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인 2020년 겨울호
“오늘 여기엔 어떤 변태들이 모였죠?”
“농촌 변태!”
“얼쑤!”
째쟁째쟁- 꽹과리 소리가 울렸다. 이내 북과 장구, 징 소리가 어우러지고 사람들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어깨춤을 추었다. 날씨는 적당히 심술궂었다. 먹구름이 온종일 무거운 엉덩이를 틀고 앉은 하늘이었지만, 비는 오지 않았으니 되었다. 산내에서 성다양성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우리는 알록달록 한복들로 저마다 꾸며 입었다. 두루마기에는 타이트한 치마를 함께 입고, 남성용 마고자와는 핑크색 아얌을 썼다. 한복 치마를 무지개색으로 리폼하거나, 외투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거나!
농촌에서 퀴어 축제를 한다는 건 말도 되지 않게 들리지만, 산내라면 달랐다. 처음 애인을 만났을 때, 우린 산내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 지리산 속 산내라는 마을에는 페미니스트들이 잔뜩 산다더라, 하는 이야기였다. 산내에서 활동하던 여성주의 단체 ‘문화기획달’이 발행하는 잡지를 둘 다 즐겨보고 있었다. 언젠가 지리산에서 살겠노라고 생각하면서.
처음 애인과 여행을 갔을 때에도 지리산으로 향했다. 우린 한시도 빼놓지 않고 손을 잡고 다녔다. 여자 둘이 3박 4일 내내 손을 잡고 다니는 걸, 민박집 아주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하시지 않을까 내심 두렵기도 했다. 아주머니는 우리가 떠나는 날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10년 전에 소중한 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남편이 없어도 그러질 않는데, 이 친구만 곁에 없으면 한국이 통째로 텅 비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이 친구를 조금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당신의 인생이 더 반짝였을 거라면서. 그리고 우리 둘에게 그 손 꼭 잡고 행복하게 살라고 하셨다.
이듬해 봄, 우린 정말로 산내에 왔다. 산내는 듣던 대로 페미니스트들이 잔뜩 사는 마을이었다. ‘성폭력 근절을 위한 지리산 여성회의’가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했고, 마을 삼거리에선 N번방 성착취 사건을 주제로 1인시위 릴레이가 이어졌다.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아주 작은 페미니즘 학교: 탱자’의 열정적인 수강생들이고, 마을 카페와 도서관엔 페미니즘 서적이 책장 가득했다. 길 가다가 페미니즘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을 본 건 도시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그렇다고 산내가 마냥 천국이라는 건 아니다. 산내 성다양성 축제를 기획한 건 전 생명평화대학 신입생이다. 신입생들은 총 8명이었는데, 그중엔 이성커플도 있고 동성커플도 있었다. 실상사에서는 쉬는 시간에도 여자와 남자가 함께 방에 있으면 안 되고, 혼숙도 금지였다. 이성커플은 성적인 관계로 간주하여 이런 규칙을 따라야 했지만, 동성커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성 간의 관계를 아예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대에도 없던 ‘퀴어패스권(?)’을 얻었지만, 그닥 기쁜 일은 아니었다.
생명평화대학이 끝나고 나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여전히 젊은 여자만 보면 어르신들은 옆동네 노총각과 맺어주려 하고, 노총각이 없으면 ‘처녀가 시골에서 남자도 없이 괜찮냐’는 염려도 해주신다. 귀촌해서 집을 구할 때는 무조건 결혼과 임신 계획이 있다고 하라던데, 그 두 계획 모두 불가능한 커플을 위한 조언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여자들끼리만 사는 집엔 밤에 대문을 꼭 잠가야 한다는 조언 정도일까. ‘남자나 부부 세입자만 받는다’며 집을 못 구한 적도 있었다.
농촌엔 공개적인 퀴어 커뮤니티도, 선배 퀴어 부부도 없다. 중매를 자처하시는 어르신들에게 퀴어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이런 농촌 문화 안에서 “있는 그대로 우리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즐거운 자리를 마련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성다양성 축제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한 친구가 기획을 총괄하고 나는 포스터를 주로 맡았다. 지리산에는 창세여신 마고할미가 산다는 신화가 있다. 산내는 마고할미 품에 쏙 안긴 마을이었다. 성다양성 축제 포스터에는 주홍색 삭발머리에 입술엔 피어싱을 하고 어깨엔 타투를 새긴 마고여신이 그려졌다. 털복숭이 팔뚝으로 사랑스러운 손키스를 날리면서.
축제는 ‘성폭력 근절을 위한 지리산 여성회의’에서 사무실을 무료로 대관해주셨다. 전야제에는 카페 ‘히말라야’에서 공간을 베풀어주셨다. ‘비온 뒤 무지개 재단’에서 지원금을 보내주셨고,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도 무지개 깃발을 대여해주셨다. 전국 각지에서 노래, 춤, 낭독회, 드랙쇼, 토크쇼, 전시를 기꺼이 해주겠다는 연락들이 왔다. 이 모든 덕으로, 축제날 여성회의 사무실 앞 좁은 골목은 온통 무지개빛으로 북적거렸다. 퍼레이드 때는 쩌렁쩌렁 울리는 ‘born this way’ 노래와 함께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면서 온 동네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퀴어 축제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온 멋진 이웃들에게도 빚을 진 행사였다.
전야제에서 <런던 프라이드>를 상영했다. ‘광부들을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들(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 ; LGSM)’에 대한 내용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광부와 성소수자 두 집단이, 사회적 약자로서 서로의 연결고리를 발견해간다. 산내 성다양성 축제도 부스 판매 수익금 일부를 ‘지리산 산악열차반대 대책위’에 기부했다. “그럼 우리도 ‘LGSM’이네! 마고를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들(Lesbians and Gays Support Mago).”하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성소수자들과 지리산도 광부들만큼이나 엉뚱한 조합일까? 성소수자들이 ‘있는 그대로’ 존재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지리산도 개발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무지개는 서울광장뿐 아니라 지리산 자락 마고할미의 이마에도 떠오르는 법이니까.