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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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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Jun 04. 2019

내 몸을 볼 수 없는 축복


2019년 5월 25일 저녁.


함께 사는 고양이는 거울을 안 본다.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바닥에 뒹구는 가방이나 옷뭉치 뒤에 숨곤 하지만, 나보다 내가 든 플라스틱 장난감에게 들킬까 염려한다. 혼자서도 갑자기 엉덩이를 실룩대다가 공에게 돌진할 때도 있고, 우다다다 꼬리 털을 잔뜩 부풀리고 뛰어다니기도 한다.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그루밍을 하다 눈을 마주쳐도 아무렇지도 않다. 무튼, 난 부끄러워할 일에 고양이는 태연하다는 것. 꼬리와 춤을 췄다. 우리보다 몇 배는 큰 전지를 바닥에 깔고 물감으로 마구 그림을 그렸다. 그림 위에서 발가벗고 춤을 췄다. 난 사실 춤이 좀 쑥쓰럽다. 내가 어정쩡 서 있는 사이 쿵쿵 심장을 때리는 음악이 나오고, 꼬리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꼬리의 몸은 자유롭다. 꼬리는 주위 공기를 뻥뻥 차듯이 강렬하고 역동적으로 추기도 하고, 살랑살랑 물고기처럼 흐느적거리기도 한다. 몸을 대체 어떻게 움직여야 춤이 된단 말인가. 난 당최 부끄러워서 큰 동작이 안나온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최면은, 남이 날 어떻게 볼지 대신 상상해주는 걸 멈추는 것. 꼬리의 몸이 힘차게 돈다. 서로 손을 맞잡는다. 회전할수록 몸이 빨라진다. 어지러울 쯤엔 함께 휘청인다. 콩콩 제자리에서 뛰기도 하고, 보폭을 넓혀 날듯이 달리기도 한다. 팔을 뻗고 휘두르면 손끝이 저릿해진다. 온몸에 열이 오르고 숨이 찬다. 눈을 감고 몸을 느슨하게 흔드는 꼬리가 보인다. 내가 내 몸을 볼 수 없는 축복. 마음껏 우스워지자.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 "야옹-" 울어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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