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700불 들고 떠난 나의 첫 유럽

Adios, Las Vegas

by 권지오

"아 이거 너무 아까운데... 버리면 분명 후회할 거 같은데..."


2017년 12월 25일 늦은 오후, 라스베이거스 맥캐런 공항 안, 나는 수화물을 붙이기 위해서 갖가지 짐과 씨름을 하는 중이었다. "Please put on your luggage here and wait a second... Okay, you have to pay excess for baggage charges 20 bucks" "Okay..." 더 이상 뺄 짐이 없었던 나는, 피 같은 20달러를 내고 힘이 다 빠진 상태로 멍하니 카페에 앉아서 초점 없는 눈으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출국까지 1시간을 앞둔 나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 여행이 정말 설레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인생 첫 유럽 여행인 만큼 두렵기도 했고, 나의 20대의 초반의 청춘을 보냈던 이 라스베이거스를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한꺼번에 몰려온 나머지, 머릿속에 이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들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처음 미국에 도착해 LA에서 같이 왔던 친구들과 밤에 먹던 미국 첫 버거킹, 내가 다니던 학교의 첫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날, 학교의 첫 수업, 룸메이트였던 고등학교 친구와 처음 이사를 하던 날, 인생 처음으로 혼자 여행했던 엘에이 여행 등등. 생각했던 것보다 인생 처음으로 혼자 했던 일들이 많았던 경험들이 생각나서 새삼 놀랍기도 했고, 대견하기도 하면서, 이 모든 게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었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세상에서의 삶은 혼자이면서도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모순의 덩어리라는 사실은 제대로 자각하게 되는 미국 생활이었다. 미국에서 있었던 수많은 추억들이 스쳐 지나가던 찰나, 내가 탑승할 비행기에서는 기내식을 주지 않는다는 안내사항 문구가 문득 생각났다. 나는 근처 버거킹으로 부랴부랴 달려가서 햄버거 세트 하나를 포장해서 겨우겨우 비행기에 탑승해서 이륙을 기다렸다. 생각해보니까, 제일 처음 도착해서 먹었던 햄버거도 버거킹이었고, 우연찮게 이곳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먹게 된 햄버거도 버거킹이라는 사실에 이제 정말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나서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이곳을 언제 또 올 수 있을까...''내가 다시 온다면, 이곳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온갖 잡다한 생각이 들던 순간, 안내 방송에 정신을 차려보니 탑승 게이트였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그렇듯이, 게이트 앞에 서니 아쉬운 마음보다 설렘이 더 커져서 모든 생각을 뒤로한 채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 당시에는 추억은 추억대로 남겨두는 게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늘 그랬듯이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한 게, 사람이건 물건이건 사라지면 아쉬워서 죽을 것 같다가도, 새로운 설렘이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추억으로 남겨두는 게 가장 아름답다며 스스로 합리화를 하는 모습이 참 못됐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기내 안, 거의 모든 좌석의 승객들이 탑승하고, 다들 같은 마음으로 출발을 기다리고 있던 조용한 비행기 안, 방송으로 흘러나오는 어딘가 많이 들어 나오는 피아노 선율, edm이었다. 노래는 그 당시 어디를 가든 나오던, 알렌 워커의 Faded였다. 그 당시 나는 같이 살던 고등학교 친구로 인해서 미국에서 힙합과 EDM을 처음 접하고 정신을 못 차리던 나에게, 흘러나오는 BGM과 비행기 창문을 통해 보이는 라스베이거스의 석양과 노을이 지던 모습은 마치 영화 같았고, 이 순간에 대한 선물 같았다. 그때의 그 비행기들이 줄지어서 정차돼있는 공항의 모습 속 어우러진 베가스의 석양 지는 하늘과 기내에서 흘러나오던 피아노 선율은 정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장면들 중 하나이다. 이륙 후 어두워진 하늘 밑,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는 베가스 도시의 불빛이 이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풍경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서 나는 기내 창문을 닫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베가스의 야경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놓을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는 게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믿고 살아가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 당시, 언젠가는 오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나마 가볍게 옮길 수 있었던 발걸음이었지만, 현재 코로나 시국을 보면, 세상일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작은 순간이라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현재 모든 사람들이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들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이제는 벌써 5년 전이 되어버린 그때 그날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가장 강하게 드는 생각은 어떤 순간이든 현재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과거든 미래든 어느 시점에서 봐도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그때 그 하늘이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잊지 못할 순간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나름 충실하게 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지금이다. 그래도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그 모든 순간을 다시 한번 느껴봤으면 한다. Adios, Las Veg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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