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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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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May 24. 2019

연약할 줄 아는 법

2019년 5월 저녁.


꼬리와 침대에 나란히 포개져 있던 어느 날, 꼬리에게 말했다. 꼬리는 힘든 걸 잘 말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의도적으로 숨긴다기보다, 오랫동안 남에게 잘 털어놓지 않아 온 사람의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외동이라 늘 혼자 종이 인형 놀이를 했다던 꼬리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꼬리는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도 엄마, 아빠가 들어오면 노는 것을 멈춰버렸다고 했다. 사촌동생이 올 때에만 같이 놀았다고 했다. 나는 공감했다. 또래끼리만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한 살 터울인 작은언니에게 일거수일투족을 털어놓으며 자란 나와는 다를 것 같았다. 어린 동생들에게도, 모부에게도 입을 잘 열지 않는 큰언니가 생각났다. 내 위에 누워있던 꼬리는 얼굴을 내 가슴에 콕 박았다. 한동안 말이 없더니 가슴에 뜨거운 숨이 찼다. 울어?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꼬리는 울고 있었다. 꼬리는 의존적인 사람이 되는 게 싫다고 했다. 가능한 누군가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곤 한다고 했다.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혼자 섣불리 답을 내리고 생각을 멈춰버린다는 꼬리. 나는 꼬리의 뒤통수를 끌어안다가 울어버렸다. 꼬리는 이제 그러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우리 요새 정말 매일 우네. 꼬리는 울면서 웃었다. 꼬리와 자주 우는 날들이 쌓여갔다. 연약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는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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