 소리의 전달을 위해 발전된 진공관 기술은 갈수록 성숙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지만 트랜지스터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었다는 것 때문에 스튜디오 마스터 기록에서는 여전히 진공관 기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우수성을 많이 말하게 됩니다.

단, 트랜지스터와 연결되기 쉬운 전기 증폭 기술은 스튜디오 모니터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 때문에 오리지널 음성을 어떤 형태로 녹음하고 조절하는 작업을 통해 믹싱, 완성된 음을 가지고 스튜디오 별, 엔지니어 별 우열을 나누게 됩니다. 유명한 스튜디오와 레코드 레이블이 이 시기에 많이 등장했지요.

특히 공간을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간 노이즈를 어느 정도 선에서 살리고 죽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음이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은 지금 음원들로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마스터에 가까운 릴 테이프나 레코드판을 기준으로 한 아날로그 구성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지금 시대 시스템으로 그 감성을 느끼기 어렵지요.

참고로 공간 노이즈는 진공관 계열과 트랜지스터 계열 기반에서 또 다른 게 있어서 이후 여러 스튜디오, 엔지니어 성향에 따라 많이 바뀌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클래식 레이블은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라디오, 그리고 영상 방송문화가 급격하게 발달합니다.

특히 영화 같은 오락 시스템에서도 사운드 구성이 바뀌어가면서 무성 작품에서 유성, 그리고 스테레오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하이엔드의 기반을 말하게 되었는데 특히 전기 전신 문화가 급격한 발전을 합니다. 세계대전과 함께 발달한 새로운 문화 세계는 이 사운드 기술을 대폭 증진시키는데 군사용 목적으로 큰 발전을 이룬 트랜지스터 기반 신기술과 회로가 대폭 변화를 겪으면서 녹음 기술은 비약적으로 35까지 발전합니다.

예, 대뜸 35입니다. 기존 15급에서 35까지 오른 대비 수치는 너무 기술적 변화가 심했던 것도 있고, 이름값을 하는 브랜드가 대단히 강력한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평가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더불어 고전적인 음향 기술이 아니라 순수하게 마스터링 되는 음반 기술이 놀라운 영역에 도달하는데 이 시기에 나온 음악들을 만나보면 정말 변화가 확 느껴지지요.

한때 엔지니어들 마음을 졸이게 했던 전기 노이즈들도 많이 줄어들었는데, 이 부분은 확실히 개인들의 오디오 시스템에 따라 그 차이를 확실하게 느껴주게 했다고 합니다. - 물론 저는 말로만 들었지요. 확실한 그 시대의 감각까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특히 유통문화의 확대와 함께 여러 운송 배달자들이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 그리고 카세트 시스템에 따른 음악에 대한 정감이 크게 작용하면서 어지간한 고급 시스템이나 클럽은 운송업자들이 자주 찾았다고 할 정도였지요.

이런 구성은 이후 전 세계 물류시장의 확대와 함께 여러 운송장, 속칭 트럭 운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습니다.

1940~1960년대에는 말 그대로 사운드 업계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클래식 레이블은 몇 군데가 완전 장악을 하면서 다 악기 음장 구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합니다.

사실 클래식 대형 편성곡을 녹음해 그것을 원 연출가 (주로 지휘자)의 의도에 맞게 표현되도록 하는 마스터링은 어지간한 투자와 기술이 없이는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 시대의 기준을 크게 알려주는 소리로 매리오 랜저(Mario Lanza)의 [Be My Love]가 있습니다.



기존 사운드 믹싱에서는 살리기 힘들었던 테너 출신 가수의 음을 거의 완벽하게 잡아냈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1920~194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소리의 공간감과 함께 뻗는 소리를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물론 지금 시대에 비하면 당연하게 공간 노이즈가 있지만 기존 소리에 비해 훨씬 많이, 잘 잡아낸 소리였다는 것은 확실했지요.

특히 이런 사운드 구성의 확대로 발전한 것은 뮤지컬 부분입니다.

오락 작품으로 음악 요소가 들어간 뮤지컬은 1930년대부터 흥행공식에서 빠질 수 없는 기반이었지만 그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가수들이 일일이 노래하고 공연하는 무시무시한 쇼 흥행 전략과 달리 전기신호로 전달되는 사운드 퀄리티가 얼마나 큰 영향을 발휘하게 되는지를 보면 음악 수준이 얼마나 발전해야 할지 자명했지요.

특히 모노럴에서 스테레오 시스템이 도입되어, 빠르게 시장을 장악해가는 이유에는 가정용 텔레비전 시스템과 더불어 스테레오 라디오 시스템이 불티나게 팔린 경제적 호황과 함께 누구나 원하는 기본 아이템이 되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기존 진공관 구성에서 갈수록 성능이 좋아지면서 더욱 소규모 형태로 집약되는 트랜지스터 역할이 컸습니다.

동년 시기를 바라보면 사실 시대는 몇 가지 흐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원음 주위와 믹싱 원칙에 따른 구분이 심하게 갈리던 시절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자악기. 전기 음악기기에 대한 기존 음악계의 견제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전기 보급과 새로운 문물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그 시대는 1~2년 단위로 새로운 것, 신기한 것,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 빠르게 전파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당시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자처하던 유럽과 미주 지역에 있어서 큰 발전 기반이 되었습니다.

다만 고약하게 꼬인 부분도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세대 간 갈등, 인종 문제, 성차별 등에 의한 구성도 당연하게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 기준으로 말할 수 있는 코데츠(The Chordettes)의 [Mister Sandman]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1940년대 중반에 결성된 여성 보컬 그룹으로 그녀들은 이 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아카펠라를 중심으로 한 매력적인 여성그룹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보컬 능력만으로 구성된 아카펠라 곡들은 대단히 감각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녹음, 재생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면 그 매력을 확실하게 알아듣기 어렵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녀들이 활약한 1958년 방송 라이브 기준 소리를 들어보면 대단히 탁하고, 음 구성 레벨이 여성 보컬들에게 맞지 않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형 라이브나 고오급 시스템을 갖춘 전문 프로그램이 아니면 일반 가수에게 전용 사운드 매니저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방송 규격에 맞추어 송출될 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지요.

기존 세대와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 플랫폼에 맞추어야 했고, 그녀들이 가진 매력적인 보컬 능력보다 비주얼적인 부분에 맞춘 홍보와 방송, 지역 홍보에 있어서도 무리한 일정이 요구되면서 편차를 만들게 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때부터 전문적인 구성으로 사운드 레이어에 대한 분석이 등장하게 됩니다.

모노럴 시스템에서 스테레오가 등장하고 그와 함께 여러 사운드 구성이 입체적으로, 공간감을 충분히 전달하는 과정이 발생하면서 그 음의 거리감, 그리고 악기의 존재를 어떤 한 가지 레이어로 잡아가는 구성을 말하게 됩니다.

솔로 연주곡이나 보컬 단일곡이라면  편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지요.

특히 대형 편성곡, 교향곡인 경우에는 시청자(마스터링 마이크) 기준으로 몇 m 떨어진 상태에서 여러 악기, 연주자들의 호흡을 담아내게 되는데 이 구분은 이후 여러 녹음 기술에 있어 중요한 기술,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1960년대까지 보컬이 있는 노래인 경우에는 거의 메인 보컬 레이어 1개에 그 배경에 있는 서브 보컬 레이어 1개 악기 레이어 2~3개 정도가 기본이었습니다.

밴드 음악이라고 해도 6~8개 이상 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요.

시스템의 한계도 있었기 때문에 음질 구성은 여전히 35 수준에 있었지만 레이어 구성이 더해지면서 조금 복잡해진 사운드 공간, 입체감을 표현해 나가기 시작한 믹싱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1940년대부터 이어져온 사운드 구성, 마스터 세팅에 대한 편차는 여전했습니다.

특히 백인 음악과 흑인음악에 대한 구성은 대단히 기준이 다른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무시한 채 그냥 녹음되기도 했기 때문에 사운드 기술, 녹음 감도가 발전된 1940년대 후반까지는 거의 다 같은 음으로 마스터링 되었다는 것이 아쉽다는 고인들의 말이 있습니다.

그 시대의 정말 잘 부르던 가수들의 소리가 제대로 남아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특히 음반 산업의 활성화에 동반해 막 등장한 여러 스튜디오는 그냥 평균 수준 20 정도 되는 품질로 찍어내서 팔기도 했기 때문에 시대의 기준이 30을 넘어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음질, 녹음 상태가 나쁜 음악 음원들이 혼존했던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부분은 1930~1940년대 음악 랭킹에 등장했던 수많은 노래들을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 21세기 사운드 시스템이라면 그런 차이를 대부분 쉽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니 한번 감상해보시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 봤자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라는 말씀을 하시는 분에게는 이런 노래도 한번 들어보시는 게 좋다고 하겠습니다.

헤일리 로렌이 부른 이 노래 [They Oughta Write A Song]은 21세기 사운드 기준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훌륭한 녹음, 좋은 보컬, 매력적인 사운드 믹싱이 어우러져서 그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지요.

그래 봤자 유튜브 영상 소리일지라도 확실하게 차이점을 느끼게 해 줍니다.

힘들지 않게 부른 가수의 호흡 하나도 잘 잡아서 배경에 흐르는 악기 선율과 부드럽게 조화를 이룹니다.

이것이 사운드 기술, 지금 시대의 녹음 기술에 의해 녹음된 소리입니다.

비슷한 보컬 능력을 가진 가수가 1940년대에 녹음한 소리와

2000년대에 녹음한 소리가 같을 수 없는 것이 이 사운드 믹싱 기술의 발전 차이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일부 고연령 평론가들 감상평을 들어보면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생기는 이유가 이런 점입니다.

아예 믹싱, 사운드 기술이 다른 시대의 노래, 음원, 음반을 가지고 좋다 나쁘다를 평하기 참 어렵다는 것이지요.

유명한, 저명한 가수, 연주가들의 소리라고 해서 들어봤는데 별로 좋지 않던데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고요.



더불어 참고할 수 있는, 헤일리가 2012년 도쿄 코튼 클럽에서 라이브를 했던 영상입니다.

단순하지만 우리가 좋은 시대에 좋은 음을 접하기 쉬운 때를 맞이하고 있다고 하겠지요.

어찌 되었든 우리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미국 팝 사운드의 황금기를 많이 기억하고 듣게 됩니다.

물론 유럽 지역의 열풍도 대단했지만 세계 음악시장의 큰 흐름을 이끌어간 것은 누가 따로 말할 것 없이 그쪽이었지요.



대표적인 예로 써먹기 좋은 노래 중 하나가 진 빈센트 앤 히스 블루 캡스(Gene Vincent & His Blue Caps)가 부른 [Be-Bop-a-Lula]입니다.

아니 언제 때 노래를 들고 나왔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이 노래는 1956년.

제가 사운드 기술이 35에 도달했다고 평한 시대에 나온 노래입니다.



대단히 유행을 했고 여러 가지 의미로 시대적 상징성을 가진 곡이었습니다만 라이브 구성 사운드 퀄리티는 대단히 낮지요.

당시 기준으로 나온 음원들을 들어봐도 그렇게 좋다고 말하기 어렵고요.

거의 사운드 레이어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을 봐서 믹싱도 좋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하겠습니다.

이 노래가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비틀스를 비롯하여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다양한 이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음악으로 통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젊은이들의 노래라고 인식되기 시작한 팝~ 로큰롤의 경계에 있고, 전자악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원음 주의 녹음 방식과 새로운 시대의 믹싱 녹음 방식에 의해 갈라볼 수 있는 상징적인 곡이기도 하지요.

특징적인 사운드 레벨을 이야기하게 되면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의 팝 가스펠 영역도 사운드 영역에 많은 변화를 유도했습니다.

팝, 록, 가스펠이라는 장르적 구분이 없을 정도로 대단히 뛰어난 사운드 아티스트였던 그의 노래들은 아주 좋습니다.

작사 작곡 연주를 다하는 아티스트였지요.

그런데 그의 훌륭한 음악들이 좋은 사운드 환경을 만났는가 하는 점에서 보면 아쉽지요.

아 누군지 모르겠다고요?

그럼 이 노래를 들어보세요.



리틀 리처드의 [Tutti Frutti] 는 위대한 음악으로 알려져 있지만 녹음 상태 그 자체는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의 음반을 녹음했던 뉴올리언스 스튜디오에서는 말 같지도 않은 의성어를 터트리는 이 노래를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후문도 있어서 그런지 사운드 퀄리티가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노래가 훗날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정도였지요.

이 정도로 별것 아닌 녹음 상태에서 말입니다.

흑인 아티스트들의 길거리 공연 수입 중 하나였던 '메디슨 라이브' - 약팔이 노래잔치 - 정도에서나 굴러먹던 쇼맨십 가득한 노래라고 폄하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리틀 리쳐드는 대단한 아티스트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의 음원을 다시 고급 리마스터링 하고 싶었던 여러 엔지니어들이 그 오리지널 마스터를 찾아봤다고 하는데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이 시대는 이미 35 등급 사운드 믹싱 레벨 수준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레벨 20에도 못 미치는 사운드 믹싱 타이틀이 존재했다는 것이지요.

제일 먼저 동영상으로 소개한 매리오 랜저와 동 시기인데도 사운드 레벨, 녹음 상태, 기술적 이해관계가 전혀 틀리지요.

일설에서는 품위 있는 오페라 계열 가수의 녹음과 그냥 떠돌이 흑인 아티스트의 녹음을 같은 급에서 처리할 이유가 없었음을 단적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만 우수한 아티스트들의 좋은 노래가 좋은 음원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은 여전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리틀 리처드는 올해 2020년 5월 9일에 작고했습니다.

누구나 그를 King of Rock and Roll 이라고 부른다고 하겠습니다.



그나마 리틀 리처드는 허접한 녹음 음반보다 좋은, 방송 라인을 탄 것 때문에 여러 가지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비록 지금 구성으로 리마스터링 된 사운드이지만 확실히 고전 음반 녹음 상태보다는 훨씬 나은 중고음 구성을 들려줍니다.

물론 이것은 지역 레이블 스튜디오보다 방송 쪽 시스템이 더 좋고 발전된 구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식으로 노래, 음악은 기술발전의 혜택을 빨리 받으면서도 편차가 심한 구성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 [Goody Goody] 는 본래 1936년 곡으로 Matty Malneck이 작곡했는데 흥겨운 연주곡으로 유행을 타면서 

베니 굿맨(Benny Goodman) 오케스트라 녹음곡이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단 이 시대 녹음은 아까 말한 10점대에서 15점대를 기준으로 도약하던 시절이어서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른 프랭키 리몬(Frankie Lymon)이 1957년에 새롭게 녹음을 하면서 큰 흥행을 했고 솔로 흑인 아티스트 음악으로서는 대단히 좋은 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뉴욕 출신 흑인 소프라노 싱어였다는 점이 은근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진 것도 있었지만 처음 발표된 틴에이저 그룹 구성과 달리 완전 혼자 녹음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훌륭한 보컬이었다는 평가를 다시 할 수 있었지요. 그가 그렇게 어린 나이, 25살에 죽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매력적인 보컬 시대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정말 1950년대는 사운드 믹싱과 아티스트들에게 있어서 변화무쌍한 시대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제가 말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사이의 사운드 믹싱은 어떠했을지 궁금하신 분도 있겠지요.



미국 빌보드 팝 역사상 첫 히트곡으로 기록된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폴 화이트맨{Paul Whiteman) 오케스트라에 의한 [Valencia]입니다.

공식 발표 기준 1926년 곡입니다.

당연 녹음 기술 6~7 정도 수준에 모노럴, 사운드 레이어는 단순하게 2~3개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흥겨운 느낌은 잘 살렸다고 하겠지요.

당시 관악기가 녹음에 유리했던 것은 현악기 소리를 제대로 담기 어려웠던 녹음 환경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역을 돌면서 연주를 하던 여러 유명 오케스트라 흥행(쇼)은 미국의 여러 홀에서 울리는 것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목관악기와 금관악기가 중심이었고 현악기 쪽은 아무래도 임팩트가 밀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믹싱 레이어가 개발되고 그것을 조절해서 비슷한 형태로 조절해 존재감을 얻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고 하겠습니다.

대신 진공관과 매력적으로 어울리는 금관, 관악기, 타악기들은 흥행을 염두에 둔 업자들에게 당연하게 필요한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있어 큰 중심으로 작용한 이 노래, 베니 굿맨 오케스트라가 1936년에 발표한 루이스 프리마의 곡을 어레인지 해서 1938년에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판 찍어내기 바쁜 명곡으로 등극을 했습니다.

1920년대 빌보드 사운드 랭킹이 성립되고 1930년대까지 아직은 오케스트라 흥행을 중심으로 한 구성이 중심이었던 시장에 말 그대로 대박 사운드를 선사한 것이지요,

덕분에 이 곡은 여러 레이블에서 녹음이 되었고 지금까지 다양한 버전의 마스터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여러 영화, 드라마, 그리고 음악이 리메이크되면서 흥행하는 상징적 위치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하겠지요.

단, 이때까지만 해도 모노럴 - 스테레오 기준으로 녹음을 하기 어려웠고, 레이어 구분이 쉽지 않았던 점, 녹음 음압 레벨이 낮아서 사람의 목소리 보컬 부분은 언제나 녹음에 애를 먹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참고로 최근 영화로 나와 새로운 인식을 알려준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의 [Over the Rainbow]도 이 시기 1939년에 발표된 곡입니다.



이 시대 영화 사운드는 오케스트라를 직접 동원해서 연출하는 구성도 몇몇 유명 극장에서 유행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도 생 연주, 생 음악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그런 구성을 택한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오페라를 비롯한 하이 소사이어티 레벨 문화 영역에 속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혼란이 있었겠지만요.

더불어 1940년대를 대표하는 취미인들에게는 유명한 노래가 또 등장하지요.



디즈니가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역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전국 흥행을 넘어 세계시장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명곡이 등장했지요.

물론 녹음 상태는 딱 1940년 최신 기준이기 때문에 좀 좋게 들리기는 합니다.

[When You Wish Upon A Star]는 클리프 에드워즈(Cliff Edwards) 말고도 여러 버전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저는 워 이곡을 기준으로 삼겠습니다. 그게 더 편하니까요.

잘 구분해보시면 아시겠지만 1939년과 달리 1940년대는 확실히 사운드 레벨이 발전합니다.

음반 시장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여러 곳에서 가만있을 리가 없었거든요.



1941년에 발표된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의 [In the Mood]는 말 그대로 돈 찍는 음악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잘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확실히 1930년대보다 조금 더 음 세밀함이 증가했습니다.

그것은 이후 새롭게 리마스터링 된 사운드 레벨을 봐도 당시 사운드 믹싱, 마스터링 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1920~1930년대 음악들은 지금 다시 마스터링을 해서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1940년대에 들어선 노래들은 대단히 레벨을 다르게 리마스터링 할 수 있었습니다.

산업기반 리코딩 용 산화철, 마스터 테이프에 들어가는 철분 밀도가 훨씬 높아졌고, 더 높은 음악에서 더 많은 소리를 잡아서 녹음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만큼 공간 노이즈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해서 그 부분을 죽이는 쪽으로 나가는 탁한 소리를 중심으로 당시는 발표를 할 수밖에 없었고요.



리 마스터링 된 사운드 쪽도 들어보시면 확실히 아실 수 있겠습니다.

1940년대 사운드 레벨이 올라간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다양한 악기 연주가 더해지면 그만큼 사운드가 풍부해지고 흥겨움을 더할 수 있는데 녹음 기술이 따라가지 못해서 포기했던 시절과 다르게 구성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집니다.

특히 돈을 들여 만드는 곡, 영화 관련 음악은 더 뛰어난 믹싱 레벨을 기준으로 마스터를 내놓게 됩니다.

단, 라이브 사운드와는 다르게 개방감이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기존보다 훨씬 좋은 음질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실제 전기 악기 전자악기가 동원되기 전까지는 현악기 녹음이 어려워서 (녹음은 되지만 출력음이 낮아서 확장, 올릴 수밖에 없고 그러면 노이즈도 함께 올라가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함부로 쓰기 어려운 난제에 속했다고 합니다)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묻혀버리는 악기 소리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넘어갔다고 하지요.

그런 사운드 레벨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인 '실로폰' 소리라고 합니다.

더불어 타악기 쪽은 소리가 퍼지는 음장 구성이 깊게 녹음되지 않아서 대단히 짧게 울리는 소리로 들리는데 이것은 이후 음장 형성, 레이어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서 더욱 풍부한 소리 영역을 가지게 됩니다.



이 곡 [Twelfth Street Rag]은 본래 1914년대에 만들어진 곡으로 나름 히트를 했던 고전이었는데 래그타임(ragtime) 사운드 구성에 있어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대변되던 백인 음악 구성과 다르게 흑인 음악 구성의 한 장르로 본다고 합니다.

그 곡을 1948년에 피 위 헌트(Pee Wee Hunt)가 새롭게 녹음해 발표한 곡입니다.

영상에 나온 그대로 당시를 대표하던 캐피털 사운드 음반이 자신들의 기술을 발휘하여 시대의 기준을 알려준 소리이기도 하지요.

잘 들어보면 금관악기의 소리 레이어가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예, 레이어 사운드 믹싱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을 알게 해주는 곡이기도 합니다.

킹 콜 트리오가 1948년에 남긴 [Nature Boy]는 쓸만한 동영상이 없어 링크를 넣지 않았지만 음반이나 음원을 가지고 계시다면 들어보세요.

mp3라도 상관없습니다. 노래 보컬 음성에 깊이가 존재합니다.

예, 공간감이 담긴 녹음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 주지요.

더불어 동영상으로는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 역시 링크를 올려두지 못했지만

1949년에 발표된 Vaughn Monroe의 노래 [(Ghost) Riders in the Sky: A Cowboy Legend]도 대단히 보컬 공간감이 확 살아있는 녹음입니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소리 반 공기 반 스타일 녹음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주는 곡입니다.

라이브로만 듣던 그 공간감을 드디어 음반 스튜디오에서도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런 믹싱 구성은 1930년대 말부터 시도되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성공적인 믹싱을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티스트의 취향도 있고, 메이저 레이블, 큰 회사에서는 그런 잔향 감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엔지니어가 이런 쪽을 지향했다고 해도 결국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대중이 그런 차이를 알아들을 만큼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드물었기 때문에 (아직 시장은 모노럴 단순 레이어 구성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만드는 의미를 찾지 못했다고 하겠지요.

실제 1960년대 TV 사운드를 들어봐도 이런 공간감 있는 믹싱이 사용될 의미가 없었습니다.

TV 사운드도 레이어가 거의 안 들리는 모노럴이거든요.

드디어 1950년대를 말할 때가 왔습니다.

우선은 냇 킹 콜의 [모나리자] 입니다. 유명한 노래이면서 녹음 구성이 확 바뀐 것을 알게 해주는 곡입니다.

어중간한 사운드 시스템이라고 해도 21세기에 사는 분이라면 음악 레벨이 확 바뀐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단히 맑고 (중, 고역대 녹음 영역이 늘어났습니다), 공간감이 확실히 느껴지고(음 레이어 -보컬과 악기 레벨 조화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단, 아직도 일반 방송 수준은 이 음원 레벨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방송에서 듣는 것보다 음반을 구입해 듣는 이들, 즉 오디오에 매료된 사람들이 대량 생산되게 됩니다.

과거에는 그냥 라디오나 TV 하나 사다 두면 끝이었던 시대에 전축, 스테레오 머신과 레코드 플레이어를 따로 구입하는 사람들의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까지는 말 그대로 새로운 장비, 신기한 오디오 시스템 인기가 폭증했다고 하지요.

그만큼 레코드 레이블의 사운드 믹싱 능력이 올랐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이때 레벨을 거의 40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35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레이블, 제작사의 수준 차이가 제법 나왔기 때문입니다.

명 프로듀서와 고급 기기를 동원한 회사가 있었고, 그냥 막 녹음하던 과거 시절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전에 썼던 테레사 브루어의 음악도 이 시대의 기준에서 보면 아슬아슬한 수준이었습니다.

테레사의 노래가 상당한 중고역대를 울리는 것 때문에 녹음 레벨을 달리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단 원본이 화제로 소실되어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중고역대의 거친 음은 당시 녹음 기술이 따라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50년대 사운드를 대표하는 명곡 가운데 하나인 페티 페이지(Patti Page)의 [테네시 왈츠 Tennessee Waltz] 입니다.

대충 들어봐도 이미 기존 시대 음악 레벨과 다른 소리를 들려주지요.

확 달라졌습니다.

보컬 음역대도 충분히 커버해서 녹음했고 배경에 깔린 악기들 소리도 확실히 살아있습니다.

여성 보컬인 페티의 능력도 대단했지만 이 녹음을 살려낸 머큐리 레코드(Mercury Records)에 대한 평가도 대단히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신규 회사인데 고 능력자 엔지니어들을 다수 포섭해서 창립한 신생 레이블로 뛰어난 녹음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재즈와 블루스, 컨트리 뮤직 같은 구성에 높은 이해를 가지고 등장해서 이후 많은 명반, 명 음원을 만든 곳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시 기준으로도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곡이 쏟아졌으니 알만하지요.

이 노래 테네시 왈츠는 몇 년 전부터 몇몇 버전이 있었지만 지금도 페티 페이지 버전이 유명한 것은 녹음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회사에서 페티 페이지가 내놓은 [Mockingbird Hill]도 녹음 상태가 대단히 훌륭해서 듣기 좋은 사운드로 남아있지요.

이때를 기준으로 잘 들리는 중역대 사운드에 기름칠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남녀 보컬 영역에 있어 그렇게 높거나 낮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다가오는 중간 음역대 구성을 얼마나 보드랍고 아름답게 녹음하는가에 따라 매출이 갈린다는 소리가 나온 것이지요. 속칭 기름칠입니다.

단, 이게 너무 들어가면 뻐터 소리 난다는 농담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을 믹싱 기술로 봐야 할지, 아니면 당시 보컬들이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믹싱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에는 생산할 수 없었던 사운드가 완성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경쾌하게 어울릴 수 있는 피아노, 현악기 구성이 자주 등장하게 된 것도 녹음 기술의 발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에 들어서는 잘 들리지 않았던 현악기 소리가 뚜렷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게 됩니다.

레이어 편집이 현악기를 다른 악기와 동급으로 노이즈 없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급 레벨로 녹음해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오페라를 비롯한 클래식 영역에서도 이런 부분이 큰 활약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더욱 세련된 오디오 업계의 발전이 예약된 상황이었지요.

실제 아직 방송, 라디오 사운드 수준이 높지 않았던 것에 비해 주크박스 같은 음악 전용 기기 쪽이 훨씬 좋은 느낌을 전달했기 때문에 길거리 차트에서는 언제나 주크박스 기준으로 노래를 평가했고 덩달아 주크박스에서 들리는 사운드가 오리지널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1953년에 발표된 레스 벡스터(Les Baxter)의  [April In Portugal]을 들어보면 기존 시대와 달리 헌 음악이 아주 매력적으로 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이 곡은 1948년에 발표되어 인기를 얻었고 여러 아티스트가 연주를 했는데 이 버전의 녹음 상태가 압도적으로 좋았다고 하겠습니다.

그로 인해 다시 좋은 녹음을 하는 회사, 브랜드, 레이블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좋은 악기 연주자들은 좋은 녹음을 남기고 싶어 했으니까 더욱 그런 풍조에 불을 붙였다 하겠습니다.

물론 중고음역대는 대부분 많이 뭉툭해져 있어서 지금 듣는 일반적인 기타 소리와는 또 다릅니다.

기타 자체의 소리는 크게 변한 게 없겠지만 이 시대 최신 레코딩 기술로도 그 음들을 다 잡아내지 못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요. 마스터 테이프에도 당시 기술로는 측정할 수 없었던 미세한 음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증폭시켜 내려면 덩달아 노이즈도 커지니 리마스터 엔지니어 선택에 따라 살려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1954년에 발표된 토니 베넷(Tony Bennett)의 이 노래 [Stranger in Paradise]는 전에 제가 쓴 적이 있는 알렉산더 보로딘의 오페라 곡을 따로 가져와 만든 곡입니다.

그래서 또 흥미롭게 들을 수 있고요.

매력 있는 보컬이 부르는 감정선을 잘 들려주는 구성은 확실히 수많은 명 아티스트들에게 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여러 흥행 사운드 구성도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데, 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하여 유명한 흥행 장소 사운드 구성은 대단히 많은 돈을 들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뮤지컬 쇼나 영화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성을 보여준 것인데 이런 점들은 나중에 디지털 사운드 시네마 부분에 있어서 자료로 통합된다고 합니다.

유명 오페라 홀이나 무대의 음장효과를 데이터로 만들어 구성했다는 소리지요.



상당히 유명한 1955년도 노래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은 영화 음악이지요.

그리고 Four Aces가 부른 버전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제목은 몰라도 이 노래를 들어본 분은 제법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제작 레이블은 DECCA입니다.

영국을 대표하던 음반사로 세계대전 전까지 최고 수준의 음반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지요.

남성 사운드 중창과 배경 악기 구성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레이어 녹음이 완전히 정착을 했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더불어 이후 유명 클래식, 보컬 사운드가 더욱 화려한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1955년을 장식하는 흑인 보컬 사운드의 대표곡 플래터스의 [Only You]입니다.

참고로 이 영상은 당시 방송 영상에 지금 수준의 사운드를 구성해 넣은 버전으로 나름 시대적 변화를 확실하게 느껴주는 것이라 이쪽을 선택했습니다.

대표적이며 상징적인 사운드 구성인데 50년대 중후반부터 녹음된 대부분의 사운드 마스터들은 이후 디지털 시대까지 잘 이어지는 마스터 영역을 보여줍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사운드 레벨, 기술적인 구성이 10으로 시작해서 34~40 단위에 올라왔다는 것을 어느 정도 실감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더불어 이 시대의 마스터(음원 마스터)는 대부분 60년대 말 70년대로 이어지는 디지털 마스터링 소스로서도 훌륭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비록 전기신호로 저장된 것을 디지털화시키는 형태로 정리되었다고 해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수준의 음원으로 조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단, 몇몇 음악 장르는 그런 음원용 구성 레벨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했습니다.

히피의 시대, 청춘의 로큰롤, 더불어 라이브 밴드 활동에 의한 리얼 사운드 추구와 다른 스튜디오 녹음, 엔지니어 믹싱에 의해서 만들어진 소리가 가짜라고 말하는 이들 간의 갈등이었습니다.

심지어 스테레오 기술을 가짜 음악으로 현혹시키는 구성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입은 하나인데 어떻게 스테레오 같은 구멍 두 개짜리 사운드로 들리겠느냐라는 논리였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사운드 기술이 발전하는 것보다 악기, 연주 실력, 그리고 보컬의 매력을 현장(라이브)로 느끼고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진짜라는 논리도 등장했습니다. 단, 이것은 확실히 맞는 말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명 사운드, 연주가, 보컬리스트가 들려주는 생생한 라이브 음은 음반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감동까지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하니까요.

이 부분을 수치로 말한다면

라이브는 50+a였다고 할 때 아직 레코딩, 믹싱 수준은 40 정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반면 순수한 라이브 타입 아티스트도 있는 반면 작은 홀, 또는 소규모 구성에서 더욱 매력을 발하는 음악도 있었습니다.

이런 쪽은 오히려 일반 음원보다 라이브 쪽이 약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수준에 대한 기준을 잡는다는 것이 어려웠지요.

지금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음반 가수와 라이브 가수의 차이를 대표하는 논쟁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더불어 유행하는 음반 레이블사가 독점하는 흥행 시장, 팔리는 음반 시장에 대한 불만과 순수성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대립하게 되는 여러 사회적 문제가 대립되는 것 때문에 1960년대는 나름 혼돈이었다고 합니다.

한국과 같은 동남아시아는 아직 사운드 구성이나 전기 문화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게 전달되기 전이었다는 것도 있어서 1950년부터 1960년까지 이어지는 음악시장과 레코드 제작사의 관계는 여러 가지 불편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아시아에서는 빨리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이 이 끝자락을 잡아 1960~1970년대에 걸친 전자, 전기 문화와 동반된 음악시장의 확대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아티스트의 영역보다 제작사, 녹음, 판매사의 기준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반대로 음악적 성숙과 기술의 발전을 확실하게 이룬 미주, 유럽시장은 은근 자존심 싸움을 하게 됩니다.

로큰롤의 왕은 본래 리틀 리처드였지만 어느새 백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고 1950년대 음악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라이브 능력은 좀 떨어져도 방송, 흥행 구성에서 우선순위를 가지게 되는 형태가 대단히 복잡한 구성을 가지게 했다고 합니다.

저도 역시 이런 구분을 가고 있던 시대를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기에 그러하다는 이야기만으로 감상을 말할 수밖에 없는데 음악 아티스트의 조건에 있어 라이브에 강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 1960년대 전후로 등장한 댄스머신, 춤과 노래와 쇼맨십을 동시에 갖춘 만능 엔터테인먼트를 논하게 되는 시대가 되면 더욱 복잡한 이야기가 되니까요.

물론 개인적으로 저는 엘비스의 [Don't Be Cruel] (1955)이나 [Love Me Tender] (1956)를 좋아합니다.

사운드, 기술이나 시대적인 배경을 떠나서 말이지요.



더불어 본다면 1956년에 발표된 도리스 데이(Doris Day)의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는 명곡이면서 대단히 사운드 믹싱이 잘 된 음악이었지요.

사실 이 노래가 영화음악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만큼 영화용 음악으로 가진 구성과 믹싱, 사운드 퀄리티가 다를 수 있었던 것은 이후 미국 음악 시장에 있어서 큰 공식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래도 좋으면 금상첨화지만 영화에 노래가 들어가면 흥행 보증수표 같은 형태로 인식되었다고 하니까요.

지금 우리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유명 드라마 사운드에 유명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같은 1956년에 플래터스가 내놓은 [the great pretender]도 역시 명곡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앞서 나온 영상처럼 그때 방송 영상에 사운드를 입힌 구성입니다만 이 매력은 정말 대단했지요.

당시 기준으로도 백인과 흑인의 음결이 틀리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 준 매력적인 구성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제작사였던 머큐리는 흑백 보컬로서 다 좋은 믹싱을 내놓으면서 시대의 감각을 대표하는 레이블로 자리매김했다고 하겠고요.

나중에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면서 묘한 재미를 느낀 분도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시대의 아이돌 가수 폴 앵카(Paul Anka)도 등장합니다.



1957년에 내놓은 이 노래 [Diana]는 시대를 상징하는 곡이었습니다.

음반 시장을 기준으로 봐도 그렇고 기술적인 부분으로 봐도 그렇지요.

중저음 구성이 강했던 음반 레이블에 있어서 미성에 가까운 고음을 내는 백인 청년이 등장했으니까요.

게다가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제 라이프 타임보다 앞에 계신 분이라서 그 영향력을 직접 느낄 수는 없겠지만 노래하는 아이돌의 기준을 만든 아티스트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대부분 나이 있어 보이는 (그게 패션적인 유행이었지만) 아티스트가 나오는 것에 비해 젊은, 아니 앳되어 보이는 외모를 가진 이가 좋은 가창력을 뽐냈으니까요.

실제 음을 잘 들어보면 그 시대 기준으로도 대단히 맑은 편에 속하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메인 보컬 음역대가 400Hz 대에서 600을 중심으로 구성되던 시대에 있어 850~1100Hz 대 음역을 자랑한 것도 또 다른 매력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런 음역대를 자랑한 가수들은 이전에도 있었을 터이지만 녹음 기술의 발달에 맞추어 충분히 그 능력을 소화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매력적인 악기 음역도 잘 어울려서 이후 좋은 노래에 맞추어 다양한 악기 레이어를 넣어둘 수 있는 확장성도 보여줍니다.

참고로 이 당시 인기 남성 보컬 영역대는 대부분 150~380 대였다고 합니다.

쉽게 부르는 영역 대이고 음역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한 방법론이기도 했지만 중고 음역대를 가볍게 뿌릴 수 있다는 것은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1957년에 나온 리틀 리처드의 [Jenny Jenny]는 믹싱 기술이 따라가지 못한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처드의 뿌리는듯한 고음역대가 많이 뭉개져 있는데 확실히 이런 점에서 믹싱,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의 한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앞서 말한 50+a급 아티스트의 라이브 능력을 믹싱 기술이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실제 이렇게 막 부르는 듯한 리틀 리처드의 노래를 믹싱 하는 엔지니어는 상당히 난감했을 것 같습니다.



참고할 영상으로 그나마 멀쩡한 것이 이쪽이라서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음원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꼭 들어보세요.

1958년에 발표된 여성 아카펠라 그룹 코테트의 [Lollipop]입니다.

참고로 그녀들의 주요 사운드 음역대는 800~2200대였습니다.

지금이야 0~20000Hz를 소화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당시 믹싱 기술 내에서 이런 고음을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쪽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4명이나 되는 보컬. 여기에 음감을 풍부하게 해주는 사운드 믹싱, 악기 연주들까지 더해지면서 밸런스를 맞춘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잘 들어보면 사운드 구성이 좌우로 갈려있습니다. 초기에는 잘 나오다가 악기와 함께 할 때는 악기 파트와 보컬 파트 좌우 구성이 다르게 레이어가 잡혀있지요. 이런 믹싱 기술은 아직 다양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오리지널 음원과 달리 방송이나 일부 파트에서는 사운드 레벨 구성을 동시에 내놓기 어려웠던 시대감각을 알 수 있습니다.

1990년대까지 방송 규격 믹싱 레벨은 ~15000 정도였으니까요.



1958년에 폴 앵카는 또 다른 명곡을 내놓습니다.

예, 이곡 [You Are My Destiny]입니다.

노래도 훌륭했지만 기존에 고음역대를 중심으로 내지르던 폴의 스타일보다 한 발 앞선 중저음역대도 충분히 소화하고 있습니다.

사운드 밸런스 믹싱이 확실히 잡혔지요.

참고로 이때는 제작사에서 히트 아티스트가 되면 전문 엔지니어를 붙여주었다고 합니다.

돈이 되는 가수인 만큼 확실하게 녹음 레벨도 그에 맞추어 더 확장시켰다고 하겠습니다.

1950년대 음악산업은 확실한 돈줄이었고 새로운 문화 사업의 기수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잘 비교해보시면 1950년대 후반에 갈수록 사운드, 음질 순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존에 은근히 거슬렸던 이런저런 잡소리도 거칠지 않게 순화되었고, 공간음, 스테레오 구성도 확실해졌습니다.

1950년대 음악은 정말 크게 발전해서 기존 1940년대 사운드들과 비교하면 촌티가 느껴질 정도이기도 했습니다.

템포 믹싱도 차분하게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박자, 리듬까지 조절해가면서 녹음했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템포가 다른 곡을 믹싱 하는 스타일이 1990년대 초까지 여러 스튜디오에서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자 이제 1959년을 대표하는 노래를 하나 보지요.

사라 본(sarah vaughan)의 [broken hearted melody]입니다.

시대를 앞서가던 머큐리 레코드가 내놓은 이 곡은 말 그대로 보컬이 가진 섬세한 떨림을 비롯하여 현장감을 높인 곡이라고 하겠습니다.

단순하게 여러 노래를 듣다 보면 좀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이 가진 새로운 음악 구성은 앞에서 말한 레코딩 레벨 35를 넘어 40대에 도달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백 보컬과 악기가 대단히 넓은 공간감을 형성하면서도 밀리지 않고 잘 들리거든요.

그러면서도 메인 보컬이 가진 생생함을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머큐리 레이블 음원은 이후에 CD 시절을 맞이할 때 훌륭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는 말도 나옵니다.

참고로 당시 평 글에는 '침이 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라고 표현했다 합니다.



반면 1960년대에 들어서도 믹싱이 훌륭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했습니다.

1960년 히트곡인 영화음악 [Theme From The Apartment]인데 은근 음질 구성이 좋지 않다고 느낄 수 있겠습니다.

물론 지금 리마스터링 기술로 더 좋은 형태로 바꾼 부분도 존재하지만 일부러 과거 음에 가까운 영상을 가져왔습니다.

소리가 산만하고 음역도 좀 깨끗하지 않게 들립니다.

믹싱은 물론이요, 녹음 자체도 그렇게 좋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 레코드판 구성은 좋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순수하게 아날로그적 기준을 두고 녹음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제작 환경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195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훌륭한 믹싱, 녹음을 한 음악들이 존재하는 것에 비하면 확실히 질적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같은 1960년 명곡인 코니 프란시스(Connie Francis)의 [Mama]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극명하게 드러나지요.

동영상으로는 깔끔한 것이 없어 링크를 하지 못하지만 들어보시면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1960년은 레이 찰스(Ray Charles)의 [Georgia On My Mind]가 히트를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본래 1931년에 만들어진 연주곡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조지아 주를 대표하는 주가로 불린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곡이 가진 훌륭함은 많은 분들이 아실 것 같아서 라이브 영상으로 대신합니다.

매번 라이브 구성이 달랐던 (본인 기분, 마음에 따라 매번 달랐던 듯) 레이 찰스의 자유로운 부분을 보여주지 않나 합니다.

이런 아티스트의 활약도 있어서 여전히 음반시장은 음원 주의와 라이브 주의를 기반으로 한 은근한 대립이 유지되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팬이라면 아티스트의 라이브를 가봐야 한다는 말이 정석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은근 한국 영화팬들에게 친숙한 그 곡입니다.

예, 페란테와 타이셔(Ferrante & Teicher)가 1961년 영화음악으로 등장시킨 [영광에의 탈출 주제가 Exodus] 이지요.

이 아티스트는 피아노 연주를 기반으로 영화음악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피아노 연탄 연주를 기반으로 한 구성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단 이 사운드 믹싱 레벨은 좀 아슬아슬해서 (아까 앞에서 이야기한 녹음이 별로였던 회사 레이블과 같습니다) 은근히 아쉽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 이들 음반 자체보다 이후 타 아티스트가 녹음한 곡이 더 많이 쓰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역시 유행은 했지만 레코딩, 믹싱 레벨이 좋지 않은 곡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 노래도 있습니다.

1961년 작으로 스티브 로렌스(Steve Lawrence)가 내놓은 [Portrait Of My Love] 입니다.

역시 같은 회사이지요.

그 때문에 은근 영화음악을 기반으로 한 구성이 1950년대에 머물러있다는 (좀 더 진하게 이야기하면 1940년대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안타까움을 전하게 됩니다. 실제 이렇게 당시 믹싱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나중에 다시 리마스터링을 한다고 해도 더 좋은 음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실제 클래식 기반 현악기 피아노는 대단히 고기술, 고품질 브랜드가 존재해서 그쪽에서 내놓은 청명한 사운드를 녹음 믹싱에서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예를 확 느끼게 해주는 믹싱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로 알아볼 수 있는 곡입니다.

참고로 저는 이 음악들을 좋아하지만 이 믹싱은 오디오적으로 볼 때 듣기 어려운 레벨이라고 하겠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실력 없는 연주자가 아무렇게 막 친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1961년 믹싱이 허술하던 때는 아닙니다.

벤 이 킹(Ben E King)이 발표한 이 노래 [Stand By Me]가 그 시대의 기준을 잘 알려주지요.

앞서 나온 두 곡과 비교해서 같은 시대에 나온 믹싱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이지요.

특히 악기 하나하나에 담긴 공간감, 울림을 잘 살리면서도 보컬과 분위기를 깔끔하게 살리고 있습니다.

실제 믹싱 과정에 있어서 팝이나 로큰롤은 쉬운 편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템포가 느린 곡 믹싱이 더 어려웠다고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공간 노이즈를 완벽하게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느린 곡, 특히 밸러드 분야는 정말 신경 써서 하지 않으면 잡음이 팍팍 들어간다고 하니까요.

참고로 이 곡을 녹음한 앳코 레코드는 애틀랜틱 코퍼레이션(ATlantic COrporation) 약자를 따서 만든 브랜드인데 앳코는 RSO 레코드, 볼트, 아일랜드, 롤링 스톤스 레코드 등을 유통하기도 했는데 녹음 기준도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1955년에 애틀랜틱 레코드 자회사로 들어갔는데 한동안 그쪽 사운드 레이블의 기준점을 보여준 곳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단, 아티스트 성향에 따라 좀 다른 구성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서 메이저급으로 발전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같은 해에 발표된 벤 이 킹의 [Spanish Harlem]도 좋아하는데 백 보컬 구성이 잘 믹싱 되어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1961년에는 시대를 풍미하다 못해 세기를 가로지른 명곡 데이브 브루벡(Dave Brubeck)의 [take five]가 등장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사운드 레이블이나 믹싱에 대한 이야기 기준에 있어서 악기보다는 보컬 성향을 통해 구분을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실상 재즈의 약동과 함께 이런 연주곡에 대한 구성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속칭 윤기가 찰지게 흐르는 색소폰 연주와 배경에 깔린 드럼의 공간감이 어울리면서 멋진 매력을 들려줍니다.

특히 대형 스피커 편성과 함께 앰프 능력을 확인해보는 재미를 알려주는 곡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1961년을 대표하는 녹음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콜롬비아 레코드 레이블의 대표성을 가지면서 1925년부터 꾸준히 음악을 취급하는 제작사로 그 이름을 지켜온 곳답게 대단히 매력적인 사운드 레벨을 완성했습니다. 물론 이 시대 기준이지만요. 실제 녹음된 마스터는 이후 여러 버전이 있었고 나중에 CBS 소니에 흡수될 때도 이런 마스터가 재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본 것도 그 확장성이 높은 마스터 레벨 음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덕분에 DSD 슈퍼 사운드 고음질 버전에 대한 해석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요.

조금 신경 써서 들으면 은근 1960년대식 사운드의 한계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나중에 나온 고음질 버전과 비교해보면 재미있고요.



1962년의 초 대 히트곡 레이 찰스의 [I Can't Stop Loving You]는 믹싱 구분이 좀 미묘합니다.

메인 보컬인 레이 찰스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리고자 한 점 때문에 은근 백 보컬과 악기 밸런스가 좀 기존과 다르지요.

참고로 이 곡은 이후 몇몇 리마스터링을 통해 오리지널 버전과는 다른 느낌을 알게 해 줍니다.

그러니 은근 버전별 구성을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합니다.



1962년을 풍미한 닐 세다카(Neil Sedaka)의 [Breaking Up Is Hard To Do]는 은근 그 시대의 믹싱, 사운드 레벨을 알아볼 수 있는 구성 중 하나입니다.

실제 닐이 가진 보컬 능력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믹싱이라는 평이 많지요.

방송에서도 아직 그런 음원 레벨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요.

고급 스테레오 오디오가 판매되고 있는 상황에 여전히 방송용 구성은 모노럴에 12000Hz도 간신히 재생하는 수준이었다고 하니 대부분의 장비에서는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고 하겠습니다.



역시 1962년을 대표하는 명곡 가운데 하나인 포시즌(Four Seasons) 의 [Sherry]는 좋은 구성에 비해 녹음이 아쉬운 노래입니다.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레코딩을 전문으로 했던 시카고의 제작사가 처리하기에는 좀 한계가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노래도 흥겹고 구성도 좋은데 은근 믹싱이 아쉬운 곡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이쯤 오면 대략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아볼 수 있겠지요.



1963년 명곡인 캐스커디스(Cascades) 의 [Rhythm Of The Rain]는 충분히 좋은 매력을 가진 노래입니다.

실제 녹음 레벨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도 부드럽게 잘 마무리되었지요.

다만 이름값이 없던 제작사여서 그런지 믹싱이나 소리가 그렇게 맑지 못합니다.

나름 구성이 참신해서 좋았는데 이후 좋은 음원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아쉬운 노래입니다.

무난한 음 형성에 멜로디도 좋았는데 확실히 믹싱이 아쉬우면 나중에 고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1962년은 어떤 의미로 볼 때 충격적인 구성이 난무했다고 합니다.

샨티스(Chantays) 의 [Pipeline]이라는 곡이 그 대표적인 예이고요.

1940년대를 거쳐 1950년대를 가로지르는 큰 음악 흐름 중 하나가 로큰롤이었고 전자악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 변화였습니다.

어쿠스틱 한 매력을 가진 악기도 제대로 활약할 장소를 못 찾고 있는데 전기로 지지고 볶는 소리가 뭔가 좋냐며 까는 이들도 있었지만 녹음 레벨이 아직은 그런 모든 소리의 구성을 착실하게 잡아주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극적인 면에서는 전자 악기가 월등한 개성을 보여줄 때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또 이런 기이한 사운드 구성이 가능했고요.

단, 이쪽도 은근 믹싱은 좋은 편이 아닙니다.

자극적인 사운드 구성을 뽐내는 것은 좋지만 공간감이나 사운드 레이어가 대단히 엉성해서 좋은 음원으로 말하기 어려운, 그러나 자극적인 인상을 남긴 곡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전에 제가 따로 글을 쓴 적도 있는 인디오스(Indios Trabajaras)의 [Maria Elena]같은 노래도 1963년에 등장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파이프라인'과는 대조적인 구성이지요.

더불어 아직은 전자음악에 대한 믹싱보다는 아날로그 어쿠스틱 한 믹싱 기술이 조금 더 연륜 값을 하던 때라고 하겠습니다.

확실히 섬세한 레벨은 아니지만 악기의 공간감을 살리는 레이어는 잘 살아있어서 분위기 연출은 더 우수하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쪽도 믹싱 레벨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시대적인 기준은 충족하는 수준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수많은 명곡들이 레코딩에 있어서 혼돈기를 겪을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부분은 이후 캘리포니아 사운드, 뉴욕 사운드라는 기준으로 나누어지면서 동부와 서부를 기준하게 되고,

여기에 중남부 지역 사운드 레이블이 이름값을 유지하면서 다양성을 갖추게 됩니다.

특히 흑인 음악 기준에 있어 기존과 달리 그들의 특성을 잘 살린 오리지널 브랜드에 대한 열망도 커져갔고, 후에 여러 소규모이면서 뛰어난 엔지니어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음반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유럽, 영국에서는 비틀스가 활약을 하면서 단출하지만 확실한 음악 기준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영화음악 부분은 1962년에 헨리 멘시니(Henry Mancini)가 발표한 [Days Of Wine And Roses]가 대단히 품위 있는 완성도를 들려줍니다.

속칭, 돈 들어간 영화음악 사운드 레벨을 확실하게 들려주었지요.

연주곡인데 여타 클래식 레이블에 못지않은 악기들의 레이어를 확실하게 살려서 듣게 해 줍니다.

팝적인 영역에서는 오리지널에 가까운 아날로그 사운드보다 전자음악에 더 많은 관심이 가고 있었지만 영화음악 같은 분야에서는 여전히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한 연주곡들이 매력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디바의 영역에 있었던 디온 워릭(dionne warwick)의 [walk on by]도 그런 매력을 잘 들려주었습니다.

영상 음원보다 오리지널 음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완성된 미국 팝 사운드 스타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대단히 음악 레벨이 부드러운데 방송을 비롯하여 여러 음원에서 녹음이 잘 된 개성을 들려줍니다.

뛰어난 보컬과 스튜디오 믹싱의 레벨이 정점에 도달하고 있었을 때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참고로 이런 공간감을 연출하는 믹싱은 아메리칸 사운드의 대표성을 가지게 되면서 이후 여러 나라의 믹싱이 이 기술을 따라잡고자 많은 노력을 합니다만 역시 그 연륜을 따라잡기 어려웠다고 하겠습니다.

실제 그렇게 많은 음악산업 발전을 이룬 일본도 결국 좋은 음원을 제작하기 위한 선택과정에 미국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1965년, 아메리칸 사운드의 정점을 보여주는 노래가 등장합니다.

재키 데샤논(Jackie Deshannon)의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입니다.

워낙 믹싱 레벨이 훌륭해서 매력적인 것도 있지만 이 시대 기준으로도 대단히 뛰어난 구성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쓰기 어려운 악기와 조합한 것을 비롯해 보컬이 가진 강약을 잘 담아내고 있지요.

본래 시대의 디바 디온 워릭에게 가려고 만들어진 곡이라고 하지만 가사 때문에 거절당해 재키가 부른 곡이라고 하는데 재키였기 때문에 가능한 명곡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악기 하나하나의 개성이 잘 살아있고 그 공간감, 레이어도 살렸으면서 보컬이 잔잔하게 뿌리는 소리 반 공기 반 구성도 잘 믹싱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마치 영화나 뮤지컬에서 한 장면을 연출하는 듯한 느낌을 잘 들려주고 보여줍니다.

좋은 오디오라면 더욱 그 느낌을 잘 살려줍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1965년 미국 사운드 레벨은 50을 찍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50+a급 아티스트까지는 흡수하기 어려웠지만 어지간한 아티스트의 노래, 연주 분위기는 이제 확실히 잡아내가는 수준이었거든요.

물론 괴물급 아티스트, 속칭 불멸의 가수, 연주자들이 시대를 잘 만나 내놓게 되는 훌륭한 음악들이 줄줄 등장하는 1970~1980년대를 맞이하지만 이 사운드 레벨, 믹싱 영역은 이때 거의 다 완성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1966년에는 사이먼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달콤한 명곡 [Sounds Of Silence]같은 노래가 나올 수도 있었고요.

시대적인 이해관계는 대충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보통 명반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연주자들의 호흡과 재능이 더해져서 완성되는 것도 있겠지만 녹음이 잘되어 그 생동감을 잘 전달한다는 의미로도 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Jazz는 대단히 다양한 개성치를 알아볼 수 있는 음반, 장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쳇 베이커(Chet Baker) 가 연주한 [Street Of Dreams]

이 음악은 분위기, 그리고 편한 공간감을 선사합니다.

쳇 베이커(1929 - 1988)는 미국 오클라호마 출신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며 가수입니다.

1950년대에 활동을 시작해 1980년대까지 활동을 했는데 그 시대 녹음 방식에 따라 만들어진 음원들이 지금까지도 잘 이어지고 있어서 좋은 비교 감상을 할 수 있는 음악이지요.

물론 지금 시대 최신 녹음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당한 공간감과 함께 밴드 스타일의 다양성을 잘 포함하고 있는,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를 흩트리지 않고 이어지는 좋은 느낌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은 것이지만 이런 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음악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지요.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   [Embraceable You]

이 음악은 상당히 개성 강한 연주자의 열정이 담겨있지만 앞서 말한 노래와 달리 녹음이 그렇게 좋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쉽게 비교가 되지요.

사실 음만 들어보면 이 연주가 대단히 훌륭하고 멋들어진 매력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하이파이 음향적인 부분에서는 거리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배경에 깔리는 여러 연주, 악기들의 조화가 대단히 좋은 편인데도 그 음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지 않기 때문에 녹음 상태, 그리고 엔지니어의 선택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재즈 베이스 연주자이면서 피아노 연주자였던 찰스는 재즈의 상업화에 있어 선두에 있던 인물이었고 자신이 직접 레이블을 만들어 활동은 했던 인물인데 재즈 작곡가 연합이나 연주자 협동조합을 만들어 활약을 했기 때문에 대단한 상징성을 가진다고 하겠지요.

찰스 밍거스(1922 - 1979)는 베이시스트로서 가질 수 있는 탄력 있는 연주 감을 배경으로 한 음악 레인지 구성을 즐겨 다아 보니 전체적으로 음 구성이 중량감 있는 터치를 들려줍니다.

대부분의 녹음이 그런 식이다 보니 지금 남아있는 음원에서 더 이상 생생한 현장감을 만나보기란 어려운 편이지요.



지금 식으로 비교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같은 베이시스트 연주자 구성이라고 해도 사운드 엔지니어가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 다른 지를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찰스는 합주, 연주보다 혼자 하는 솔로로서 구성된 음이 훨씬 더 좋은 느낌을 만들어 들려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시대적인 감각 구성이 다르기는 하지만 라이브 사운드도 이제 충분히 훌륭한 사운드 레벨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대단한 노력의 결과이지요.



버드 파월(Bud Powell)  [When I Fall In Love]

재즈 피아니스트인 버드가 연주한 이 곡은 널리 알려진 선율을 그가 가진 재능으로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비밥 피아노 스타일의 선구자이며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트리오 구성으로 찰진 매력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버드 파월(1924-1966)은 상당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음반 구성이 그렇게 화려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1940년대를 풍미한 비밥 스타일의 선도를 통해 침체되어가던 스윙을 모던 재즈로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John S]

이 곡이 명곡으로 인정되는 부분은 역시 훌륭한 연주와 녹음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하겠지요.

원곡 녹음은 1962년에 했지만 리마스터 음원이 아주 잘 뽑아져 나온 것은 그런 의미를 잘 알게 해 줍니다.

1930년생인 소니는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는 원로이지요.

저도 좋아하는 [St. Thomas]와 함께 정말 때를 잘 만난 연주자로 재즈 색소폰의 한 장르를 이루어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또 녹음이 좋은 노래들을 가지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Horace Silver  -  The Preacher

Ornette Coleman Quartet  -   The Sphinx

Wes Montgomery  -  Repetition

Herbie Mann - Comin' Home Baby

Roland Kirk Quartet  -  Three For The Festival

Clifford Brown And Horace Silver -  Once In A While

Max Roach  -  Dr. Free-Zee

Dizzy Gillespie  -  Ungawa

등도 생각을 했는데 음원 찾아보기가 어려워서 다 써두지 못합니다.

은근 판권 때문에 1980~1990년대 곡들은 팝송이 아니면서 써두기도 어려운 것 같고요.

아. 막 생각대로 쓰다 보니 조금 길어졌습니다.

읽고 듣는 데 시간이 걸리는 포스트가 되고 말았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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