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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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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Jun 04. 2019

명상의 축제

위빳사나. 현재를 알아차리는 연습. 명상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 내가 걷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숨 쉬는 것마저, 갈빗대가 오르내리고 콧구멍으로 숨이 밀려나가는 걸 다만 알아차리면 된다. 과거의 저 먼 기억이나 미래의 불확실한 걱정으로부터 집요하게 멀어진 곳, 오로지 현재에만 깊이 더 깊이 에너지를 몰두하는 시간. 꼬리와 있을 때면 어떤 다른 생각도 침범할 틈이 없다. 꼬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와 떨어지고 나면, 그제야 밀린 할 일이나 연락이 와르르 덮쳐온다는 꼬리. 사랑은 명상인가봐! 둘이서 마주보고 무릎을 탁 친다. 퀴어축제가 열렸다. 뜨거운 해가 지고 선선한 공기가 광장을 채운다. 벌써 네번째 흘러나오는 'born this way' 노래에 맞춰 발바닥이 아프도록 방방 뛴다. 심장이 탁구공처럼 제멋대로다. 같은 음악과 같은 네온조명이 우리 몸을 마구 통과한다. 여러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꼬리의 미끄러운 손을 느낄 수 있다. 멀리서도 꼬리를 단숨에 찾는 것처럼, 정신은 다른 곳을 헤맬 길이 없다. 탄성처럼 현재에 머문다. 누구도 우릴 힐끔대지 않는다. 우리가 오로지 둘만을 느끼듯, 모두가 누군가의 눈동자 속에 있다. 다섯번째 'born this way'가 터져나오고, 다시 한 번 셀 수 없는 사랑들이 광장 위로 출렁인다. 저마다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시간. 요란한 명상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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