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혁명의 이름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역의 민속 공동체 조직 Mafie를 기준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국제적인 갱 조직으로 유명해진 '마피아'라는 대명사에 대한 이야기다.
고대 로마제국 분열 이후에 이탈리아가 유럽사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새로운 유럽파 깡패로 등극한 프랑스 왕국의 역할이 커지고 그 때문에 주변 국가, 특히 이탈리아는 주변 야만족(이탈리아 관점에서) 침략과 약탈을 받는다.
이탈리아 본토와 떨어져 있는 섬 지역 시칠리아는 특히 무법상태로 이탈리아 민정의 보호도 거의 없이 공격 대상이 되었는데 이 때문에 자위적인 수단으로써 민간 비밀조직이 결성된다.
치안을 담당하는 영주라는 작자들은 대부분 부패했고, 야만인의 공격과 약탈에 대항하는 수단이 별로 없이 방치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피아의 공식적인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미와 설이 있지만 현재는 1282년 3월 30일에 일어난 시칠리아 만종 사건(Vespri siciliani)을 대표적인 것으로 거론한다.
프랑스 가문 지배의 폭력과 약탈에 분개한 시칠리아 인들의 반란으로 시작된 것으로 이탈리아 새 신부를 강간하고 죽인 프랑스인들에게 죽음으로 갚게 하자는 의미로서 외친 "Morte alla Francia Italia Anela"를 약어로 만들어서 마피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탈리아가 로마제국 시절을 지나 약해진 국제적 지위에 혁명적인 구성을 보여주었고 이탈리안 기사들과 프랑스 영주 군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으로 인해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자존심 싸움으로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교황 국을 포함한 종교권의 이해만으로 얻을 수 없었던 이탈리아 민족 봉기의 자존심을 세운 것이다.
본래는 자치 방어를 위한 마피아가 범죄조직으로 변화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가 통일정부를 출범시킨 1860년대부터 정치권과 결탁하게 되면서 폭력 정치, 이권개입의 형태를 갖추면서부터였다.
폭력에 의한 지배를 폭력으로 반격한 사건으로서 보지만 독립운동이나 독립정신과는 조금 거리가 먼 이익집단의 충돌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피아의 본질, 생태계가 변질된 것을 통해 이를 어떻게 지배계급이 받아들이는가에 따른 해석 차이이기도 한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역사적 가치관, 대립 과정을 통해 봐도 마피아가 혁명적인 구성을 가진 존재로 거론될 수 있었던 것은 이 1282년 3월 30일의 비극을 기반으로 형성된 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 대륙의 투쟁 역사만큼 오랜 시간 한 대륙 안에서 치고받고 싸우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지키려고 한 이들의 모습은 또 다른 의미로서 세계 역사의 축소판이자 인류 역사의 잔혹사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잔인성이 이어져 유지된 것이 마피아이고 폭력과 갱문화의 부조리 대명사로서 마피아가 존재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아픈 일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